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 시인 ㅡ 2부 부끄러움 속 그리움
1편 흰 그림자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ㅡ 2부 부끄러움 속 그리움
1편 흰 그림자
흰 그림자
윤동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든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들려 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든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으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 4. 14
■
윤동주 시 〈흰 그림자〉
ㅡ'흰 그림자'가 떠나는 방식으로 삶을 정리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흰 그림자〉는 윤동주의 시 가운데서도 유난히 조용하다. 그러나 이 조용함은 평온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내부에서 수습해야 할 것들을 끝까지 수습한 뒤 남는 적막이다. 이 시의 시작은 “길모금”이다. 길모금은 선택의 자리이자, 되돌아보게 되는 자리다. 윤동주는 그곳에서 “황혼”을 맞는다. 황혼은 하루의 끝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끝이다. 그는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기울인다. 귀가 시들었다는 표현은 감각의 둔화가 아니라, 듣는 일조차 지친 영혼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런데 시인이 붙잡는 것은 거대한 소리가 아니다. “발자취 소리”다. 이 발자취는 타인의 발걸음일 수도 있으나, 더 근원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하루 동안 남긴 흔적이다. 윤동주는 ‘나는 총명했든가요’라고 묻는다.
총명함은 지식의 밝음이 아니라 양심의 예민함이다. 그는 뭔가를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그 깨달음은 성취가 아니라 후회에 가깝다. 윤동주가 도달한 인식은 ‘이제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아니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늦음의 통증이다.
이 시의 핵심 장면은 “수많은 나”를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는 대목이다. 윤동주는 자기 안에 여러 개의 자신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욕망의 나, 불안의 나, 연약한 나, 위선의 나, 두려움의 나. 그러나 그는 그들을 파괴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들려 보내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이것이 윤동주의 삶의 가치철학이다. 그는 인간을 잘라내지 않는다. 대신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자기 내부에서 떠들던 감정들을 조용히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며, 그 흔적을 “흰 그림자”로 남긴다. 흰 그림자는 어둠이 아니다. 그러나 빛도 아니다. 윤동주가 남긴 윤리는 이 중간의 색이다. 흰 그림자는 죄를 덮는 색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는 색이다.
“연연히 사랑하든 흰 그림자들”이라는 구절은 더욱 아프다. 윤동주는 자기 안의 약함과 망설임을 미워하지 않는다. 외려 연연히 사랑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랑은 미화가 아니다. 자기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인정이다. 그가 사랑한 것은 성취한 자신이 아니라, 괴로워하던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 시는 한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한 인간의 품격을 기록한다.
마지막의 귀결은 뜻밖에도 “양”이다. 윤동주는 “신념이 깊은 으젓한 양처럼 /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라고 말한다. 이는 세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더 과장된 언어를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로 살겠다는 결심이다. 윤동주에게 신념은 투쟁의 고함이 아니라, 풀포기 하나를 뜯는 성실함이다. 그는 거창한 혁명 대신,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절제를 택한다.
이 시는 ‘부끄러움’의 시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지키는 삶의 방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 “흰 그림자는 왜 조용히 떠나는가”
오산학교 운동장 끝, 오래된 벤치였다.
해가 넘어가고, 황혼이 교정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젖게 만들었다.
바람은 특별히 거세지 않았는데도, 풀잎은 자꾸 몸을 낮췄다.
달삼은 윤동주의 〈흰 그림자〉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있었다.
종이를 펴는 손이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
마치 종이보다 마음이 먼저 찢어질까 봐.
달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 시는요, 이상하게 소리가 없어요.”
청람은 벤치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소리가 없는 게 아니라, 소리를 수습한 뒤의 시다.”
달삼은 다시 시의 첫 줄을 읽었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왜 하필 길모금일까요?
그냥 길이 아니라…”
청람이 천천히 대답했다.
“길모금은
사람이 자기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자리다.
어디로 가든, 한 번은 멈추게 되는 곳이지.”
달삼이 곧바로 물었다.
“근데 선생님. 윤동주는 왜 거기서 황혼을 맞아요?
아침도 아니고, 대낮도 아니고…”
청람이 낮게 말했다.
“윤동주에게 황혼은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말이 줄어드는 시간’이다.”
달삼은 시의 두 번째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귀가 시든다는 게 뭔가요?
귀는 시드는 게 아니잖아요.”
청람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귀가 시든다는 말은
듣는 일이 싫어진 게 아니라,
듣는 일조차 아프게 된 상태다.”
달삼은 고개를 갸웃했다.
“듣는 게… 아프다?”
“그래.
윤동주는 소리를 들으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그 소리들이 너무 늦게 들린 거다.”
달삼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늦게요?”
청람은 시의 다음 대목을 또박또박 짚었다.
“‘나는 총명했든가요’
이 질문 속에 늦음이 있다.”
달삼은 한참 그 문장을 굴리다가 조심히 말했다.
“선생님…
총명함은 보통 똑똑함인데,
윤동주는 왜 이걸 부끄러워하죠?”
청람이 고개를 저었다.
“달삼아,
윤동주가 말하는 총명함은
시험을 잘 치는 머리가 아니다.”
“그럼 뭔데요?”
“양심이 빨리 반응하는 능력이다.”
달삼의 눈빛이 달라졌다.
“양심이 빨리 반응하는 능력…”
청람이 덧붙였다.
“그는 ‘몰랐다’고 말하지 않는다.
‘총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즉,
알아야 할 것을 늦게 깨달았다는 말이지.”
달삼은 잠시 침묵했다.
바람이 지나가며 운동장 모래를 아주 얇게 긁었다.
