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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안 하든

by 순쌤

친구들과 출발 2013

우리 만난 지 25년 됐나, 첫 학교 동료들이자 절친 여섯 명이 함께 간다.

항공 및 차량과 숙소는 여행사에 맡기고 나머지 일정은 우리끼리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그 편리한 이름, 호텔팩으로 4박 5일의 여정이다.

일정을 짜고 조정하고 연락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지는 않다. 약 이틀에 걸쳐 머릿속으로 일정 정리 완료.


수도 비엔티엔에 도착하여 메콩강가를 거니는 것으로 시작, 우리나라로 치면 한강 고수부지가 될 거다. 대통령궁까지 걷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라오인들이 많이 나와 있다.

남푸(분수)는 여행자거리의 중심으로 분수 주변으로 야외카페가 열린다. 라오비어와 안주로 저녁을 먹는데 여행 온 것 실감 나게 낭만적이다.

첫날밤이 지나간다. 잠은 잘 오지 않다.

비엔티엔 나들이

창을 여니 여명이 밝아온다. 구름이 잔뜩인 사이로 번져오는 햇살이 화려하고 큰 빌딩이 없는 풍경이 평화롭다. 탓담이라는 탑까지 아침 산책을 나가다. 라오인들은 이 탑에 제를 지내는 듯하다. 거리는 아직 조용하다.

오늘은 뚝뚝이를 타고 투어를 한다.


약 20km 떨어져 있는 부다파크를 먼저, 그리고 탓루앙과 빠뚜싸이를 오전에 돌고 오후엔 몇 개의 절을 돌기로 했다.

뚝뚝이를 타고 부다파크로 가는 길은 매연과 함께닷!

우리 뚝뚝이에서 나오는 매연, 앞 차에서, 오토바이에서, 거리에서 나오는 매연과 소음을 모두 품고 간다. 고급스러운 벤을 타고 가는 여행객들이 우리를 찍는다. 그 환경에서 뚝뚝이를 타고 가는 사람이 신기하기도 했겠다. 수건으로 코를 싸고 약 40여 분을 달린다.


부다파크는 시멘트로 조각한 여러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야외 조각공원이다.

지옥과 현세와 천당을 의미한다는 큰 조각건물에 올라섰을 때,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보며 우리는 따사로운 천국을 맛보았다. 조각가가 의도한 것이 이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탓루앙은 부처의 가슴뼈가 묻혀있다는 황금사원. 라오스를 소개하는 곳이면 나오는, 배경이 되는 사원이다. 사진으로는 화려한 황금색이 그럴듯했는데 여기저기 방치되고 오염된 흔적으로 남아있는 모습이 영 다른 느낌이 든다. 한 바퀴 돌고 기념사진만 찍고 마무리.


빠뚜싸이는 프랑스의 개선문을 모방한 탑으로 입장료를 내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비엔티엔 시내가 보인다. 역시 큰 건물이 없으니 뻥 뚫린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무슨 동팔란 국숫집을 찾아 나섰을 때부터 자유여행자의 특권, 길 찾기와 엄청난 길 헤매기가 시작되다. 여섯 명이 대책 없이 헤맨다.

봉사활동 나온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만나고 반가운 인사 나누고 헤어지고, 겨우 찾은 동팔란 국숫집은 문이 닫혔고, 그 다음 괜찮다는 태국식라오식 식당을 찾아 밥은 맛있게 잘 먹고, 그리고 길을 꺾어야 할 때 꺾지 못해 다시 비엔티엔을 한 바퀴 완전히 돌아버리고,

오후에 가기로 했던 절이 예고도 없이 쑥 나타나 오마나! 신나 하고...


이치의 양면이 이런 것이다.

길을 잃은 것도 헤맨 것도 썩 나쁜 것만은 아닌 여행 중 길 찾기와 헤매기. 짜증과 환호, 지침과 회복,

나 같은 방향치조차도 이렇게 고생하고 나면 그 낯선 도시의 지도가 머리 한쪽에 훤히 그려진다는...


시무앙 사원은 비엔티엔 사람들이 좋아하는 절답게 붐비는 중이다.

소원을 비는 곳이란다. 많은 사람이 스님을 만나고 있다. 입구 쪽으로 오토바이를 탄 한 무더기의 날라리들이 들어온다. 잠시 긴장했는데, 수줍게 꽃을 들고 스님 앞에 소원을 빈다. 이런 귀여운 날라리들이 있나.

