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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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단 한 번의 선물
어제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오늘을 끝내 만나지 못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조용한 질문이다. 오늘을 맞이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받은 것인가. 숨이 이어지고, 해가 떠오르며,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이 평범한 기적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개를 낮추는가.
삶은 언제나 현재형으로만 주어진다. 과거는 이미 닫힌 문이고, 미래는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닫힌 문 앞에 머물러 서성이고, 열리지 않은 문을 두드리며 불안을 키운다. 정작 손에 쥔 오늘은 습관처럼 흘려보낸다.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하루를,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소비한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깊은 역설이다.
하루의 귀함은 길이에 있지 않다. 하루는 언제나 스물네 시간으로 동일하다. 그 밀도와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어떤 하루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어떤 하루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차이는 시간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
하루를 ‘지나가는 날’로 대할 것인가, ‘맡겨진 날’로 대할 것인가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
유한하다는 사실은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외려 삶을 선명하게 만든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또렷해지고, 남은 시간이 있기에 지금이 빛난다. 삶이 무한하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미룬다. 삶이 유한하다는 자각은 오늘을 앞당긴다. 말 한마디를 아끼지 않게 하고, 손을 한 번 더 내밀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
이 질문들은 사유하는 소수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숨 쉬는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 번쯤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이 사라질 때, 하루는 방향을 잃는다. 방향을 잃은 하루는 쉽게 소모되고 만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삶의 중심을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일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묻는 일은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빚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세 질문이 서로 맞물릴 때, 하루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된다.
오늘은 반복되는 날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와 닮았을 뿐, 결코 같은 날이 아니다. 오늘의 빛은 오늘만의 것이고, 오늘의 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어제 이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바로 그 하루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안다면, 오늘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삶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거창한 성취를 뜻하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말을 오늘 건네는 일,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무심히 지나칠 순간 앞에서 잠시 멈추는 일. 그런 작고 조용한 선택들이 하루의 품격을 만든다. 하루를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존중하게 된다.
오늘은 선물이다. 포장이 화려하지 않아 자주 잊히지만,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선물이다. 이 하루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시간을 견디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오늘을 오늘로 살아낼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