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강가에 서서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중년의 강가에 서서






사람의 삶은 어느 날 문득 강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 지나고, 물의 흐름을 바라볼 여유가 생기는 때. 그때 비로소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단단히 살아왔는가. 그리고 더 깊이 묻게 된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먼저, 두 다리로 걷는 건강이 있는가를 묻는다.
건강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새벽 공기를 밟으며 한 걸음 내딛을 때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땅의 온기를 느끼는 일. 그것은 나무가 뿌리로 흙의 숨결을 읽는 일과 닮았다. 몸이 제 힘으로 세계를 딛고 설 수 있다면 이미 삶은 한 줄기 햇살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알게 된다. 이 몸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걸음이 언젠가 멈출 것을 아는 순간, 발걸음은 기도가 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맡겨진 시간에 대한 감사가 된다.

다음으로, 불러내면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는가를 묻는다.
밥 한 끼는 끼니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작은 성찬이다. 국물 위로 오가는 눈빛, 숟가락 소리 사이에 깃든 신뢰.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전화를 들 수 있다면 인생은 외딴섬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깨닫는다. 인간은 서로를 붙들 수는 있어도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식탁 끝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주어진 인연의 시간을 허락해 준 존재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기도가 된다.

또 묻는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취미가 있는가.
혼자의 시간은 빈 방이 아니다. 책의 숨결, 붓끝의 사색, 흙냄새 묻은 작은 화분 하나가 있다면 그 시간은 하나의 우주가 된다. 고독 속에서도 별빛을 켜는 법을 아는 사람은 이미 자기 세계를 가진 존재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더 깊이 듣게 되는 소리가 있다. 인간의 사유가 닿지 못하는 침묵의 깊이. 그 앞에서 마음은 자연스레 무릎을 꿇는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인정하는 겸허함, 그것이 또 하나의 기도다.

그리고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평온이 있는가를 돌아본다.
삶은 직선이 아니었다. 굽이치는 길, 돌아선 골목, 놓친 기차의 플랫폼. 그러나 그것들을 돌처럼 쥐지 않고 강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다면 마음은 잔잔해진다. 후회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노을을 얹는 일. 그러나 여기서 인간은 한계를 본다.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기억 앞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처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고백한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음을. 그 고백이 절대자를 향한 기도의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존과 작은 것에 감사하는 여유가 있는가.
타인의 높이를 재는 동안 자신의 계절을 잃기 쉽다. 그러나 풀잎의 떨림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삶은 이미 넉넉하다. 감사는 큰 축복에서 오지 않는다. 숨 쉬는 공기, 창가의 빛, 무사히 건넌 하루. 그 작은 것들이 선물임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알게 된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맡겨진 존재임을. 그래서 감사는 곧 기도가 된다.
이 질문 앞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은 정상의 깃발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강가에 오래 서 있다 보면, 하나의 질문이 더 남는다.
이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나는 무엇에 기대어 살아갈 것인가.
그때 인간은 물가에 앉아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빛은 낮아진다.
깨닫는다. 삶의 깊이는 자기 확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한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 앞에 마음을 올려놓는 순간, 인생은 비로소 숭고해진다.
잘 살아왔다는 확신은 상장이 아니라,
밤의 고요 속에서 두 손 모으고
보이지 않는 분께
오늘을 맡길 수 있는 평안,
그 잔잔한 빛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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