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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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철학자들
― 생각 대신 향기와 음악이 대답하는 시대
카페는 원래 사색의 공간이었다.
커피 한 잔 앞에서 문학이 태어났고, 혁명이 시작되었으며, 철학이 토론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있었다면, 그는 오늘날의 카페에서도 대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의 카페에는 대화가 없다.
노트북을 펼치고, 이어폰을 꽂고,
각자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나는 종종 그런 풍경을 본다.
커피잔 위엔 김이 피어나고, 사람들의 눈빛은 모니터에 잠겨 있다.
서로 마주 앉아 있으면서,
누구도 서로를 보지 않는다.
대화 대신 메시지가 오가고,
웃음 대신 이모티콘이 반짝인다.
이곳은 더 이상 ‘소통의 장소’가 아니라,
조용한 고립의 집단이다.
한때 카페는 진리를 찾던 철학자들의 광장이었다.
이제는 와이파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철학적 질문 대신, 검색창이 열리고,
사유의 고통 대신, 자동완성된 답이 있다.
고민은 깊지 않고, 생각은 짧다.
모든 것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만큼 얕고 가볍다.
가끔은 진짜 철학자가 등장한다.
커피 한 잔을 오래 식히며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
또는 조용히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적는 젊은이.
그들의 눈에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이야말로 이 시대의 마지막 사유의 불씨다.
철학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다.
단지 “왜?”라고 묻는 용기일 뿐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그 질문을 두려워한다.
왜 사는가, 왜 일하는가, 왜 사랑하는가—
그 단순한 물음조차
스마트폰 알림음에 묻혀버린다.
나는 카페의 구석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조용한데, 왜 마음은 시끄러울까.”
아마도 우리는 말을 멈춘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것일지도 모른다.
소음보다 더 위험한 건 사유의 침묵이다.
□
카페는 여전히 향기로 가득하지만,
그 향기 속에는 사유의 냄새가 없다.
언젠가 다시, 커피 한 잔이
철학의 시작이 되던 시절이 돌아올까.
그날이 오면, 이 도시의 소음도
잠시 조용히 귀를 기울일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