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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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가로등 아래
밤이 깊어지면 골목은 금세 어두워진다.
그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 하나가 길을 지킨다. 가로등이다.
전선이 낡아 깜박거리기도 하지만, 그 불빛은 여전히 골목을 밝혀 준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만, 그 빛은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였다.
어린 시절, 나는 가로등 아래에서 자주 놀았다. 숨바꼭질을 하다 잡히면 가로등 불빛 속에 멈춰 섰고,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그 불빛 속에 흩어졌다. 그때의 가로등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우리의 놀이터였다.
청소년 시절, 가로등은 귀갓길의 친구였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 골목이 어두워 겁이 날 때면 가로등 아래서 잠시 멈췄다. 그 빛이 있어야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로등은 “괜찮아, 너 혼자가 아니야” 하고 말해 주는 듯했다.
청년이 되었을 때, 가로등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연인과 함께 걸으며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았다. 두 그림자가 하나로 포개졌다가 다시 갈라지는 그 모습은, 사랑의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의 그림자는 말없이 우리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제는 가로등 아래에서 홀로 서 있을 때가 많다. 퇴근길, 지친 마음으로 걸음을 멈추면 가로등 불빛이 나를 감싼다.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달리, 이 빛은 조용하고 따뜻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 작은 불빛 하나가 나를 다시 걷게 한다.
얼마 전, 새벽녘 골목길을 지나며 노숙인이 가로등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손에는 빈 컵 하나뿐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 평온해 보였다. 어쩌면 가로등이 그의 밤을 지켜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로등은 우리에게 말한다.
화려하게 세상을 뒤덮지 않아도, 누군가의 길을 비출 수 있다고. 삶은 환한 대낮의 태양 속에서가 아니라, 골목길 가로등 아래의 작은 불빛 속에서 더 깊어진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