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쌤 Aug 31. 2024

러시아 바이칼, 바다와 호수 사이

 러시아 바이칼  2017.7

 모 신문사에서 주최, 모집하는 '바이칼 테마여행'에 친구 네 명이 참여하다. 

'러시아'와 '바이칼'에 꽂혀 무조건 신청을 한 거다. 가이드가 있다니 우리가 따로 무엇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맘 맞는 친구들이랑 가니 좋고, 5박 7일 일정이니 떠나기 전날 짐도 가볍게 큰 가방에 편하게 넣는다. 


 방학식을 하는 날이다. 정신없는 날이지만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아주 촘촘하게 시간을 조절한다. 

준비한 것은 러시아 키릴 문자 알파벳 33개를 외운 것! 그 나라를 가는데 최소한 문자는 알고 가야지! 

영어와 비슷하면서도 정말 엉뚱한 발음으로 나기도 해서 헷갈린다. 머리에서 영어를 지워야 익힐 수 있는 글자이다. 


 이르쿠츠크 공항까지는 약 4시간 반을 날아간다. 도착하기 전 하늘에서 바라본 저 아래 바이칼은

바다가 아니고 호수임을 분명히 알리는 듯, 호수의 경계를 보여 준다. 

 시골의 조그만 역 같은 공항 표지를 찍으려 했더니 찍지 말란다. 이런 국가의 경찰은 좀 무섭다. 대합실 같은 곳에서 수속은 세월아 네월아 줄도 상관없고 완전 수동으로 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이어진다. 초라하지만 격식은 요란하고 불친절한 분위기, 이제 그러려니 한다.


환바이칼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바지선을 타고 뽀르트바이칼 기차역에 도착한다. 거기서 약 3시간 기차를 타며 바이칼을 바라보는 거다. 

 관광객으로 꽉 찬 기차에는 중국인들이 많은 듯, 그들끼리의 대화가 몹시 소란스럽다. 

 열차 안의 TV에서는 바이칼을 소개하는 소리까지 섞인다. 무쟈게 시끄러워 가이드가 TV를 껐으나, 안내원이 와서 다시 켠다. 정신 사납다.


 기차가 달리는 왼쪽으로는 바이칼 푸른 호수가 끝없이 펼쳐진다. 장관이다. 줄지어선 자작나무 사이로 바이칼이 보이기도 하고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들이 기차를 맞으며 온몸을 흔들어댄다. 기차는 중간중간 멈춰 서고, 그러면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와 바삐 사진을 찍곤 한다.

 기차를 내려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마을 '빨레빈느'라 했나?

아기자기하고 알프스트레킹 느낌도 나는 낭만적인 길을 걷는다. 햇살과 하늘과 구름이 그럴 수 없이 청정하니 마음도 붕 뜬다. 스위스와 위도가 같아 하늘도 그 비슷한 분위기라 한다만 난 이런 완벽한 모양의 하늘을 보면 이제 티베트의 하늘이 생각난다는 것.  


 점심은 러시아식이다. 닭과 감자를 넣고 끓인 국, 향이 나는 야채샐러드, 잘 익지 않은 밥에 돼지고기를 얹은 덮밥 같은... 두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땀을 흘려가며 음식을 차리고 직접 기른 채소들이라고 자랑도 하시는데 맥주 외에는 우리 입맛에 썩 맞지 않아 아쉬울  뿐. 


 얼른 먹고 나와 마을을 구경하다. 집과 정원이 꽃들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고 자작나무를 이용한 모형 조각들이 귀엽다. 기념으로 사진 찍기에 딱이다. 

 저기 자작나무숲이 보인다. 러시아의 자작나무숲이라니...... 

이름 자체로 애수가 깃들인 듯한 낭만적인 나무, 추운 겨울날 장작불에 '자작자작' 소리가 날 듯한 나무, 러시아 본 고장에서 만나는 저 하얀 자작나무에 대한 모든 상념은 '닥터 지바고'의 영향이 아닐까.


 하얗고 푸른 숲으로 들어간다. 나무들이 모여선 숲길을 걷는다. 우리 안에 자작자작 감동이 인다.

 함께 간 식물박사 교수님이 꽃과 나무를 열심히 설명하신다. 다음날 까먹을 것을 알기에 건성으로 듣는다. 풀과 꽃과 나무를 잘 아는 사람은 좋겠다. 아는 것 지천이니....