"날라리가 저리 순박한겨? 여친 생기게 해달라고 비는 거 아님? 너무 귀여워!"

우리의 교사 본능이 살아나는 듯, 예쁜 제자를 만난 듯, 흐뭇해하며 한 마디씩 수다를 떤다.


루앙프라방으로

국내선 비행장이 많이 소박하다. 버스정류장 같다. 약 1시간 날아 루앙프라방 도착.

픽업을 이용해 살라상케오하우스로 간다.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고, 하우스....

오른쪽에 메콩강을 왼쪽에 칸강을 끼고 있는 여행자거리에 있는 우리 집은 게스트하우스였던 것을 작년에 수리를 해서 한 단계 올린 하우스가 됐다고 한다. 집이 예쁘고 깨끗하면 일단 우리는 감탄한다. 주인아저씨가 와서 막 자부심 강하게 솰라솰라 자랑을 한다. 매니저의 영어는 발음도 세고 빨라서 뭔 소린지 모르겠다. 겨우 알아들은 것은 방 하나가 더블베드라는 것.

오 노우!

트윈으로 옮기고 한 층을 모두 같이 쓰는 것으로 정리한다. 우리는 대만족, 마치 우리만의 휴양지 같은 숙소가 되었다.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아침을 주는 숙소를 찾아 여기로 예약을 한 거다.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스칸디나비아 빵집. 샌드위치와 피자와 커피인데 빵도 맛있고 커피도 리필이 된다.

음식값은 여전히 싸고 특별히 향이 강하지 않아 어떤 음식이든 입에 맞는다. 우리는 모두 잘 먹는다.


해가 너무 강하니 숙소에서 잠시 쉬고 나오기로. 그리고 박물관에 갔다가 푸씨산에 가서 일몰을 보는 것이 오늘 일정이다. 프런트에 물어보니 박물관 문은 5시에 닫는다고, 좀 쉬고 4시 못 되어 박물관으로 간다.

이런...매표소는 이미 문을 닫았다. 4시까지라고 쓰여있다. 그 아자씨는 어이 그런 잘못된 정보를 줬을까.


메콩강가로 내려가다.

폭넓고 긴 강에 누런 흙물이 흐르고, 배가 띄워져 있다. 사공아저씨가 올라오더니 타란다. 1 시간에 6명이 5만 낍, 약 6~7천 원 정도.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가 중천에 떠있고 그 아래 구름이 껴 있고, 서서히 해는 내려올 것이다. 우리끼리 전세 낸 배에서 강물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 메콩강에 와 있다. 우리는. 지금.


일몰이 아름답다는 곳, 푸씨산으로 올라간다.

약 20분 정도 계단을 급경사로 올라가면 일몰을 볼 수 있는 작은 언덕이다. 구름은 잔뜩 퍼지고 해를 아예 볼 수 없을 것 같아 중간에서 포기할까? 하다가, 라오비어 샀는데 어쩔까? 그냥 오르기로 한다. 입장료도 내고 일몰이 아니라 라오비어를 위해 오르는 격이다.


올라가길 잘했다. 거기서 바라보이는 루앙프라방의 모습이라니... 참 예쁘다. 아파트도 없고 큰 건물도 없다. 소박하고 빨간색의 지붕을 얹은 소박한 집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불빛들과 함께 그림을 만들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저 멀리 둘러싸인 산들과 길게 가로질러 흐르는 메콩강과 낮은 집들과 저기 구름에 가려있는 해, 그래서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여기 언덕.

이미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구름 속에 갇힌 해를 보며 감동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바위에 앉아 그런 그림의 루앙프라방을 감상하고 있다.


맥주를 꺼내든다. 여행을 왔다는 것을 느끼는, 인생 자체를 여행으로 만끽하는 이 여유로움.

한 무리 떠드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건네다.

어느 나라인가? 칠레! 오, 칠레! 오, 코리아! 서로 경탄하며 같이 사진을 찍는다. 상큼 발랄하다.


반대쪽으로 내려간다. 어두워진 거리를 거슬러 야시장이 열리고 있다. 원색의 옷감들이 끝없이 늘어져 있고 사람들이 물건을 흥정한다.

우리도 라오스 숫자를 세어가며 이런저런 것들을 사는데 재미지다.

직접 수놓은 물건들이 맘에 들고, 값은 물론 저렴하고.


