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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Mar 07. 2024

불편하다


    병원 생활에서 불편한 부분이 하나 더 생겼다. 응가가 안 나온다. 똥 같은 소리 한다 하겠지만, 환자의 회복에는 배변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몸에 불필요한 찌꺼기들은 제때 배출되지 않으면 나쁜 가스를 생성하거나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며 컨디션을 더 나쁘게 만든다.      


    4일째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서 처방된 변비약도 먹어보고, 변비에 최고라는 돌코락스도 먹었는데 나의 대장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전신마취를 하면서 장은 영면에 든 것일까.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관장을 택했다. 4일간 먹은 12끼가 내 배에 압축되어있다고 생각하니 심각해졌다. 잘 먹으면 뭐하나. 싸질 못하는데.          


    요즘 병원에 남자 간호사들이 많이 띈다. 성비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인데, 내 똥꼬를 남자 간호사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다. 수술을 한 오른쪽은 아예 움직이지 않아 팔을 등뒤로 넘길 수가 없어 누군가에게 관장을 부탁해야 했고, 내 똥꼬를 볼 생각에 기뻐 날뛰는 친구에게는 더더욱 맡기고 싶지 않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내 똥꼬를 붙잡고 관장을 해주는 간호사가 나보다 어리고, 잘생기고, 신참 간호사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현타가 왔다.


'나는 환자니까. 환자니까'


    주문을 외우다가 문득 간호사를 보니 얼굴이 벌겋게 되어 내 궁둥이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되려 미안해졌다.


”에유. 젊은 간호사가 아줌마 엉덩이를 붙잡고 있으니 이거 참 미안하네~“


    어색한 사투리를 써가며 아줌마티를 내 보았지만, 나는 겨우 36살이었고, 그 간호사는 기껏해봤자 나와 10살 정도의 나이차가 날 뿐이어서 더 민망해졌다.      


    여튼 그렇게 고생했지만 내 응가는 나오지 않았고 혈압을 재러 온 간호사는 똥빛이 된 내 얼굴을 보며 위로했다.


“수술 후에는 그럴 수 있어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마음 편히 드세요.”


    수술한 곳은 제쳐두고 응가에 온 사력을 다했고, 물도 많이 먹었으며, 고작 며칠 전 수술 한 내가 만 보를 채워 걸어대는데도 이놈의 장은 겨울잠에 든 것인지 깨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일주일이 지나서야 땅콩 같은 응가를 시작으로 쾌변하는 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5인실의 환자들은 계속 바뀌어 나갔다. 모두 암 수술을 한 환자들이었는데 멀쩡하게 들어온 수다쟁이 할머니는 위암 수술을 받은 후, 내일이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휠체어를 타고 퇴원하셨다. 

    나보다 세살 많은 젊은 유방암 환자는 양쪽 가슴을 로봇을 이용해서 수술하여 양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고, 비교적 한 팔이 자유로운 내가 끼니때마다 식판을 가져다 줬다. 

    20년전에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아주머니는 한쪽 유방마저 다시 절제했다고 했다.


"이제 가슴이 없어서 유방암에 다시는 걸릴 일이 없지."


    홀가분하게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세상에는 이렇게나 아픈 사람들이 많고,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천지다.           


    그동안 나를 간병을 해준 친구를 돌려보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앉거나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적어도 한 손으로 내 식판을 옮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까지 팽개치고 온 친구에게 얼마라도 쥐어 주려고 했지만 '까까라도 사먹어라'며 내게 더 돈을 쥐어주었다. 

   

    퇴원까지는 아직 몇일 더 남았으니 끝내주게 쉴 요량으로 넷플릭스, 유튜브를 틀어두고 한량 같은 매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온종일 누워서 그런 건지, 병원 침대가 나쁜 건지, 내 경추디스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불편한 허리 방사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수술로 찢어놓은 곳의 통증 때문에 몰랐던 방사통은 점점 허리를 지나 다리까지 내려왔고, 잠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게 되었다. 어째서 유방암 수술을 한 환자가 하지 방사통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게 되는 건가.         


    하지 방사통이 너무 고통스러워 퇴원시켜달라고 애걸복걸했다. 분명 집에 가서 좋은 침대에 누우면 좋아질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매트리스만 아니면 다 나을 것 같았다. 징징거리면서 의사가 보이기만 하면 퇴원시켜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아직 수술한 곳의 배액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호스를 못 빼는데... 일단 열심히 걸어보세요. 그러면 좀 빨리 나올지도 몰라요.”     


    수술을 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나는 똥 때문에 만보를 걸었지만 방사통때문에 2만보를 걸어대며 쏘다녔더니, 환경미화원 이모들의 얼굴을 다 꿰게 될 지경이었다. 아마 그것 때문에 허리가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 가고 싶었다. 허리가 아파서 집에 가고 싶었던 건지, 너무나도 오랫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면 재활과 치료나 도수치료라도 받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그렇게 재활의학과로 협진을 받아 도수치료와 매트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복용하니 숨을 못쉴 것 같은 방사통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병원에 있어봤자 회복이 잘 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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