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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쌤 Aug 03. 2024

네팔, 경계의 가벼움을 위하여

 네팔로 가는 길


 티베트를 떠나 카트만두를 향해 달리는 길도 만만치 않다. 산을 향해 오르고 마을로 내려오고 또 산을 향해 오르고 이렇게 굽이굽이다.

 그런데 어찌 높은 산 틈틈이에 집들을 지은 걸까. 외딴집들도 아니고 마을이라 할 만한 여러 집들이 모여 있다. 산을 배경으로 한  빨간 지붕의 집들은 엽서에서 볼 만그림 같은 풍경이다. 

 차가 나선형으로 하염없이 도는 사이 우리는 멀리서 보았던 그 집들을 지나간다. 헉, 가까이에서 보니 그림 속 집들이 사실은 그냥 벽돌집이거나, 혹은 쓰러질 듯한 허술한 집들이라는 것.

 평지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달동네를 이루고 있는가. 반전이긴 하지만 네팔의 독특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네팔은 또 내게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카트만두에 가면 모든 곳에서 히말라야 설산들을 볼 수 있을까. 안나푸르나가 병풍처럼 펼쳐있을 것인가.


 저 멀리 붉은 벽돌의 멋진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여느 집과 확실히 다르게 근사한 집 같다. 돌아 돌아 우리가 그 집 가까이로, 구불구불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딱 그 집 앞에 서는 거다. 호텔 겸 식당인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단다. 2층 베란다에서 보는 전경 역시 한 세상을 다 가진 듯한데 날이 맑을 때는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인단다.

 식당에는 깔끔하고 맛있는 뷔페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쾌활한 신음을 뱉어낸다. 사람 사는 구석에 온 듯한 기분. 제일 먼저 맥주를 찾는다. 여행 후 처음 대하는 술이다. 그동안 고산병 걸릴까 쫄다가 이제 막 자유를 얻어 한잔 마신다. 그런 맛이 없다. 꿀떡꿀떡꿀떡 우아하게 목 넘어간다....


 시간 여유가 있다. 

정원도 돌고 먼 지경을 감상하며 충분히 노닐다 길을 나선다. 이 집은 다시 오고 싶다. 이름이 뭐였더라. 러브 어쩌고였는데.

 감동이 길지 않다. 곧 카트만두로 들어서고 우리는 다시 켁켁거리기 시작한다. 

차들 빵빵대고, 먼지 휘날리고, 도로는 정신없고, 사람들은 다 쏟아져 나온 듯하다. 

가이드의 말대로 좁은 도시에 4백만이 모여 산다니 우리는 천상에서 속세로 내려왔음을 바로 깨닫는다. 

 어휴... 호텔은 어디에 있을까. 특급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특급호텔이 있을 만한 자리가 아니다.

 골목 안으로 깊숙하게 차는 들어간다. 그러더니 정말 썩 괜찮은 건물이 떠억 나타나는 거다. 

이름하여 특급호텔 솔티. 

저 밖과 이 안이 이토록 분명하게 경계가 나뉘다니 네팔이 신기하고 놀랍다. 



카트만두 순례


 스엠부나트(원숭이 사원), 카트만두왕궁, 쿠마리사원을 돌아본다. 

이 유적지들은 모두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는데 너무 관리가 안 되고 방치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비둘기 떼와 물건 파는 이들과 구걸하는 이들이 엉켜 볼 마음이 하나도 안 생긴다. 심하다. 많이 무질서하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괜찮은 나라인지 여기저기서 느끼고 있다. 

질서 잘 지키지요, 깨끗하지요, 상식적이지요. 매연 덜하지요.

 한국에서는 이런 거 느끼지 못했는데 아시아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점들이 보인다. 

개인이나 국가도 마찬가지, 비교가 불행의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비교라는 것이 필요하다면 자신보다 어려운 이나,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나을 게다. 일본 같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를 가면 상대적으로 또 다른 느낌이 올 것도 분명하다만.

  네팔 사람들은 선량한 느낌이 팍팍 온다. 우리나라의 30년이나 40년 전이라고 보면 될까. 

월드비전을 통해 만나는 쿠마리 꼬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공부 열심히 하시라. 그래서 너도 행복한 미래를 만들고 네 나라에 큰 도움이 되시라."


 정치 경제적으로 후진국들을 보면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혜택을 많이 받을 게다.

 그것이 옳은지는 다른 문제이고, 어쨌든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는 바람직하게 발전하느냐 아니냐 방향을 달리 할 것이라는 것도 예상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이 교육받았다는 것은 혜택이라는 것,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 하여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능력을 선하게 사용하는 이가 이끄는 사회와, 자기 혼자 잘난 줄 알고 혼자 잘 먹고 잘 살 꾀를 내는 이, 좋은 머리로 남 등치거나 출세를 탐하는 이가 이끄는 사회.....


 점심은 한국식당에서 먹기로 했는데 가는 길이 천 리이다. 