탁밧

매일 아침 루앙프라방 중심 거리에는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밥통을 메고 맨발로 거리를 순례한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 밥통에 이런저런 음식을 넣어 공양을 한다.

탁밧에 참례하기 위해 일찍 집 앞으로 나온다. 관광객에게 공양할 음식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잎에 쌓인 밥을 몇 덩이 사서 순례하는 길가에 공손히 앉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붉은 자락들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지는 스님들 물결... 장관이다. 뒤로, 옆으로 꼬마 녀석들이 바구니를 들고 같이 빠른 걸음을 한다. 스님들이 사람들로부터 공양받은 것을 밥통에서 꺼내 녀석들에게 나누어 준다. 탁발받은 음식들을 아이들에게 이웃들에게 나눈단다. '오병이어'를 보는 듯, 완전 감동이다.

가난함, 일용할 양식, 나눔, 종교의 진리 그리고 삶의 진실...

스님들은 철저히 무표정이다. 관광객들은 흥미롭게, 현지인들은 아주 진지하게 예식에 참여한다.

나는 어떻게? 감동한 표정으로 흥미롭고 진지하게.


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씨엥통 절에 가기로 한다.

자전거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거리를 달리는데, 이국적이면서도 예전 우리 동네를 도는 느낌이다. 시간을 되돌아 과거로 이동한 것 같다.

메콩강가까지 달리는데 어제와 또 다른 풍경이다. 세련되지 않은 골목골목과 저 황토의 강들이 나를 매혹시키고 있음을 알겠다. 페달을 밟으면서 스치는 바람 따라 흥분이 된다. 아, 이래서 라오스구나...


씨엥통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이름 있는 사원으로 중심거리의 끝쪽에 있다.

건물들 벽면에 있는 유리공예 장식들이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조각물이다. 알람브라 궁전의 이슬람 조각들과 앙코르와트에 있는 힌두교 조각들, 그리고 여기 불교 조각들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종교와 맞닿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이 믿는 신에게 절대 신뢰를 보내는 신심임을 알기에 경건한 맘이 일고 감탄스럽다.


어제 못 간 박물관에 잠시 들르고 예약한 꽝시폭포에 가기로 했는데,

이런... 박물관 맨 아래 이렇게 쓰여있다. except Tuesday.... 오늘 화요일이다. 인연이 아닌겨?


꽝시폭포

이 뜨거운 날을 씻어주는 폭포라 하니, 다행히 뚝뚝이 아니라 벤으로 간다니, 한없이 꼬불꼬불 가도 좋다.

약 1시간 걸렸나. 입구에 조그만 물줄기가 흐르더니 위로 올라가면서 초록물들이 계단식으로 층을 이루어 다랭이논같이 펼쳐져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아하, 터어키의 파묵칼레다!

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들로 만들어진 풍경인 듯 내 맘대로 '작은 파묵칼레라' 이름 붙인다.


그리고 넓은 호수가 나타나고, 바로 그곳이 사람들이 풍덩거리고 떨어지는 타잔놀이를 하는 곳. 사람들이 그런 놀이를 하고 있다. 재밌고 시원하겠다.

주변은 삼림욕장같이 나무가 무성하고 우리는 일단 더 올라간다. 진짜 꽝시 폭포 등장!

폭포는 저 위 꼭대기에서 강렬한 햇살과 함께 쏟아지고 있어 올려다보기 어렵다. 그냥 양말 벗고 폭포물에 발을 담그니 으아~ 씨원하다.


그리고 호수로 내려온다.

사람, 우리의 도전왕 그녀가 타잔놀이를 한단다.

우리는 깜짝 놀란다. 정말? 그러엄~

그 샘솟는 도전정신, 상큼발랑발랑통쾌함을 한껏 칭찬해 줄 수밖에.

드디어 그녀가 나무에 올라 줄기 끝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줄을 잡더니 위태위태, 심호흡 한 번 하고 호수로 뛰어내린다.

아, 다 놀랐다. 잠시 후 뽀글거리는 물과 함께 그녀가 나타났다.

"와우! 살았다!"


감동의 순간을 어떻게 찍었나 사진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아무에게도 중요한 타이밍의 사진이 없다. 공중에 떠오르고 풍덩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보느라, 놀라느라, 가슴 조이느라, 그 순간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 그녀가 뛰었다는 증거가 아무에게도 없다. 이게 뭔 조화인지...

