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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Feb 29. 2024

수술관찰일지

    입원 전날. 금식과 금수 때문일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 첫 수술이라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새벽부터 들락날락하며 혈압이며 혈당이며 링겔이며 귀찮게 하는데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계속 졸았다. 간병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은 수술에 대한 긴장감을 기어코 이겨냈나보다. 나는 간호사들의 분주함이 귀찮아져 비협조적인 몸짓으로 응답했다.     


    오른쪽 유방의 수술이라 오른팔은 사용금지가 되었다. 링겔 바늘을 하나 더 꽂으려고 몸을 살펴보던 간호사는 이미 링겔이 달려 있는 왼팔을 보더니 발에 꽂겠다고 한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수술 후에는 움직이지 못할 터라 순순히 발을 내주었다. 

     

    침대에 태워진 채 수술대기실로 밀려 들어가니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수술대기실에는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인형공장의 부품처럼 누워있었고, 수술방은 학교 교실처럼 방이 아주 많았다. 대학병원이 큰 이유는 수술방이 이렇게 많아서 큰 게 아닐까.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학교처럼 비밀공간이 또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두리번거렸다. 


    내가 수술하게 될 방에 입장하자, 각종 모니터와 커다란 조명이 반기는 것과는 다르게 온도는 매우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착하자마자 수술실까지 이동하는데 사용한 침대에서 수술실 침대로 교체했다. 가뜩이나 좁은 침대에서 더 좁은 침대로 이동한 셈이었다.


    간호사들은 친절하게 수술 준비를 하며 억제대를 정리했고, 이 억제대는 수술할 동안 나의 자율신경계가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 내 몸을 포박할 용도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좁은 수술침대와 억제대는 마치 곤장을 맞는 조선시대의 죄인과 일맥상통하는 것만 같다. 수술을 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죄스러워지는 건 나 혼자만의 기분인걸까. 이내 호흡 마스크를 내 입에 대며 의사가 말했다.


“자. 이제 주무시고 나면 수술 끝날 거예요.”

'오~ 드라마에서 본 거랑 비슷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깜빡 뜨니 다섯 시간의 수술이 끝나있었다. 뭘까, 이 시간여행은.     


    눈을 뜨니 친정엄마가 눈앞에 있었고, 최대한 괜찮은 척 노력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고 마취가 덜 깨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무말 대잔치를 했지만 엄마에게 괜찮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일러둔 건 기억이 난다. 휴대폰 사진첩에 셀카가 스무 장 넘게 저장되어있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진상짓을 한 모양이다.     


    걱정했던 응가는 마렵지 않았고, 소변줄을 달고 있으니 화장실에 갈 일이 없었지만 간병을 자처한 친구는 기저귀를 갈아보고 싶어 안절부절 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소변색이 민트색이라는 것이었다.


“저... 소변색이 이래도 되나요?”


    간호사는 마취와 수술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약물을 투여받아 그런 것이라 걱정하지 말라는 안도를 전하며 곧 소변색이 제대로 나올 것이라 했다. 하지만 로봇의 윤활유 같은 색의 소변인지 뭔지 모를 액체를 보고 있자니 내 신장이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워져 물을 연거푸 마셔댔다.


    등에 위치한 광배근을 뜯어서 도려낸 가슴에 붙였다. 누워도 눌리고, 엎드릴 수는 당연히 없고, 옆으로도 눕지 못한다. 그래도 무통 주사를 맞고 있으니 그렇게 죽을 듯이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잠들지 못하고 10분에 한 번씩 깨어나는 것 보면 내 몸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중인가보다.     



    수술 다음 날. 불편하지만 이미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할 수 있었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했고, 몸의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아니 아픈 근육을 쓰지 않고 일어나는 방법을 금새 터득한 것이다. 그동안 나를 열심히 굴리며 운동시켜준 과거의 남편에게 치얼스... 온 몸은 퉁퉁 불어있고, 가슴과 연결된 피 주머니에서 피가 방울방울 채워지는 걸 보니 회복에는 몇 일 더 걸릴 것이다. 불편하지만 세끼 밥 잘 먹고, 소화 잘 시키고, 햇볕을 잘 받다 보면 금새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본다. 


    휴가까지 써가며 간병을 하기 위해 왔던 친구는 아쉬운 간병놀이(?)를 접어야 했고, 다른 친구가 간병을 하겠다고 병원에 들어왔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울먹거렸고 씻지 못해 사자처럼 부풀은 내 몰골을 보며 울었다. 


"왜 울어. 나 괜찮은데."

"야이 가시나야... 이게 괜찮은거야?“     


    감정에 빠질 새도 없이 레지던트는 수술 부위의 드레싱을 하러 왔고, 수술 부위를 본 친구는 또 울었다. 13cm정도의 긴 칼자국이 등에 박혀있다고 했다. 


‘흉터 연고를 미리 좀 사두는 게 좋으려나.’


    그러나 그 부분은 내 손이 닿는 부분이 아니었고, 중증 환자인 남편에게 발라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직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말도 하지 못한 딸에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하나 남은 딸에게 암선고가 내려졌다는 충격을 과도하게 받은 친정엄마에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건지 고민을 해야하는 문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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