길이 사방으로 꽉 막혔다. 시동도 껐다 켰다 하며 기름도 절약하고, 에어컨은 아예 안 나오고, 밖은 매연에 문을 열 수도 없다. 견디기엔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그러나 티베트에서 배운 마음 '그러려니', 기다린다. 오늘 내로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래도 어찌 가기는 갔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 불고기와 함께 아주 맛있게 먹다. 거기서 선물용 히말라야 허브차도 산다. 주인인 한국인 부부는 편안해 보인다. 멀리서 동포를 만났는데도 가격을 깎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대화다운 대화를 못 나눈다. 돌이켜보니 이건 아닌데, 그들이나 우리나 서로에게 상심하지 않았을까. 서로 습관이 되었을까. 아쉽다.


 부다나트. 이것도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교식 사원인데 스투파가 아주 크다. 제일 크다고 했나? 해가 마침 커다란 구름에 가려 있고 바람이 제법 선선하여 사원 위에 앉아 몸을 쉰다. 젊은 연인들도 앉아 데이트한다. 저 아래서 몸이 몹시 커다란 외국인이 이쪽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그녀의 소원은 무엇인고. 


Free Tibet

  마침 사원 앞에는 ‘Free Tibet’ 현수막을 내걸고 티베트의 망명자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몇 사람은 오체투지를 하고 돈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촛불을 들고 사원을 돈다. 꽤 많은 사람이 참석하고 있다. 한쪽에서 티베트 독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티베트를 만나고 온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정성스럽게 이름을 쓴다.


 몇 사람이 몇십 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까움에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 이 조그만 나라에서 몇 명이 단식을 하고 시위를 하면 중국이나 세계가 꿈쩍이나 할까. 좀 센 방법 없을까?

 그들의 무서운 신앙심을 활용하면 어떨까? 모든 티베트인이 국내에서는 한 곳으로 예를 들면 포탈라궁을 향해, 외국에 있는 자들은 중국대사관을 향해 모두 오체투지를 하며 거대한 저항의 행렬을 이루면 안 될까? 중국애들이 겁을 주다가 총을 쏠 수도 있겠지.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신심은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을 아주 깊은 것이다. 그들이 침묵으로 계속 한 곳을 향하여 오체투지를 한다면 그렇게 그들의 힘을 세상에 알린다면 그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물론 다 죽기를 각오하고 다 같이 덤벼든다면 일은 쉽겠지....

그러나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다. 모든 티베트인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도 일제 때 모든 국민이 다 같이 항일 운동을 했으면 어찌 일제의 침략이나 유지가 가능했겠어... "


 중국이 왜 티베트를 무력 침공했는지 아무 정당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 유엔은 잠에서 깨어나라’고 쓰여 있다. 네팔에서도 이들 티베트인들과 이렇게 연결이 될 줄 몰랐다. 눈을 돌리면 세계는 다 연결이 되어있을 게다. 우리는 우리 앞의 일만 보고 있는 거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고 공부한다는 사람인데 이 엄청난 경험 앞에 아무런 것도 밝혀놓지 못하고 그저 잠깐의 풍경만 나열하고 있다.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반성.   

                                                  


 서울로 가기 전 다비장에서

    

 '파슈파티나트사원' 내에 다비장이 있다. 

삶과 죽음은 아주 가까운 것 같다. 죽음의 의식이 단조롭다. 

나무를 쌓아놓고 죽은 자를 올려놓고 머리에 불을 붙이고 5시간 정도 태운 후 타고 남은 나무와 뼛조각을 그냥 옆에 흐르는 강물에 버린다. 흐르는 강물 아래쪽에는 소들이 발을 담그고 무심한 듯 서있을 뿐이고 또 그 아래에서는 아이들이 아무 상관없는 듯 그 물에서 수영을 하며 놀고 있다. 

나는 충격을 받고 놀라고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강 건너 이쪽 편에 앉아있던 유족들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본다. 그들에게도 죽음이란 슬픈 일일 것이다.

나무단 위에 죽은 이를 올려놓고 의식을 치르고 불을 지피고 나선 목놓아 우는 자도 있다. 그러나 슬픔은 잠시인 듯하고 그들은 그런 일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치러내고 있는 것 같다. 

 티베트나 네팔이나 그들의 종교는 내세를 중시하고 있다. 이생에서 열심히 절을 하고 도를 닦으면 내세에서 좋은 인연으로 태어날 거라 믿고 오히려 이승보다 저승을 더 중요시하는 의식들을 봤다. 끊임없는 그들의 기도와 오체투지가 그렇다.


  다비장을 보면서 네팔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매연과 소음과 무질서와 지저분한 거리들은 그냥 인정하기로 한다. 뭣이 중하겠는가?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이렇게 쿨하게 바람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까짓 매연과 소음과 지저분한 것들이 무슨 중요한 의미가 되겠는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야 깨닫는 이 경계의 가벼움이 난 무척 마음에 든다. 그렇게 가볍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네팔은 아마 안나푸르나를 보러 다시 오지 않겠나 싶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공항 밖에서부터 긴 줄을 서야 한다. 간신히 공항 안으로 들어온다. 정전이 되어 짐을 검색하는 벨트가 멈춘다. 짐을 꺼내 수작업으로 한다. 네팔답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랴. 

우리 엄마도 나를 위로할 때나 자신을 위로할 때, 그러셨다. 

"암시랑토 안혀!"

삶이 감사이다. 죽음도 그러길. (2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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