그러나 그녀는 두고두고 우리 기억에 '꽝시의 영웅, 전설'로 남을 것은 확실하다.ㅋ


메콩강가로 나가 저녁을 먹기로 한다. 커다란 나무 아래 식탁이 펼쳐진, 깔끔하고 예쁜 집을 찾아 들어갔는데 주인이 한국인이다. 웬일이라니... 반가워한다.

네덜란드인과 결혼하여 여기저기 돌다 여기 머물게 됐다는 당찬 여인네. 음식이 그렇게 맛있으며, 망고를 그럴 수 없이 완벽하게 깎아주며, 말도 어찌나 야무지게 하는지...

거기 Big Tree 아래 우리의 밤은 도란도란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리.


돌아가는 날

6시에 눈이 떠지다.

탁밧은 6시 반부터이니 혼자서 다시 나간다.

칸강가를 거쳐 걸어서 씨엥통사원까지 간다.

이른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한적함이 더욱 맘에 든다. 스님들이 붉은 장삼을 걸치고 각 절에서 탁밧 나올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계신다. 시간이 되었는가 일시에 절에서 나오는데 그 줄이 한 줄이 되고, 질서 있게 (일부러 지키려 한 질서가 아닌데 자연스럽게 한 줄로 된) 걸어가신다. 늦은 걸음도 빠른 걸음도 아닌, 멈춤도 급함도 없는 걸음걸이. 뒤에 있는 꼬마스님들은 걸음 폭이 넓구나. 줄이 끊김 없이 이어지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뒤에서 보는데 장관이다.

아침에 이 루앙프라방의 거리를 축수하며 맨발로 걷는 스님을 보는 것이 내 맘을 꽉 차게 만든다. 아니, 마음을 조금이라도 비우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스님들이 없는 씨엥통 사원을 돌다. 이른 시간에 아무도 없는 사원은 진정 사원답다. 어제 보지 못한 절의 후면에 사랑의 나무 모자이크들을 보다. 독특하다. 아름답다.

골목으로 나가는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 듯, 저쪽에서 스님들의 선두가 보인다... 마지막이 이 씨엥통사원으로 들어가는 분들일 게다. 고단하시겠다. 약 30분 정도 마을을 휘돌아 하루 먹을 양식, 일용할 양식을 정성스레 공양받고 오시는 분들. 그리고 함께 나누는 공양.

동영상으로 찍다. 오늘 아침도 감동이다.


아침식사는 메콩강가에서 먹기로 했다. 숙소의 주인아저씨가 한다는 식당에서.

와우. 강변에 차려진 단출하고 담백한 뷔페.. 친절하게 빵도 숯불에 구워주고, 오믈렛도 정성을 다해 해주고...저 주인아자씨 정말 멋있다. 라오스인이라고 말하는데 품위와 자부심이 느껴진다. 우리는 영화같이 우아하게 '메콩강가에서 아침을' 한다.

천국에서의 식사에 무지 감동하고 나오다.


짐을 싸놓고 박물관으로 삼고초려, 성공하다.

원래 왕궁이었던 것을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왕은 쫓겨나고 그가 살던 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개방한 곳이다. 우리나라 경복궁같이 마지막 황제가 머문 곳, 막 화려하지 않은 그런 분위기.


이제 루앙프라방을 떠난다. 11시 예약한 차가 오고, 비엔티엔으로 간다. 거기서 트레블센터 헬프센터를 들어가다. 한국 젊은이가 한다. 그도 여행 중 머물게 되었다는데 라오스가 그렇게 사람을 붙드는 듯. 그 매력이 뭔지 쬐금 알 것 같은 순박하고 미소 짓는 나라.

맛집으로 소개받은 베트남쌈집으로 가서 점심을 푸지게 먹고, 과일가게서 과일도 오지게 먹고, 마지막 코스 발마사지를 받다.

발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안다.


아, 라오스!


1. 도시화가 되어가는 수도 비엔티엔과 그냥 소박하게 머물러 있는 도시,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도시 루앙프라방.

물가가 싸고 사람들이 미소 짓고 스님들이 아침마다 맨발로 탁발을 하여 나누는 곳.

메콩강이 흐르고, 매연이 값싸게 품어 나오고, 밤마다 장이 서는 곳.

특별할 것이 없지만 여행객에겐 소박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나라.

사람들이 순박하여 안전하고 그런 나라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라 신변이 염려 없다는 생각.

여섯이 떼로 몰려다니니 겁날 것도 없는 거리.

