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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Jan 04. 2024

아직도 올 게 또 있나

    2019년 7월 30일. 나의 시간이 멈추었다. 함께 미래를 꿈꾸던 남편은 피투성이가 되어 심정지가 된 상태로 돌아왔고, 남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놓고 매달렸다. 그리고, 의료진의 격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고 1년만에 '7살의 수준의 인지장애, 좌안 실명, 손가락절단, 신장투석,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와 자발적 간병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간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편은 기억이 없었다. 내가 누군지 몰랐고 자꾸 집으로 가야한다고 집 밖을 나가고자 했고, 공격성이 심했다. 이를 붙잡고 실랑이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고, 남편의 재활, 투석, 식사, 집안일, 그리고 만6살의 딸을 육아하는 일까지 모두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남편의 몫까지 쉼 없이 달려내야만 이 시간이 다시 흐를 것 같았으니까. 힘들다거나, 슬프다거나,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낄새도 없이 나는 매일을 그렇게 흘려내었다.






    코로나 백신이 나왔다. 이걸 맞으면 코로나에 걸렸을 때 감기처럼 덜 앓는다고 했지만,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처럼 아플것이라는 예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간병녀에게 너무나 소중한 3일이 몸살 때문에 훌러덩 날아갔다. 남편이 침을 뱉은 자국, 오줌을 지린 바지를 벗어놓은 옷가지, 음식을 먹다가 뱉은 자리 등... 거의 초토화 된 집안꼴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초토화 된 내 몸에는 흔적이 없는지 살펴봤는데 가슴에서 유즙이 분비된다.


    내 나이 만 36세. 아이를 낳은지 7년이 넘어간다. 코로나 백신이 유즙을 분비시킨다는 보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동네 유방내과를 검색해본다. 아직 국가검진을 할 나이가 아니라 유방외과는 와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파진 남편 때문에 건강염려증이 생긴터라 조금이라도 아픈곳이 생기면 으레 병원으로 출동한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는 물혹의 모양이 뭔가 이상하니 조직검사를 하길 권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남편의 병원생활을 오래 지켜본 나로써도 나의 초음파 상 보이는 녀석은 뭔가 이상하다. 일반 물혹들은 슬라임처럼 펑퍼짐하지만 저 녀석은 '내가 바로 그 놈이다'라고 말하는 듯 벌떡 서 있다. 게다가 의사가 자신의 무게를 이용해서 조직검사용 바늘을 찔러넣어야 할 정도로 뚫기가 힘든, 단단한 조직을 가진 녀석이었다.


‘아, 이 세포는 이미 내 것이 아니구나’


    시술이 끝나고 피가 많이 나올거라며 가슴에 붕대를 대고, 그 위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올려준다. 멍하니 누워 있다 불안한 마음을 잊기 위해 휴대폰 게임을 열었다. 남편에게 사고가 난 후 부터 시작했던 게임. 벌써 6천판이 넘었건만 현실은 전혀 레벨업이 되지 않는다.


    조직검사는 다음주에 나온다고 했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쯤에 병원에 내원하면 된다고 한 말에 끄덕였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간병녀의 일상을 보내느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울리는 전화벨에 퍼뜩 정신이 든다. 직감적으로 이 전화는 좋은 전화가 아닌것을 알아챘다.


"병원입니다. 저번주에 하셨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악성종양. 암으로 나왔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운을 떼었다. 대문자 J인 계획의 소하랑 플랜에 악성종양일 가능성도 염두에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언제 병원에 내원하면 되나요."


    의사는 대학병원 예약을 먼저 하고 조직검사 결과지와 소견서를 가지러 오라고 한다. 병원은 이미 정했다. 남편이 계속 다니던 대학병원. 혹시나 내게 전이가 있다면 안면이 있는 교수님들께 손쉬운 협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잠시 검색해 보았는데 유명한 교수님이 눈에 띄었다. 대학병원에 있는 지인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유명한 교수님은 진료가 어렵다며 한단계 밑의 교수님을 추천해 준다.


    전화로 예약을 마치고 바로 보험을 체크했다. 남편의 사고 후, 혹시나 해서 보험을 보강해두길 정말 잘했다. 딱 1년 10일전에 가입해 둔 암보험에서 진단금을 수령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불행인지 행운인지...


    그나저나 초음파상으로 봤던 조직은 벌떡 서 있긴 해도 크기가 정말 작았다. 그래서 자체에 대한 걱정은 그리 들지 않았지만 암은 전이가 무서운 병이라 림프절로의 전이가 가장 걱정이 된다. 하지만 설레발은 치지 말자. 뭐든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렇게 내 감정을 누르고 누르고 꾹꾹 밟아두었다. 아니, 그렇게 감정을 올릴 새도 없이 남편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실랑이를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편의 손을 붙잡았다.


"나... 아프대."


    남편은 조용해졌다.


"배 아프나?"

"아니. 유방암이래."

"... 괜찮을거야."


    남편은 조용히 소파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다가 3분이 지난 후, 나에게 묻는다.


"이모는 누구예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다음에 무얼해야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 무너져 앉을 것 같으니까.


내 나이 서른여섯.

열심히 살고 또 살아도 인생의 곤두박질은 계속된다.

아직도 내게 올 고난이 남은걸까.







:) 첫 출판 작품 '휴가갑니다'의 후속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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