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두둑
밭두둑이 길을 만든다 흙의 낮은 등줄기
씨앗은 그 등허리에 누워
봄빛을 이불 삼아 잠깐 노루잠 잔다.
고샅바람이 스치면 흙결이 일렁이고
개미들이 조용히 행차한다.
두둑은 물길과 땅의 숨을 나누는 어름
넘치면 들이고 모자라면 물린다
한 줄 또 한 줄 삶도 이렇게
가느다란 마디 이어 큰 무늬를 짠다.
아이 발자국이 가볍게 찍히고
낫과 괭이의 자국이 겹겹이 얹힌다
한 해가 지나면 두둑의 주름도 깊어져
이름 없는 수고들을 차곡차곡 저장한다
저녁, 붉은빛이 고즈넉이 내려앉을 때
두둑은 산처럼 낮고
산은 두둑처럼 가까워진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