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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Jan 04. 2024

아직도 올 게 또 있나

    코로나 백신이 나왔다. 이걸 맞으면 코로나에 걸렸을 때 감기처럼 덜 앓는다고 했지만,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처럼 아플것이라는 예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모더나와 화이자, 얀센이라는 세개의 선택지에서 골라진 모더나였지만 세개 중 무엇이 되었든 나의 몸에서 짬뽕이 될 항체는 내게 '몸살'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을 것이 뻔했다. 3일을 죽다 살아난 후, 혹시나 반점같은 게 생기진 않았을지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가슴에서 유즙이 분비된다. 


    내 나이 만 36세. 아이를 낳은지 7년이 넘어간다. 코로나 백신이 유즙을 분비시킨다는 보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는 동네 유방내과를 검색해본다. 아직 국가검진을 할 나이가 아니라 유방외과는 와본 적은 없지만, 아픈 남편 때문에 건강염려증이 생긴터라 조금이라도 아픈곳이 생기면 으레 병원으로 출동한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는 물혹의 모양이 뭔가 이상하다고 하며 조직검사를 하길 권했다. 나도 나름 초음파를 볼 줄 아는데, 내가 봐도 이상한 것이 일반 물혹들은 슬라임처럼 펑퍼짐하지만 저 녀석은 '내가 바로 그 놈이다'라고 말하는 듯 벌떡 서 있다. 게다가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검사용 바늘은 저 녀석을 뚫기조차 힘들 정도로 단단했다. 


‘아, 이 세포는 이미 내 것이 아니구나’ 


    시술이 끝나고 피가 많이 나올거라며 가슴에 붕대를 대고, 그 위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올려준다. 멍하니 누워 있다 불안한 마음을 잊기 위해 휴대폰 게임을 했다. 오래전부터 했던 게임은 벌써 6천판이 넘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레벨업이 되지 않는다. 


    조직검사는 다음주에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다스릴 새도 없이 먹겠다고 덤비는 인지장애 남편과 실랑이하며 매일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주일 뒤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직감적으로 이 전화는 좋은 전화가 아닌것을 알아챘다.


"저번주에 하셨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악성종양. 암으로 나왔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운을 떼었다. 계획의 소하랑의 플랜에 악성종양일 가능성도 염두에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언제 병원에 내원하면 되나요."


    의사는 급하니 일단 대학병원 예약을 먼저 하고 조직검사결과지와 소견서를 가지러 오라고 한다. 병원은 이미 정했다. 남편이 계속 다니던 대학병원. 혹시나 내게 전이가 있다면 안면이 있는 교수님들께 손쉬운 협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잠시 서치해 보았는데 유명한 교수님이 눈에 띄었다. 대학병원에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유명한 교수님은 진료가 어려우니 한단계 밑의 교수님을 추천해 준다. 의심없이 바로 추천해주는 교수님을 예약했다.


    내가 봤던 그 조직은 벌떡 서 있긴 해도 크기가 정말 작았다. 그래서 자체에 대한 걱정은 그리 들지 않았지만 암은 전이가 무서운 병이라 림프절로의 전이가 가장 걱정이 된다. 하지만 설레발은 치지 말자. 뭐든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나의 현실감은 내 감정을 누르고 누르고 꾹꾹 밟아두었다.


    전화로 예약을 마치고 바로 보험을 체크했다. 남편 사고 후 혹시나 해서 보험을 보강해두길 정말 잘했다. 딱 1년전에 가입해둔 새로운 암보험에서 진단금을 많이 수령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다음에 무얼해야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 무너져 앉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엄마께 조심스레 알렸고 엄마는 본인의 직장에 갑작스런 나의 병으로 인한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음을 언지해 두셨다고 한다. 


    뇌병변 환자인 내 남편에게 말했다. 잠시 멘붕이 온 듯 했지만 이내 괜찮을거라 말했다.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내가 한 말을 몇분이면 잊어버리지만 난 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릴 필요는 있었다. 그게 아니면 나는 나의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현재,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외래를 기다리고 있다.


내 나이 서른여섯.

열심히 살고 또 살아도 인생의 곤두박질은 계속된다.

아직도 내게 올 고난이 남은걸까.





:) 첫 출판 작품 '휴가갑니다'의 후속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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