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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Mar 28. 2024

노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메리하지 않다. 30여년간 성당에서 피아노나 오르간을 연주해 온 베테랑연주자정도면, 어떤 상황에 닥치든 멋지게 연주할 수 있을테지만, 그 베테랑은 수술한 지 겨우 2주밖에 안된 환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반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정중히 거절해도 나쁘지 않겠지만 왠지 억지로라도 해내고 싶었다. 그거라도 해야 내가 쓸모가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기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달려왔던 것일까.      

    그래서 허리를 곧게펴고 오르간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건반을 누르며 연주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기쁜 표정으로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 반짝반짝한 트리의 끝에 큰 별이 달려있다.   

   '아기 예수님. 부디 제가 이 자리에 내년에도 앉아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가슴이 먹먹하게 차올라 황급히 오르간의 볼륨 페달을 높였다.            



             

    남편의 산재요양이 종결되었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장해등급을 확인하기 위한 자문의를 불렀으니 방문을 해달라고 한다. 오늘도 협조가 되지 않는 남편을 꾸역꾸역 데리고 공단에 방문 하니 골골대는 낚시조끼를 입은 할아버지가 앉아있다. 분위기상 저 사람이 자문의라고 하는 것 같다. 자문의는 걸어들어오는 남편을 보자마자 한마디 했다.        


"장애도 없구만 뭔 장애야“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일까. 썩은 표정으로 내 옆에 서 있는 담당 직원을 쳐다보니 곤란한 얼굴로 남편의 서류를 자문의에게 내밀고는 이것저것 말한다. 기분이 팍 상한 나는 자문의를 빤히 쳐다봤고 내 눈빛을 마주친 자문의가 뜬금없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왜? 그렇게 보면 내가 뭐 다른 걸 해줄 줄 아나? 내가 00 병원에 20년을 근무했어! 이런 환자들을 수천명을 봤다고!"          


    갑자기 본인의 무용담을 10분 동안 늘어놓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일선에서 물러난 게 서러워서 그러는 걸까. 왜 내게 본인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걸까. 난 지금 남편의 장해심사를 받으러 왔는데 말이다.      

여튼, 담당 직원이 겨우 자문의를 진정시켰고, 오늘의 목적인 장해심사를 시작했다. 남편에게 걸으라고 지시했고, 당연히 걸을 줄 아는 남편은 걸었으며 자문의는 장애가 없다고 코웃음을 쳤다.         

  

”애시당초 신체적 마비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 인지장애가 있는 환자입니다. 서류는 보셨어요?“

”아니 장애가 없는데 뭘 봐.“          


    나이가 들더니 귀까지 먹은 모양이다. 이 이상 자문의와 이야기를 지속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담당 직원에게 이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며 신경외과 자문의가 아닌, 정신의학과 자문의를 통해 장해심사를 하겠다고 알려왔다. 정신의학과 장해심사는 수시로 잡히는 심사가 아니라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안내받았지만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으니 괜찮다고 말해두었다.           


    그저 열심히 일한 내 남편은 산재 사고를 당했을 뿐인데,

    나는 그의 아내일 뿐인데,

    내 남편의 장애를 내가 이렇게까지 증명해 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럽고, 서럽다.

    앞에 있는 서류만 봐도 충분한데.

    그걸 볼 줄 아는 의사 앞에 던져놨는데도 보지 않는다니.

    그럼 대체 누가 저 서류를 읽어준단 말인지.

    아마 지금까지 반복된 이 상황들이 내 몸속의 암새끼들을 키워오지 않았을까 하는 화살을 돌려본다. 그러지 않으면 이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으니까.  

