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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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지 않아도, 진심은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길을 걷다 스친 눈빛 하나에도, 짧은 인사 뒤 남는 온기에도 인연의 향이 배어 있다. 오래도록 함께하지 못한다 하여 그 만남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잠시의 인연도, 영원의 깊이로 남을 수 있다.
“영원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기억하는 순간이다.”
한 번의 인연이 스쳐가고 나면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 흔적을 닦는다. 닦을수록 더 깊이 새겨지는 것이 인연이다. 잊으려 애쓸수록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다시 떠오른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배움’의 형태로 우리 안에 남은 사랑의 자취다.
사랑이란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 사랑도 붙잡을수록 탁해진다. 흘러가게 두면 맑아진다. 누군가를 너무 오래 바라보면,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 내 것이 되려 한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을 자유롭게 흘려보내는 일이다. 떠남이 슬프더라도, 떠나보내는 손끝에 따뜻함이 남는다면 그것이 도의 사랑이다.
“흘러가되, 마음은 고요하라.”
우리는 종종 영원을 약속하려 하지만, 영원은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지금의 온기를 진심으로 느낀다면 그것이 이미 영원이다. 바람은 머물지 않으나, 그 흔적은 나뭇잎의 떨림으로 남는다. 사랑 또한 그러하다.
인연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 순간 함께 있음의 축복을 알고 감사하는 일이다. 언젠가 헤어질지라도, 그때 흘렸던 웃음과 눈물이 헛되지 않다면 우리는 이미 도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