버려진 교실의 칠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버려진 교실의 칠판




한적한 시골 학교, 창문 너머로 들여다본 교실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학생들의 발걸음은 사라지고, 교탁 옆 칠판만이 여전히 벽에 걸려 있었다. 더 이상 글씨는 없었다. 분필 가루가 희미하게 얼룩져 있을 뿐,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칠판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목소리와 기억이 여전히 새겨져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칠판 앞에서 늘 긴장했다. 선생님이 불러 세우면 분필을 들고 삐뚤빼뚤 글씨를 썼다. 그때는 온 교실이 숨을 죽이고 내 손끝을 지켜보았다. 틀리면 웃음이 터졌고, 맞으면 박수가 이어졌다. 칠판은 나의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담은 무대였다.

고교

시절, 칠판은 더 치열한 기록장이었다. 수학 공식, 영어 단어, 역사 연표가 빼곡히 채워졌다. 그러나 칠판에 적힌 것은 단순한 지식만이 아니었다. 친구가 남긴 낙서, 선생님의 즉흥적인 농담, 분필 가루 속에 묻힌 웃음과 꾸중이 함께했다. 칠판은 교실의 거울이자, 청춘의 일기장이었다.

한 번은 졸업식이 끝난 뒤, 친구들과 교실에 남아 칠판에 각자의 이름을 적은 적이 있다.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꾹꾹 눌러썼다. 그 글씨는 며칠 뒤 사라졌지만, 마음속에는 아직도 선명하다. 칠판은 우리에게 말했다. “모든 글씨는 지워지지만, 기억은 남는다.”

세월이 흘러 학교는 문을 닫았다. 칠판은 이제 버려진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앞에 서면 여전히 분필 냄새가 나는 듯하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칠판은 비록 버려졌지만, 그 위에는 사라지지 않는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전자칠판과 태블릿으로 공부한다. 편리하고 빠르지만, 그 속에는 분필 가루의 촉감과 지워지는 소리의 여운이 없다. 칠판의 느린 호흡은 배움의 무게를 더해 주었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억이었다.

나는 버려진 칠판 앞에서 다짐한다. 지워져도 남는 삶을 살겠다고. 삶은 선명한 글씨 속에서가 아니라, 버려진 교실 칠판의 희미한 분필 가루 속에서 더 깊어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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