아무리 여섯이 배불리 맛있게 먹어도 2만 원을 넘지 않는 식비.

라오스의 숫자나 몇 가지 단어만 외워 다녀도, 손짓만으로도 큰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는 나라.


2.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수다 떨지도 않고, 놀라지 않고 조용한, 화를 돋우지도 않고, 의심하게 하지 않고, 애써 꾸미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는, 그래서 내가 꾸미지 않아도 되고, 있는 그대로 내놓아도 되고, 그들의 미소에 그냥 같이 웃어주면 되는 나라 라오스,


평화로운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욱 평화로웠던 여행. 감사를 드립니당.


라오스에 다시 오다. 2014


작년 라오스를 떠나면서 다시 오겠다고 맘먹은 나라다.


이번 여행은 그와 함께,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기,

루앙프라방 골목을 자전거 타고 다니기,

메콩강가 거닐기,

'유토피아' 카페에서 읽고 쓰기...

느림과 쉼의 시간이 주제인, 소박하고 화려한 여행을 꿈꾼다.


라오스에는 '루앙프라방'이 있다.

둥글고 부드럽고 프랑스 귀족 같은 발음을 가진,

근데 좀 사귀어보면 이름처럼 우아하지는 않다.

흙먼지 날리고 촘촘한 가게들이 고만고만한 기념품을 늘어놓고 있는,

그리고 소박한 레스토랑 카페들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는 곳.

루앙프라방 거리엔

발길이 잇는 곳마다 사원이 사방으로 문을 열고 있다.

지붕이 긴 절집들은 하나같이 돌이끼를 감추지 않고 민낯으로 이방인들을 보고 있다.

삶이 굳이 유적인 듯하지 않고 객들도 그냥 자연스럽게 삶을 보라는 듯하다.

메콩강은 흙탕물로 흘러야 메콩강의 매력이 드러나듯

루앙프라방의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루앙프라방이다.


루앙프라방에는 '유토피아'가 있다.

길 끝쯤에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데, 유토피아를 찾는 길은 여러 굽이 골목을 돌아 만난다.

입구에 들어서면 낮은 의자들이 앉아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강과 평행을 이루는 평상들이 펼쳐있다.

어이구 소리를 휘파람처럼 내뱉으며 다리를 풀고 누우면 파란 하늘이 여행객 눈을 감긴다.

스르르 감동으로.

그리고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바로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오늘도 바로 유토피아로 가서 눕다.

책도 보고 끄적이기도 하고 잠시 잠을 자고 맥주를 마시고 커피도 마신다.

앞에는 칸 강이 흐르고 밭과 같은 풍경인데 딱히 '유토피아'라기보다 '여유만만'의 공간이라 보면 된다.

아, 같은 말일 수도 있겠구나.


사람들이 오락가락하고 여기저기 외국말이 들리고 그러니 여기가 한국이 아니란 것을 알 뿐 특별히 이국적이지는 않다. 아마 세사에 찌든 사람은 이런 여유가 천국임에 틀림없다. 나는 아직 찌들지 않았다. 좀 더 역동적으로 살아도 된다.


5시쯤 슬슬 기어 나와 자전거를 타고 거슬러 올라온다. 강가에 긴 다리가 하나 있다.

대나무로 만든 다리고 1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 우리나라 섶다리 같은 것이다. 통행료를 1인당 5000킵 받는다.

건너간 곳은 또 다른 루앙프라방 동네다. 여행객들과는 큰 상관없이 로컬 사람들이 그냥 삶을 사는 동네다.


빅트리 가서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하고 야시장 가서 바지 하나 사서 돌아온다.

오늘 하루는 뭐 하지 않았다. 피곤하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시집 하나 힘겹게 읽고,

글을 쓰고 싶지만 역시 나는 어려운 시집 생각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일행 없이 온전히 우리 둘이서만 여행한 것은 처음이다. 친구들과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여유 있고 심심하게 다니고 있다.

수다를 많이 떨지 않는다.

이것저것 다 감동받은 처음 여행과는 좀 다르다.

라오스에서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

내일은 골목을 돌아다녀볼까.

길거리에서 과일 주스를 먹어볼까.

낮에 들어와 낮잠을 자고 어슬렁거리며 다녀볼까.


아침에 탁밧을 보고 이제 그것도 이들의 일상임을 알다.

아침시장에 가니 이른 아침에 그렇게 많은 라오사람들이 장에 나와 있다니, 부지런해라.

