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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Feb 22. 2024

만나야 멈추고 마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 나에게 특식을 선사하기 위해 해장국집을 찾았다. 병원 밥은 그 어떤 특식을 내놓더라도 맛이 없다. 그것은 비단 병원 밥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 그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듯한 특유의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해장국 하나가 메뉴의 전부인 가게의 빈자리에 앉으니 빨간 국물이 가득한 해장국은 마치 예약이라도 한 마냥 삽시간에 차려졌고, 사람들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며 먹어댔다.      


‘와, 뼈다귀 진짜 많다 맞재?’

‘그렇게 살을 남기면 어떡하노. 내가 발라줄게 줘봐라.’     


    이곳은 남편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자주 왔던 곳이다. 짠돌이인 남편은 저렴하고 양 많은 음식을 즐겼고, 그 중 한 곳이 여기였던 사실을 떠올리며 잠시 웃었다.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뼈다귀를 헤치며, 마치 내일이 없을 것만 같은 사람처럼 과거를 추억하며 해장국을 들이켰다. 그래서 그런지 기대했던 것만큼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병원의 입원 창구에 가서 입원동의서를 쓰고 환자 등록을 했다. 나중에 올 친정엄마와 간병을 자처한 친구도 미리 보건소에서 검사하여 발급받은 코로나 결과지와 신분증을 지참하여 보호자 등록을 하고 입원실로 들어올 것이다.      


    간호사에게 안내받은 자리는 5인실의 창가자리다. 햇빛은 가득한데 겨울이라 창틈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비타민D 합성이 잘 될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며 이런 상황을 대비해 무더기로 챙겨온 핫팩을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병원에서는 온열기구를 사용하면 안되기 때문에 핫팩을 온몸에 붙이고 잠들 요량이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테니 손이 닿는 행동반경에 멀티탭, 충전기, 휴대폰 거치대, 이어폰, 미스트를 소꿉놀이하듯 배치해두었다. 자리를 정리하다 문득 이 병실에서 신난 사람은 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행동을 멈추었다. 

    수술을 하러 온 암환자가 왜 이렇게 들떠 있는걸까. 

    암과 이별할 생각에 들뜬 걸까. 

    아니면 너무나도 오랜만에 휴가 아닌 휴가를 선물 받아 신이 난 걸까. 

    그것마저 아니라면, 치매가 있는 남편을 간병하다보니 나도 뇌의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고장 나 버린 걸까.     

    

    오랫동안 씻지 못할 예정이라 긴 머리를 미리 잘라야 하는건지 고민했는데, SNS를 살펴보니 땋으면 된다는 꿀팁을 보게 되었다. 머리숱이 많아 땋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쫑쫑 다 땋아두고 거울을 보니 수술을 하러 온 환자가 아닌 소풍을 나온 여자애 같다. 그러나 딱히 할 일이 없어 다시 풀었다가 땋는 것을 세 번 정도 더 반복했고, 그러고 나니 이것저것 검사를 하러 가라고 적힌 안내장과 함께 간호사가 병실에 방문했다.      


    림프 검사를 위해 핵의학과에 가서 가슴에 주사를 맞고 사진을 찍었다. 주사는 잘 맞는 편인데 이 주사는 너무너무 아팠다. 검사자는 약물이 잘 퍼져야 한다는 이유로 가슴을 주물럭대다 또 사진을 찍었다. 이쯤 되니 환자가 아닌 실험실의 짐승이 된 것 같다. 유방암이라는 병명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보다 수치심이 더 드는 이름인 듯 하다.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러 마취과 상담실로 이동했다. 남편의 수술 때마다 매번 듣는 이야기였지만, 남편이 아닌 내가 각종 부작용이며 호흡부전이며 생명이 위독해져 중환자실에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듣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동의하십니까'라는 말에 그리 동의하고 싶진 않았지만, 서명을 휘갈기지 않으면 이 현실이 지나가지 않을까봐 군말없이 펜을 들었다.            


    암의 위치를 설명할 때 유방암의 경우 몇 시 방향이라고 설명하면 좋다. 대개 유두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위치를 설명한다. 병원에 있을 동안 검사며, 상담이며 각각 다른 의료진들을 계속 맞이하게 되는데, 그들은 수많은 환자 중의 한 명인 나를 특별히 잘 봐주기 어렵다. 오래 대기하지 않고 빠른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병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우측 유방 11시 방향이요."


    은근슬쩍 알아두었던 11시 방향을 알려주자 빙긋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원활한 치료에는 환자의 협조가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새겨두자.          



    슬퍼할 틈도 없이 혼자 이곳저곳 검사를 다니다보니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식은병원밥을 보니 이제야 현실감이 든다. 결국 암을 만나고 나서야 드디어 멈추어 서게 된 나. 주위에서 쉬어가라, 쉬어가라 했던 말들을 조금만, 조금만 하며 고집을 피웠더니 결국 이리 강제로 멈추어 서게 되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일을 3개 4개까지 하며 제발 쉬어라, 쉬어라 했던 내 말을 듣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해서 그렇게 큰 사고가 난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겪어야 깨닫고 마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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