 '리스트바앙카'라는 마을로 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철길도 걸어보고 한 줄로 난 길도 걸으며 지천인 꽃들에 감탄하고 열심히 사진도 찍는다. 호숫가에서 깔깔대며 '제비 뜨기' 하던 중 나무뿌리에 걸려 엎어지다. 자빠졌다가 맞다. 무릎이 쓰리다. 깨끗한 호숫물로 한번 씻어내니 저기 커다란 배가 들어온다.


 리스트비앙카는 바이칼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 마을이다. 거기 노천시장에서 저녁을 먹는데 바이칼에서만 나는 ‘오물’이라는 수상한 이름의 물고기를 먹다. 무슨 맛인지 맛을 모르겠으나 맛없는 임연수어 같다고 우리는 결론 낸다. 그래도 맥주와 함께 맛있게 먹기는 하는데 밥은 영 못 먹겠다. 여기 밥은 늘 익다만 밥이다. 

 바이칼 호숫가는 해변 같다. 많은 이들이 수영도 하고 배를 타기도 하고 즐긴다. 

말만 호텔인 호텔로 돌아와 뻗다.

    

 바이칼 트레킹

 바이칼 호수의 총둘레는 약 1400km? 2000km? 된다고 했나, 깊이가 그렇다 했나, 가이드가 이런저런 수치로 설명하는데 숫자에 둔감한 나는 빨리 감이 오지 않아 기억도 못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1/3 정도 된다는 크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라 하니 흠, 무쟈게 크고 깊군 정도...


 트레킹 코스로 가기 위해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을 간다. 

원래 가기로 한 곳은 불이 나서 다른 곳을 걸을 것이며, 걷기 좋은 곳이며, 특별히 현지 산악가이드가 나온다고 하는데, 서울서 같이 간 여행사 측 인솔자, 산림전문교수, 현지 가이드, 현지인 가이드, 현지 산악전문 가이드...이렇게나 조력자가 많다. 쾌속선은 세 대로 나눠 타고 떠난다. 내가 탄 운전자는 초짜인지 안전울렁증 있는 젊은이인지 조그마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앉으라고, 문 열지 말라고... 두 시간 동안 밖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얌전히 앉아간다. 


 트레킹 코스의 경치는 우리의 부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호수의 크기만큼이나 그 주변을 둘러싼 풍경들, 길들이 자유롭고 아름답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아래 호수는 하양, 초록, 푸른, 파랑... 깊이를 알려주는 그 물색이 환상적이다. 키 낮은 꽃들의 지천은 말할 것도 없고 땅에 그렇게 많은 다육이와 선인장들이 피어있는 것은 처음 보는 모습이다.

 저 뒤의 식물박사님의 입이 바쁠 것이다..... 

 그러고 걷는데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여기서 멈출지, 더 갈지 의견을 나눠야 한단다. 

 "원래 가기로 한 길은 불이 났다. 더 가면 위험한 길이다. 혹은 배가 닿지 않는 마을이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그쯤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놀다 돌아가야 한다..." 산악 안내인은 이렇게. 

 "길이 너무 예쁘다. 더 걷고 싶다. 트레킹이라는 테마여행답게 더 가야 한다..." 우리 일행들은 이렇게.

  더 걷기로 결정! 당근 그래야지. 우리는 관광이 아니라 트레킹 온 거니까!


 중간에 좁고도 미끄러운 길도 나오고 두 손 짚고 기어올라야 하는 길도 나오고 저 아래 절벽인 길도 나타나기는 했지만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길을 지나니 마을이 보이고 흰모래사장이 보인다. 뿌듯하다. 아름답다. 


 기념촬영을 끝내고 호수에 발을 담근다. 10초도 견디지 못하고 모두 튕겨 나온다. 무쟈게 차다. 무쟈게 깨끗하다. 바이칼 호수가 이렇구나. 오염되지 않은 호수, 수많은 생물을 품고 있는 호수, 오래 잘 보존해야 할 우리 지구의 보고인 호수, 최대한 오래 발을 담고 다시 튕겨 나온다. 바이칼이 좋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는 바이칼 호숫물이라고 생수병을 하나씩 준다. 한 모금 벌컥, 크~ 

 

 


혼섬으로 들어가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수많은 섬 중 가장 큰 섬이란다.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약 4시간 달린다. 차창 밖은 온통 나무와 스텝, 끝없는 초원들과 먼 지평선... 초록 사이로 간혹 보이는 유채꽃밭. 

 눈이 감기다가도 잠들 수가 없다. 바깥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눈뜨고 보면 역시 계속되는 초원이다. '땅 넓네.'


