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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Feb 01. 2024

이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동안 남편 간병이며, 코로나며, 각종 핑계로 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해주려고 맘카페며 SNS며 ‘초등학생과 주말’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을 뒤져봤다. 하지만 함께 유익한 체험이라도 하려면 3~4시간은 필요하고, 그동안 남편이 혼자 있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집에서 만들기라도 하려 치면 남편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남편이 낮잠을 자는 한 시간 남짓이라면 문화센터의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업을 등록했고, 딸은 수업이 끝나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쪼르르 달려왔다.


“엄청 재밌었어.”


    때마침 마법처럼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을 봐주러 집에 오시겠는 것.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그대로 딸을 데리고 롤러장으로 향했다.      


    딸은 처음으로 롤러장을 가는 것이다. 쌩쌩 잘도 달리는 다른 사람들을 보더니 위험해보인다며 주춤거렸지만 그래도 롤러를 매우 타고 싶어하는 눈치다. 아픈 아빠를 오랫동안 봐서 그런지 조심성이 아주 많은 편이라 넘어지지 않으려고 개미처럼 기어가듯 롤러를 탄다. 아니, 롤러에 서 있는 것도 버거워보이긴 하다.


    그에 반해 나는 꽤 수준급으로 타니 딸이 분해(?)한다. 타기 힘들다고 징징대고 짜증을 내길래 딸에게 좀 더 의사를 물어보고 롤러장에 와야 했던 것인가 싶었지만,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쏟아낸다는 느낌이 들어 일단 다 받아주었다.      


    그날 딸은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면서도 또 가고 싶다며, 나를 이겨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건 롤러장이라서가 아니라 나와의 시간이 즐거웠다는 소리로 들렸다. 오전에 했던 문화센터의 빼빼로 만들기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이제야, 이제서야 나의 하나뿐인 딸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의 사고 이후, 나름대로 딸을 위했지만, 생명이 위험한 남편을 먼저 챙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신을 내버려 둔 철없는 엄마 덕분에 강제로 어른이 된 아이는 자신보다 엄마를 먼저 챙기는 9살의 애어른이 되었다.


    아무리 애어른이라해도 아이는 아이인데. 얼마나 응석을 부리고 싶었을까?

    아빠가 욕을 하고 치매 환자 짓을 하는 걸 고스란히 보며 무언의 이해를 강요당하고 있는 내 딸을 왜 좀 더 보듬어 주지 않았을까?

     그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면서 나는 왜 그랬을까?     


    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엄마라는 사실이 인지될 때마다 흙바닥에 머리를 파묻고 싶어진다. 나는 유아교육과를 전공으로 공부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이 내게 와서 다행이다.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더 늦기 전에 딸에게 눈을 돌릴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잠든 딸의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부비며 용서를 구한다.

    딸,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엄마가 욕심이 많아서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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