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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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보다 귀한 길
저녁노을이 산자락에 걸릴 무렵, 제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는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은 공허하고, 깨달음은 멀리만 느껴집니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요?”
스승은 먼 산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묻느냐가 중요하단다.”
제자는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는 것이 많아야 질문도 하지 않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아는 것에서 비롯되는 질문은 종종 얕다. 모름에서 비롯되는 질문은 깊다. 지식은 벽을 세우지만, 물음은 길을 연다.”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섰다.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은 돌담 옆에 작은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물을 마셔 보아라.”
제자가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자, 차갑고도 맑았다.
“네가 방금 맛본 물이 지식이다. 목을 축일 수는 있지만, 다시 목마르지 않더냐?”
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물이 솟아나는 근원을 찾으려는 것이 질문이다. 근원을 묻는 사람은 목마름에 그치지 않고, 샘을 발견해 평생 목을 축일 수 있다.”
제자는 그제야 눈빛이 달라졌다.
“깨달음이란 답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샘을 찾는 물음에 있군요.”
스승이 빙긋이 웃었다.
“옳다. 답은 언제나 잠정적이다. 물음은 끊임없이 너를 살려내고, 널 다시 길 위에 세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자는 다시 물었다.
“스승님, 어떤 질문이 가장 귀한 질문입니까?”
스승은 하늘을 가리켰다. 달빛 사이로 은하수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는가.’ 이 질문이 너를 끝없이 자라게 한다. 세상의 크고 작은 답들은 시간이 지나면 빛을 잃지만, 이 물음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빛난다.”
제자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알겠습니다. 저는 더 많은 답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앞으로는 제 안에서 더 좋은 질문을 길러내겠습니다.”
스승은 제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묻는 자만이 깨어 있을 수 있다. 답은 닫힌 문 같지만, 물음은 열린 문이니라. 네가 길을 걸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라. 그러면 삶이 너에게 새로운 빛을 내줄 것이다.”
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불어왔다.
그 순간
제자는 깨달았다.
깨닫는 자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물음을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