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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Jan 11. 2024

확진

    나는 김해라는 지방에 산다. 나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주변 지인들은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 보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진단만 받았지, 다른 검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으므로 일단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예약을 잡았다. 사실, 산재사고를 당한 남편을 두고,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서울까지 먼 걸음 할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결정이었다. 나는 환자가 되었지만, 환자로써의 삶을 누릴 수는 없었다. 예약한 대학병원에서는 진료 전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조직 슬라이스, 진료의뢰서, 조직검사 결과서, 신분증, 영상CD였다.


    예약 날, 대학병원에 도착하여 먼저 영상 CD를 기계로 등록하고, 초진 접수를 한다. 초진 신환자는 아침 일찍 와서 등록 해야하기 때문에 바쁘게 왔는데도 사람이 많다. 머리를 다쳐 치매에 걸린 내 남편을 맡길 곳이 없어 일단은 데리고 왔는데 남편은 나에게 조잘조잘 아무말대잔치를 한다. 참 고맙다. 내가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기나긴 대기시간동안 남편은 화장실 가고 싶다, 물 먹고 싶다, 언제 끝나냐, 배고프다 등등 계속 내 옆에서 조잘거렸고 대답할 의지조차 없는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다 호명된 내 이름에 도망치듯 진료실로 들어섰다.


    진료실에 있는 초음파로 다시 한번 암이 있는 부위를 확인했다. 심각한 표정의 교수는 초음파용 젤을 나의 몸통에 다 뿌려놓고 기계로 이곳저곳을 문질러댔다. 그래도 초음파용 젤이 깜짝 놀랄만큼 차갑지 않도록 데워놓아서 다행이라는 것으로 나를 달랬다. 일단 갑상선과 임파선까지는 별일 없는 것 같아 잠시 한시름 놓았지만, 내 몸에 암새끼가 자라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초음파상으로는 0기라고는 하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다발성으로 발생하고 있는 중이라 광범위한 제거가 불가피 하다고 한다. 부분절제로 할 수 있으나 불안하면 전절제를 할 수 있다고 하며, 외형적 문제가 있을 테니 재건술이 필요하면 해 줄 수 있다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인후두암에 걸렸던 아버지와 혈액암에 걸렸던 남동생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하자고 하여 반갑게 동의했다. 내 딸에게 이 빌어먹을 암새끼가 유전되진 않을지 가장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 유방암이라니.


    진료가 끝나자 먼저 산정특례를 등록하라고 간호사가 안내했다. 20년 전 아버지의 암 투병때는 산정특례가 없어서 정말 집안 기둥이 뽑혔었다. 10년 전 동생의 암 투병때는 산정특례가 10%여서 그나마 괜찮았다. 지금 나의 산정특례는 5%. 암에 대해 나름의 역사를 경험한 나로써는 대한민국의 발전되는 의료체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1분도 되지 않아 휴대폰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산정특례에 등록되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덜 반가운 안내가 도착했다. 아, 나는 이제 확실한 암환자구나. 실감이 났다. 하지만 감정에 빠질 사이 없이 남편을 이번 주 내로 어느 병원이든 입원시켜야 했기에 병원을 찾아봐야 했다. 그래야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행히 딸은 친정엄마가 연차를 내어 봐준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 나면 아무리 못해도 2주 이상은 친정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친정엄마의 회사에 계속 누를 끼치는게 가능하련지 걱정이 된다.     


    수술을 하기 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수술에 적합한 상태인지, 전이가 없는지 확인하는 혈액검사&소변검사, 골밀도검사, 유방 단층촬영, 흉부x-ray, 폐기능검사, 심전도검사, 유방초음파, 심장초음파, CT, MRI, Bone scan 등등을 받아야 한다. 오늘은 이 중에 할 수 있는 검사를 하기로 했다. 이것들은 남편의 수많은 수술을 하던 몇 년간 계속 동의했던 검사들이었다. 그걸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산정특례까지 받아버린 새로운 암환자는 수술까지 남은 한달 동안 불안해하겠지만, 어쨌든 0기라고 하는데다 암이 그렇게까지 쑥쑥 자라진 않을 거라는 교수의 위로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한달 전 부터 피부에 약간의 자극이 있으면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려운 소양증이 생겼다. 얼마나 긁어댔는지 욕창처럼 피부가 다 일어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암새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은 나름의 위안을 주었다.


    남편과 함께 검사를 하는 동안 간호사들에게 앵무새처럼 전달했다.

“저희 남편은 머리를 다친 치매환자예요. 배회를 하지 않도록 잠시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내 병의 원인에 남편의 간병이 확실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입원수속을 더 빨리 진행하기로 했다. 산재로 등록된 병명들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서 산재로 입원을 할 수 없으니 건강보험으로 입원하기로 했고, 입원이 가능한 병명을 뒤져보니 당뇨가 있었다. 다행이다. 당뇨라면 입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솟아날 구멍이 바늘구멍만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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