탁밧 때 현지인들, 할머니들의 정성과 기도를 보다. 이 세상엔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그렇게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쯤 되면 세상은 평화로울 법한데 어쩐 일일까.

나는 오늘 기도드렸나?

들어와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잠시 자고 다시 나오다. 딱히 할 일도 없다만 그냥 나오는 거다. 오늘은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카페에 들어가서 하루를 뭉개야지 생각한다.


길을 걷다 보면 골목이 나오고 들어가 보면 사원으로 문이 나있다. 거기엔 스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황 승복을 반쯤 걸치고 오가는 사람들을 지나쳐 법당으로 숙소로 들어간다.

스님의 일상은 무관심함이 아니라 무심함인 듯.


강가 카페로 간다.

라오누들숲, 한 끼에 만 낍, 약 1천2백 원 정도로 나의 배는 따땃하다.

망고 키위 바나나 등 열대과일로 섞어 주스를 만들어준다. 7천 낍, 약 9백 원 정도로 몸이 신선해진다.

그리고 자그마한 난로 위에 올려 놓여준 커피,

2만 낍, 2천5백 원 정도로 향긋한 마무리.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에서 조금 염치가 없다. 그냥 가만있는데 모든 게 평화롭다. 소박함과 향락의 경계선에서 나는 몸을 눕히고 있다.


다시 유토피아로 온다.

침상은 먼지가 더깨더깨하여 이미 유토피아와는 다르다. 그러나 여행객들은 눕고 책 읽고 얘기하고 마시고 먹고 한다.

한국 젊은이들이 들어오다.

호주서 워킹홀리데이 몇 년째하고 있는 젊은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로부터 뭘 많이 받지도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부모로부터 뭔가 기초를 닦고 오는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고 반복한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거란 이야기 같기도 하고, 부모가 조금만 더 도움을 줬으면 좋았겠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스물여덟

막 젊지는 않고 깊지는 않지만,

라오스를 오고,

유토피아를 찾아나선 이들,

낯선 어른과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펼 수 있는 걸 보면 잘 살 게다.

젊은이가 기특하단 이 어른의 생각은 기본.

아마 학교에 가면 제자들에게

이 젊은이 이야기를

하게 될 게다.


푸시산에 올라와 일몰을 보다.

그 자리에서 그 모양으로.

작년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새로움이 없는 게 이번 여행의 결함이다. 그냥 다 익숙하고 집 같은 느낌의 편안함은 다시 찾은 여행지의 장점이고.

야시장으로 내려와 가성비 짱인 선물용 바지를 10개 사고, 라오스바비큐 삼겹살 샤브샤브를 먹다. 배불리. 그리고 들어와 자다.


꽝시폭포를 가다. 이번엔 폭포 위로 나있는 길을 따라 등산을 하기로. 새로운 것도 한번 섞어 줘야지.

급경사를 헉헉 오르다. 한참을 오른 꼭대기는 평지다. 시냇물이 평형으로 잔잔히 흐르고 이 물이 아래로 떨어지며 급경사 폭포를 만들고 있다. 그 큰 폭포 위에 이렇게 평화롭고 평범한 정상이 있을 줄은 그때는 몰랐지. 양말을 벗고 걷는다. 격동적인 폭포를 만들어내는 이 시냇물은 살랑살랑 시원하다.


내려가는 길엔 역시 외국 아이들의 타잔놀이가 한창이다. 수영을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면 좋겠다. 우리의 '꽝시의 영웅, 전설'의 그녀가 생각나며. 풋.


아침에 탁밧에 참여하다. 스님에게 줄 음식을 사서 앉아서 그들에게 공양을 한다.

내게는 이 공양이 의식에 불과한 것일 게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루의 일용할 양식도 되고, 많은 이들에게 나눔이 되고, 심지어 닭이나 개나 이들에게도 아침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침에 화장실에서 쏟아내는 것들이 많다. 많이 소비하고 많이 비워낸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리듬이라기보다 소비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늘 이렇다. 일은 똑같이 저질러 놓고 마음은 불편해하고 찔려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겠다고 했는데, 머릿속이 아무 생각 없지는 않았다.

스님처럼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육적인 욕정을 지우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이 욕망덩어리가.

여기 와서는 글을 쓰거나 글을 읽거나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찼음을 알겠다. 세상의 이런저런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부족한 것 없이 살다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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