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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Feb 15. 2024

쿨하게 말했지만 그리 쿨하지 않다

    몇일에 걸쳐 시행한 검사의 결과를 듣기 위해 대학병원 유방 외과를 찾았다. 방문 때마다 늘 사람이 많았던 탓에 작정하고 한 시간 더 일찍 갔지만, 이렇게까지 아픈 사람이 많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다른과와 조금 다른 풍경을 말하자면, 4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대기실엔 까만 머리색의 사람보다 형형색색의 모자들이 더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두상이 별로니까 모자보다는 가발이 낫겠지’


    그러나 가발은 오래 착용하면 통기가 잘 되지 않아 피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고, 관리가 어려우며 그러한 불편함을 상쇄하는 가발은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대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스마트폰을 덮어버렸다.  

    

    예약한 시간을 훌쩍 넘긴 1시간 30분 후에야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길 것 같은 기다림은 분노 게이지를 꽉꽉 채워주었지만, 교수와의 독대라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을 호로록 날려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교수는 내가 진료의자에 앉자마자 급하게 말했다. 


“전이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괜찮다’ ‘암이 없다’ 같은류의 말을 가장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까지 제쳐두고 듣고 싶어하는 말을 먼저 해주는 교수에게 무한한 신뢰가 피어났다. 여튼, 전이가 없다는 것은,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천사의 계시로 들렸다. 다만, 다발성으로 발생 중인 기존 암 조직 외에 8시 방향에도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말에 심장이 덜커덕거렸다.      


“수술하면서 여는 김에 다 같이 없애버리죠?”


    나는 쿨하게 말했지만, 마음은 그리 쿨하지 않다. 


“페에도 보이는 게 있긴 한데, 3mm 정도로 작습니다. 초음파에도 안 잡히긴 하거든요.”


    암이 증식하는 환경이 되어 버린 내 몸에 뭔가 있다는 것은 가능성을 제시할 뿐, 크기가 작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어릴 때 앓았던 폐결핵의 자국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정도일까나.     

    추가로, 단백뇨와 혈당, 콜레스테롤도 조금 높은 상태이지만 약을 먹을 정도가 아니니 괜찮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바로 이런 상태가 암의 발병에 좋은 조건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어쨌든 암을 초기에 잡을 수 있도록 빠른 내원을 한 나의 건강염려증을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수술은 첫 번째로 하게 될 예정이라 새벽부터 분주히 준비하게 될 것이다. 


“자가 조직 피판술로 복원까지 하고 나면 5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날 상황에 따라서 더 걸릴 수도 있어요.”

“잘 견딜 수 있게 운동을 해두는 게 좋겠네요.”


    수술을 앞둔 환자의 엉뚱한 다짐. 그리고 엉뚱한 질문.


“저... 수술할 때 굳이 보호자가 필요하나요? 어차피 제가 다 선택하고 결정하고 동의서도 다 서명하고 시작할텐데요.”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나를 향해 고쳐 앉았다.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계획을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고려해서 전달을 해드리고 있긴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면 수술 부위가 커질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마취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누가 동의를 해주고 수술 진행을 할 수 있을까요. 당일 보호자가 오시는 편이 좋습니다.”     


    내 보호자는 누구일까. 결혼한 출가외인은 남편이 보호자인데, 내 남편은 본인의 한치 앞조차 내다보지 못하는 장애인이고, 시부모님조차 없는데. 누가 내 보호자일까. 혼자 아등바등 대책을 마련해보았지만 결국 친정엄마를 불러야 하는 상황임을 인정했다.     

 

    수술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친정엄마를 보호자로 오시라고 해야하는지 고민했었다.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번 듯이 서 있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안다. 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큰 불효라는 것을.     


    수술날의 일정과 병원의 구조를 그림으로까지 그려가며 설명해도 잘 모르는 우리 엄마. 20년 전 남편을 잃고, 10년 전 아들을 잃고, 사위까지 사고를 당해 아기가 되었는데 딸까지 유방암에 걸리니 하늘이 수 천번은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의 암진단 소식을 듣고 치매라도 온 마냥 급격히 인지 상태가 나빠졌다. 엄마의 상태는 내 등에 ‘책임’이라는 십자가를 더 추가하는 일이었다. 엄마까지 안 좋아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좋아하는 김호중 스케쥴은 달달 외우면서 왜 이건 모르는 거야~"


    웃으면서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 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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