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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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과잉의 거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릉은 여전히 비 소식이 없다. 마을 어귀의 논바닥은 이미 거북등처럼 갈라져, 그 틈마다 메마른 대지의 신음이 묻어 나온다. 사람들은 그 갈라진 틈을 바라보며 한 모금의 물조차 아껴 마셔야 하는 현실에 놓인다. 물은 늘 곁에 있는 것 같아도, 막상 사라지고 나면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귀한 조건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 귀함은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지만, 결핍의 순간에야 비로소 삶의 근본임을 드러낸다.
같은 시각,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하늘이 열리듯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내려 강물이 제방을 허물고, 들녘과 마을을 삼킨다. 물이 없어서 고통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넘쳐흘러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물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는 곳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극과 극의 풍경이 펼쳐지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자연의 섭리가 인간의 계산과는 얼마나 다르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부족함도 넘침도 모두 고통이라는 점에서, 삶은 늘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 가뭄은 우리로 하여금 절제와 감사의 마음을 배우게 하고, 홍수는 넘침과 욕망이 가져오는 파괴를 되새기게 한다. 인간은 이 단순한 교훈조차 쉽게 잊는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목마름을 원망하면서도, 비가 쏟아질 때는 그 넘침을 탓한다. 결국 우리는 늘 상황의 피해자처럼 자신을 내세우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는 뒤로 미루기 일쑤다.
하늘은 공평해 보인다.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를 베풀지 않고, 누구에게도 영구히 불행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 공평함은 불공평처럼 드러난다. 가뭄의 땅에 사는 이들은 풍요로운 강을 부러워하고, 홍수의 피해를 입은 이들은 맑은 하늘을 그리워한다. 이 역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하늘의 불공정함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이 얼마나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같은 비도 어떤 이에게는 축복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재앙이 된다.
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하는 순간이 있다. 가뭄의 지역에서는 홍수 피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며, 폭우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는 강릉의 가뭄을 떠올리며 물의 귀함을 함께 느낀다. 고통의 모양은 달라도, 서로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은 같다는 사실에서 인간 공동체의 의미가 드러난다. 자연이 우리를 시험할 때마다 인간은 결국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확인한다.
자연은 늘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하늘이 내리는 비와 바람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무력하다. 우리는 댐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며 대비하지만, 가뭄 앞에서는 바짝 마른논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홍수 앞에서는 무너지는 제방을 막아내지 못한다. 이 무력감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자연의 메시지이자, 동시에 겸허히 살아가라는 교훈이다.
가뭄과 홍수라는 상반된 풍경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목마를 때야 비로소 물의 가치를 알듯, 잔뜩 넘칠 때야 절제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삶도 이와 같다. 결핍은 감사의 마음을, 과잉은 절제의 지혜를 요구한다. 작은 하늘 아래서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고통을 겪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는 부족해서, 또 누군가는 넘쳐서 아프지만, 그 아픔을 통해 인간은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
오늘 강릉의 메마른 땅과 다른 지역의 범람한 강물을 떠올리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삶은 지금 부족함 쪽에 서 있는가, 넘침 쪽에 서 있는가. 어느 쪽이든 자연은 결국 균형으로 이끌고자 우리를 흔든다. 그 흔듦 속에서 겸손히 배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작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