달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이 시에서 제일 이상한 게요…”
“무엇이지?”
달삼이 시 중간을 짚었다.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들려 보내면’
여기요.
수많은 나는 뭐예요?
윤동주는 왜 ‘나’를 하나로 못 두죠?”
청람이 아주 짧게 웃었다.
“달삼아,
사람은 원래 하나가 아니다.”
달삼이 더 날카롭게 물었다.
“그럼 다들 수많은 나를 갖고 사는데,
왜 윤동주만 이렇게 괴로워해요?”
청람은 잠시 달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윤동주는
수많은 나를 숨기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숨기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안의 여러 얼굴을 섞어서
그냥 ‘나’라고 말한다.
그런데 윤동주는
그걸 섞지 못했다.”
달삼이 갑자기 웃음 같은 숨을 흘렸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자기 안의 거짓말을 못 했네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래서 ‘수많은 나’는
윤동주의 병이 아니라, 윤동주의 진실이다.”
달삼은 조용히 시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근데요 선생님…
왜 ‘제 고장’으로 돌려보냈을까요?
그냥 없애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요?”
청람이 천천히 말했다.
“그게 윤동주의 품격이다.”
“품격이요?”
“윤동주는 자기 안의 약함을
처형하지 않는다.”
달삼이 놀란 듯 물었다.
“그럼… 용서한 건가요?”
청람은 고개를 저었다.
“용서한 것도 아니고, 미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다.”
달삼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제자리로…”
청람이 이어 말했다.
“약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게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 방식이다.”
달삼은 뭔가 알아챈 듯
천천히 다음 구절로 내려갔다.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달삼이 말했다.
“선생님, 여기서 질문하나요.”
“말해라.”
“왜 검은 그림자가 아니라 ‘흰’ 그림자예요?
그림자는 원래 어두운 거잖아요.”
청람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달삼아,
검은 그림자는 숨김이다.”
“그럼 흰 그림자는요?”
“흰 그림자는
숨김없이 떠나는 방식이다.”
달삼이 눈을 깜빡였다.
“숨김없이 떠나는 방식…”
청람이 덧붙였다.
“윤동주는
자기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은 채로
조용히 물러난 사람이다.”
달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근데요.
왜 윤동주는 ‘연연히 사랑하든 흰 그림자들’이라고 했죠?”
청람의 시선이 잠깐 멀어졌다.
“그게 이 시의 핵심이다.”
달삼이 숨을 죽였다.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윤동주는
자기 안의 약함을 미워하지 않았다.”
달삼이 반문했다.
“근데 약함은 부끄러운 거 아닌가요?”
청람이 고개를 저었다.
“약함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럼 뭐가 부끄러운 거예요?”
청람은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약함을 변명으로 쓰는 것이 부끄러운 거다.”
달삼은 그 순간
무언가가 가슴 아래쪽에서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도 모르게 말했다.
“…아…”
청람이 계속했다.
“윤동주는 자기 약함을 인정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약함 뒤에 숨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달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연연히 사랑’은
자기를 미화하는 사랑이 아니라…”
청람이 받았다.
“자기를 버리지 않는 마지막 책임이다.”
달삼은 마지막 연을 읽었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으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달삼이 말했다.
“선생님…
이 부분은 너무 낮아 보이는데요.
양처럼 풀 뜯고 살겠다는 게
도망 아닌가요?”
청람은 단호히 말했다.
“도망이 아니다.”
달삼이 되물었다.
“그럼 뭐예요?”
청람은 천천히, 그러나 아주 정확히 말했다.
“윤동주에게 신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자세다.”
“풀포기 뜯는 자세요?”
“그래.
풀포기 하나 뜯는 성실함이
시대를 이기는 저항이 될 때가 있다.”
달삼이 얼굴을 들었다.
“선생님…
그럼 윤동주는
정치 구호를 외치진 않았지만,
자기 삶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싸운 거네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윤동주의 저항은
거리를 뒤집는 폭발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침묵이었다.”
달삼은 시집을 덮었다.
이번에는 덮는 손이 조금 단단했다.
“선생님.”
“그래.”
“저는요…
〈흰 그림자〉가 슬픈 시인 줄 알았는데…”
청람이 달삼을 바라보았다.
“아니었느냐?”
달삼이 조용히 말했다.
“슬픈데… 이상하게 단정해요.
눈물이 아니라
정리 같은 느낌이에요.”
청람이 짧게 웃었다.
“좋은 독서다.
이 시는 울음이 아니라 정돈이다.”
달삼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러면… 흰 그림자는 결국 어디로 간 거예요?”
청람은 운동장 끝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 마음속 제자리로.”
달삼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
“선생님…
그럼 저도 언젠가
제 흰 그림자들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요?”
청람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돌려보낼 수 있다.
다만,
‘연연히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달삼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 말이 위로가 아니라
기준처럼 들렸다.
청람이 벤치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 가자.”
달삼이 따라 일어났다.
둘의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졌다.
겹쳐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운동장 모퉁이를 돌 때
청람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음 시간에는
〈사랑스런 추억〉을 읽는다.”
달삼이 곧바로 반문했다.
“선생님…
추억은 따뜻한 거 아닌가요?”
청람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답했다.
“따뜻해서 더 아픈 게 있다.”
달삼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따뜻해서 아픈 것.
사랑해서 더 오래 남는 것.
교문이 닫히는 소리가
저녁 공기 속에서
짧고 단단하게 울렸다.
그리고 달삼은 알았다.
윤동주를 읽는 다음 시간은
시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오래된 이름 하나를
다시 불러야 하는 시간이 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