          



    남편의 시각장애를 등록하기 위해 동사무소로 갔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안와골절이 있어 남편의 눈도 다친 것 같다고 했지만,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눈은 뒷전이었다. 서서히 시력이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고,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스테로이드제를 써 보지도 못한 채 남편의 빛은 꺼졌다. 왼쪽 눈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고, 오른쪽 눈은 0.16의 시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기정사실이 적힌 진단서를 들고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장애...등록하려고요.“          


    몇 번이고 찾아왔던 곳. 담당 직원은 씁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미 네 다섯번의 장애를 등록한 적 있었는데 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잊지 않고 등록해 두어야 차후 뒷 탈이 없다. 시각장애는 재평가가 없는 장애라 다시 서류를 뗄 일이 없긴 하지만 영구장해라는 말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언제까지 나는 남편을 더 돌봐줄 수 있을까. 내가 남편의 손과 눈과 귀와 발이 되어주어야 할 텐데. 나는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내 몸은 괜찮은 걸까.

    끝끝내 나는,

    나를 걱정하지 못하고 남편을 걱정하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드디어 방사선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심장이 요동을 치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일단 남편을 맡겨놓을 곳이 없으니 데리고 왔고, 오늘도 여전히 남편은 정신이 없으며, 나도 정신이 없다. 좀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병원에 오는 50분 내도록 '어디에 가는데?'를 스무 번도 더 물어본 것 같다. 이젠 대답하는 것도 지친다.


    아니, 내가 좀 더 건강했다면 대답하는 게 지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남편이 사고 후 집으로 처음 돌아왔을 때의 의욕 만만이었던 나는 하루에 백번도 더 대답해 줬던 것 같다.


    시간이 약이라는 건 다 거짓말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지날수록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왜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남편은 그대로고, 익숙해지지도 않고, 상황은 더 나빠만 지는 걸까.           


    방사선실에 도착해 나를 인증하는 환자 바코드를 찍고 간호사에게 말해두었다.          

"저희 남편인데요, 치매증상이 있어요. 어디 가지 않도록 조금만 봐 주시면 안될까요?"     

     

    자주 하는 부탁이다. 어딜 가서든 폐 끼치는 건 잘하니까. 부끄럽지 않다. 나와 내 남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이 정도의 부끄러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부탁쯤은 누구나 들어주는 나름 따뜻한 세상인 것도 잘 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간호사는 아주 친절하게 내 치료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사선실. 옆에 조그맣게 마련된 부스안에서 상의를 전부 탈의 했고, 미리 준 작은 부직포 천으로 가슴을 가리고 나왔다. 잠시 가려진 그 부직포는 이내 방사선사에 의해 걷히게 되었고, 지시에 따라 차가운 기계 위에 팔을 위로 올려 뻗었다. 수술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해서 팔을 쭉 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부분에서 혼자 뿌듯해했다. 뭔가 해냈다는 기분. 내게는 그런 성취감이 필요했다.   

        

    남편의 사고가 발생한 지 3년 남짓. 일도 하지 않고 남편만 보고 매달린 지 3년 남짓.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는 3년 남짓.

    그리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지금.

    나라도 회복이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 회복은 내 팔이 이렇게 잘 올라간다는 것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방사선을 받기 전, 의사가 긴장한 나에게 한마디 한다.  


"수술한 유방에 방사선 조사를 하는데, 이 방사선이 직선으로 향하는 성질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폐의 하엽 쪽에 손상이 갈 수도 있어요. 약간의 감기나 기침이 생길 수 있는데 방사선 종료하면 금방 좋아지실 거예요."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가 그리 괜찮은 이야기이진 않다.   

    방사선이 시작되었고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MRI보다는 조금 덜 시끄러웠고, 조금 더 개방되어있어 답답함이 덜했다. 하지만 방사선 반사판이 내 코앞까지 와 있는 압박감을 견디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그렇게 약 20여분간의 방사선이 끝나고 후다닥 일어나 옷을 입고 나가보니 다행히 남편은 얌전히 앉아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남편의 손을 붙잡아 병원을 나섰다. 이렇게 하는 방사선이라면 16번이 그렇게 힘들 것 같지 않다.

살을 에이는 겨울이 지나면 어떻게든 봄이 온다. 내게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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