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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Mar 14. 2024

집에 가면 낫는 병


    드디어 가슴에서 나오던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교수님은 퇴원을 시켜줄 수 있겠다고 했고 나는 쾌재를 불렀으며 호스를 빼 줄 의사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번개같이 짐정리를 끝냈다.

    금새 도착한 의사는 내 겨드랑이와 가슴에 있는 작은 호스들을 살살 돌려가며 뽑아내기 시작했다.


“아프면 아프다 하셔요.”


    약간 따끔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최대한 안정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자율신경계라는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거였던가. 가슴이 두근두근거렸고, 이내 그 두근두근하는 소리는 귓전에서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크게 들려왔다.


-둥 둥 둥 둥


    의사가 호스의 끝까지 뽑아내는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둥둥거리는 북소리는 사라지고 삐—하는 이명이 들리며 시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의사가 흑백으로 보였고, 뭐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명 때문에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의사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물었고, ‘이게 지금 뭐예요?’하고 입을 달싹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급하게 혈압을 재고 나를 침대에 눕혔다. 나중에 물어보니 60/40으로 엄청난 저혈압이었다고 했다. 앞으로 나는 이 증상을 자주 겪게 된다.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예민한 환자분들은 일시적으로 혈압이 떨어지는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좀 쉬시다가 퇴원하시면 되요.”


    어떻게든 집으로 가고싶었던 나는 잠깐 누워있는 척을 하다 퇴원수속을 했다.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몸에 붙이고, 왼팔 하나로 짐을 챙기고, 화장실도 가고 비척비척 엘리베이터를 탔다. 원무과 앞으로 걸어가 왼손으로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어 결재했으며 서류와 약을 챙겼다. 다행히 병원이라는 곳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움직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는 서럽다거나 외롭다는 감정을 잊어버린지 오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메말라 쩍쩍 갈라진 논바닥이 되어버린 감정을 꺼내어 볼 여유따위도 없었고, 그것보다는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혼자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근처에 사시는 외삼촌을 불렀다.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오자,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게 씻은듯이 나았다.     


    그런데 으레 그렇듯, 일이라는 것은 한꺼번에 오는가보다. 퇴원한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남편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남편이 머물고 있는 병동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는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염증증상이나 감기등이 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만기신부전으로 인해 신우신염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자신이 건강을 케어할 수 있는 인지상태가 아닌데다, 이미 몇번의 패혈증을 견뎌온 장기부전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라니.


"오늘 퇴원 될까요?"


    비록 지금 내 팔이 움직이지 않아 남편을 제대로 케어할 수 없지만 그게 문제랴. 반찬이야 사먹으면 되고, 왼손으로 청소기를 돌리면 되고, 딸한테 좀 시키면 되겠지, 몇일만 고생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나였다.


    그렇게 남편을 퇴원시켰다. 남편은 나를 1년만에 본 친구처럼 반가워했고, 내 팔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물어왔으며, 아파해하는 나를 궁금해하고, 붕대에 칭칭 감겨있는 나를 보고 걱정했다. 그래도 이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저 사람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을 꼭 쥐며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또다시 다짐했다.


   

    그래도 집에서 잠을 자니 허리가 씻은듯이 나았다는 점은 좋았다. 몸이 덜 불편하니 정신적으로 피곤한 것은 견딜만 했다. 물론 남편은 여전히 정신이 없고, 하루에 몇번이고 낮잠자고 식사를 해야 했으며, 집은 점점 개판이 되어갔다. 새벽부터 일을 나갔던 친정엄마가 퇴근후 우리집에 들러 남은 집안일을 처리해 주시는 일을 반복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죄송했지만 죄송해하면서도 집안일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이지경이 될 때까지,

이 상태가 될 때까지 내 몸을,

이 상황을 끌고오지 않았던가.


    퇴원 후 이틀 뒤. 수술 부위의 드레싱을 하려고 했는데 차마 수술한 부위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수술부위가 등짝이라 내 손은 닿지 않았고, 친정엄마에게 보여줄 수도, 내 작은 딸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다. 일단 남편에게 드레싱 부위를 떼어보라고 시켰더니 한쪽눈이 실명된 남편은 떼는 것부터 어려워했다.


    어쩌랴. 내가 가진 좁은 인맥을 동원해야했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팀장님이 우리집 근처를 지나는 중이라 하길래 잠시 집에 들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등판부터 보여주며 드레싱을 해달라고 했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도 팀장님은 새 거즈로 드레싱을 해주었고,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은 무언가를 물어볼만큼 가벼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급하게 드레싱을 한번 하고, 퇴원 후 첫 외래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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