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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Jan 25. 2024

수술 전 검사

    수술을 하기 전, 수술을 할 수 있는 몸 상태인지, 혹은 다른 장기로의 전이는 없는지 꼼꼼하게 검사를 하게 된다. 나의 유방암은 호르몬양성 유방암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버지와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의 암이 유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내 딸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BRCA1과 BRCA2, 일명 브라카검사라고 하는 유전자검사를 하기로 했다. 유방암 환자는 난소암의 발병률도 높은 편인데, 이 검사로 유전력을 알 수 있고 10명 중 1명꼴로 발견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 이 검사를 하는 사람이 드문 편이라고는 한다. 겨우 혈액으로 검사하면서 약 130만원의 비용이 든다길래 '이런 도둑놈의 새끼들'하며 읊조렸지만, 단돈 8만원으로 바뀌는 산정특례의 기적을 체험하고 나니 불만은 쏙 들어갔다. 산정특례 만만세.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어서 좋다. 나까지 치료비에 허덕이는 환자가 되지 않아서, 암이라는 게 죄스러운 병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심장초음파를 찍는 날은 검사하는 내내 기분이 영 좋지 않다. 20~30분 걸린다는 검사는 40분이 넘어가도록 찍고 또 찍고, 같은 부위만 계속 찍는 것 같다. 심심찮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자 귓전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고 손목에 채워진 워치는 고심박수를 알려온다. 공황이 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속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더니 검사가 끝났다. 살짝 어지러웠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훌쩍 침대에서 내려왔다. 뭔가 더 이상 병이 있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초음파를 찍는 동안 또 심장이 귓전에서 쿵쿵 뛴다. 최대한 ‘릴랙스. 릴랙스. 나는 괜찮다’를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뼈의 전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Bone Scan에 필요한 주사를 맞기 전, 간호사가 물어본다.

“어느 쪽에 발병하셨어요?”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는데, 어쨌든 발병한 쪽으로는 뭘 들지도 말고 주사도 맞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5년 뒤 관해라는 판정을 들을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평생? 암이라는 게 없어지기는 하는 병이긴 한 걸까?


    간호사는 주사를 맞은 후 4시간 정도 약물이 뼈에 흡수될 수 있도록 시간을 보내라고 하며 나를 보내주었지만, 날이 너무 추워 산책은 못할 것 같고, 뭔가 배가 고픈 것 같으면서도 입맛은 없었다. 음식점 사이를 배회하다 결국 편의점으로 들어갔고, 즉석식품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작은 초코바 하나를 구매했다. 물을 많이 먹어야 검사가 잘 된다고 했던 간호사의 말이 생각나 이온 음료 한 병을 원샷하고 빈병에 물을 담아 한번 더 원샷했다. 목이 탄다. 물 말고는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속이 비어서 그렇겠지만 신경성 위경련을 달고 사는 나는 또다시 위가 조여 오는 느낌에 초코바를 우적우적 씹어 넘겼다.


   MRI와 CT를 찍기 위해 내원한 어느 날, 몇 년 전 CT를 찍을 때 조영제를 맞고 토한 전적이 있어 알레르기 예방주사를 맞겠다고 요청했더니 '전신 발진 및 가려움'이라고 너무 장황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금 민망했다. 그런데 이 알레르기 주사가 킹왕짱이다. 너무 어지럽고 졸려서 체면도 불구한 채 의자에 누워버렸다. 처진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 몸 하나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이 주사는 언젠가 남편도 맞았던 것이다.

'남편이 정말로 머리를 다쳐서 오락가락하는 게 맞긴 한 걸까? 이런 약물들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게 아닐까?'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약물이라는 것은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를 호명하는 소리에 퍼뜩 놀라 남편을 들여보내기만 했던 CT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남편이 검사받기 싫어하며 발버둥을 칠만큼 차가운 공간감과 미래의 세계에 온 것만 같은 이질감. 검사를 받는 내내 남편이 힘들어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이제야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남편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결국 나는 남편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자 발가벗겨져 광장에 던져진 것만 같은 수치스러움까지 느껴지며 화끈거렸다. 아니, 이 화끈거림은 조영제다. 온몸에 50도 정도 되는 온수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든다. 아니, 사실 조영제인지 수치스러움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는데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복습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1시간여에 걸친 검사를 했으면 어느 정도 약 기운이 빠져야 할 텐데, 알레르기약과 조영제의 콜라보는 컨디션을 떨어뜨리는데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했다. 헤롱헤롱거리며 벽에 있는 안전바를 잡고 겨우 버티고 서 있자, 간호사가 혼자 방문한 나를 안타깝게 여기며 다른 동에 있는 MRI실까지 데려다줬다. 그동안 남편의 진료 때문에 자주 봤던 간호사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분명히 필요한 부분 때문에 이 병원을 택한 건데 나의 선택은 브라보다.


    조영제를 맞기 위한 바늘은 상당히 굵은 크기를 자랑한다. 그래서 바늘을 제거하고 나면 지혈을 꼭 세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속으로 ‘그 정도는 아닐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바늘구멍을 통해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한 아주머니를 내 눈으로 보게 되니 저절로 지혈을 위해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로봇이라는 별명을 가진 강철여인이라지만, 이 상태로 운전은 무리일 듯하여 암진단금을 청구하기위해 병원 옆 우체국에 가서 가져온 서류를 등기로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생활비가 바닥이라 걱정했는데 이렇게 솟아날 구멍이 생겼다. 물론, 이 솟아날 구멍은 내 몸을 갈아서 만들어낸 구멍이지만 남편이, 딸이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입을 수 있는 소중한 생활비가 된다면 나를 맷돌로 갈아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불쌍하지도, 처량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고, 나는 그 선택에 후회가 없어야 버틸 수 있는 가장이다.


    조금 있으면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서 저녁을 차려야겠다, 계란이 없어 마트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읊조리며 집으로 가는 터널로 차를 내달렸다.      


    그렇게 암 정밀검사와 수술 전 검사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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