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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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거, 별 것 아니다
사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누구나 길고 복잡한 대답을 떠올리기 쉽다. 인생은 고통과 희망이 얽히는 긴 여정이며, 매 순간이 선택과 결과로 이어진다.
곱씹어보면 결론은 단순하다. 사는 거, 별 것 아니다. 그 한마디 속에 삶의 요체가 다 들어 있다. 문제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가 잊고 산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일에 마음을 끓인다. 돈이 부족하다고,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명예가 생각대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늘 속을 달군다. 그러나 속을 끓인다고 해서 일이 바뀌는가. 불편한 마음만 깊어지고, 결국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될 뿐이다. 삶은 애써 끌어안는 불안 때문에 무거워지는 것이지, 본디 무겁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속을 끓이지 말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불가피한 굴곡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비 오는 날을 화내며 막을 수 없듯이, 인생에 들이닥치는 시련도 억지로 막아낼 수는 없다. 다만 그 비를 맞으며 걸을 용기, 혹은 우산 하나 펼칠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속을 끓이지 않는다는 것은 포기의 태도가 아니라, 수용의 태도이다.
세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온 길이 있다. 그 길을 되짚어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도 세상의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이루지 못했다. 반대로 세상에서 크게 실패한 듯 보인 이도, 어떤 순간에는 웃고 노래하며 살았다. 결국 인생은 잘된 일과 잘 안된 일이 뒤섞여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고, 그 흐름을 따라 배를 띄울 때 비로소 물살은 벗이 된다.
사는 거 별 것 아니다.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한두 사람과 웃으며 대화 나누고, 몸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일하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눕는 것. 여기에 인생의 본질이 담겨 있다. 여기에 더 많은 것을 얹으려다 속을 끓이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도 결국 한 몸뚱이로 살아가야 하고, 권력이 커도 마지막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인생의 무게는 결코 소유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속을 끓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가볍게 해주는 지혜다. 마음이 무거우면 발걸음도 느려지고, 작은 일에도 큰 장벽을 느낀다. 그러나 마음이 가볍다면, 큰일조차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삶을 다스리는 태도이다. 속 끓이지 않는 마음은 마치 맑은 바람 같다. 잡다한 번뇌가 걷히면, 하늘이 제 얼굴을 드러내듯 마음도 제 빛을 되찾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불의가 있고, 불평등이 있고, 인간의 탐욕이 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고 웃으며 살아간다. 고통이 있기에 기쁨이 빛나고, 슬픔이 있기에 희망이 절실하다. 그러니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절망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속을 끓이지 않고 바라보면, 불행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가 반드시 있다.
사는 거 별 것 아니다. 이 단순한 말은 사실 가장 큰 깨달음의 문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욕심이 많을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비교가 잦을수록 영혼은 피로해진다. 그러나 본래 삶은 소박하다. 눈을 뜨고 숨 쉬는 순간 이미 삶은 주어진 것이며, 그 자체로 충분하다.
끝내 삶을 돌아보는 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많은 재산도, 높은 지위도, 남들의 평가도 아닌, 그저 속 끓이지 않고 웃으며 살았던 순간들이 가장 빛나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는 거, 별 것 아니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그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는 순간, 삶은 더 단순해지고, 단순함 속에서 더 깊은 자유를 얻게 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