 제주 우도 들어갈 때처럼 바지선을 타고 들어간다. 약 20분 정도 배는 천천히 간다. 저기 알혼섬이 보인다.  알혼섬 선착장에 도착하니, 소련식 4륜구동 지프차('우아직'이란다)가 주욱 늘어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고, 반대쪽으로는 섬을 나가려는 차가 끝도 없이 줄 서 있다. 오늘 나갈 수 있을랑가? 오지랖을 피니, 나갈 수 있다 한다. 

 지프차에 짐을 싣고 나눠서 숙소로 향한다. 덜컹거린다. 에어컨 없다. 창문을 열면 먼지가 들어온다. 굉장하다. 이걸 타고 내일 알혼섬을 돈단다. 왜 이런 차가 필요한지 알 거란다. 


 후지르 마을. 우리가 머물 숙소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나무 냄새가 폴폴 나는, 화장실이 잘 돼 있는, 그러나 급하게 개장한 느낌이 나도록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발코니 등등이 있는, 통나무집이다. 현대식 통나무집이다. 좋아라!

 우리 넷은 뽑기로 방짝꿍을 정하기로 했는데 '꽝시폭포의 영웅' 샘과 한 방이 됐다. 서로 편한 너무도 편한 사람이다. 저녁에는 내가 먼저 씻고 아침은 영웅샘이 먼저 씻는다. 돌아오자마자 씻어야 하고 아침이 게으른 내게는 딱이다. 숙소 위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다. 다른 일행들이 다 모여있다. 단체에 익숙지 않아 다 같이 모여 얘기하는 것이 재미가 없지만 사람들이 모나지 않고 성격들이 괜찮은 것 같다. 


 일행들이 먼저 들어가고 우리는 좀 더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 사이 세상의 색깔이 달라짐을 느끼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데 난생처음 보는 굉장한 노을이 펼쳐진다. 해는 진지 오래인데 하늘에 비친 노을이 호수 전면을 완전 붉게 물들이고 있다. 하늘과 호수가 합일하는 장면, 깜짝 놀랐다. 이런 노을이 있구나. 호수에 깔린 노을이란 말은 들어봤으나 이런 장엄한 노을이 있나. 이걸 못 보고 일행들은 그냥 들어갔으니 이를 어째.... 내일 보여줘야겠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놀라고 감탄하고.... 

 늦게 어두워지는 10시 다 되어 숙소로 돌아오다.     

        


  알혼섬 일주

 아침에 잠시 비가 왔으니 차가 달리는데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겠다.

오늘 하루 덜컹이는 지프차를 타고 섬일주를 한다는데, 일부러 그러는 듯이 온몸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처음에는 신나서 깔깔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이 덜컹거림은 도가 지나치다. 그 와중에도 내 방짝꿍샘은 잠에 빠졌는데 고개가 이리저리 너무 심히 흔들려 다칠까 봐 걱정이 될 정도. 대단히 평화로운 성품이라고 감탄하면서. 


 중간중간에 내려 구경하고 다시 타고 한다. 

악어섬, 사자섬, 그리고 수용소 건물이었던 빼시안카!

솔제니친이 수용되었던 곳,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군도'의 배경이 됐던 곳이란다. 정말? 

 

 기차로, 걸어서, 배로, 섬 안으로 들어와서.... 주변은 그리고 중심 주제는 바이칼이다. 바이칼 트레킹이 이런 것이구나. 

 우리가 걷는 사이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점심으로 오물지리탕을 준비한다. 그들의 정성도 고맙고 낯선 맛도 참으로 훌륭하다. 

 알혼섬의 제일 끝쪽의 곶에도 가고(하보이곶), 사랑의 바위라는 하트모양의 바위도 가고, 삼 형제 바위에도 가다. 우당탕탕 지프차로 달려가서 내리고 걷고 환호하고 사진 찍고 다시 타고.... 좀 더 오래 걸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유람하듯이 말고 이 길을 주욱 걷는 트레킹 말이다. 걷는 길이 잘 되어 있는데 이것이 아쉽다. 여기 또다시 와야 하는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여기 들러서 며칠 걷다가 열차 타고 이렇게 가는 건가? 겨울에 오면 이 호수가 얼고 흰 눈에 덮여 있는 호수 위를 걷는다는데, 상상만 해도 멋지겠다. 알아봐야겠다.

  푸른 초원에 진정 바다 같은 저 바이칼 호수를 끼고 역시 지프차에 몸을 순하게 맡기고 우리는 노을이 지는 '브라트만 바위' 앞으로 온다. 

 가이드는 "저 바위에서...."를 시작으로 칭기즈칸이 이름이 나오고 그 어머니가 어쩌고 하는 긴 설명을 하는데 이쪽 샤머니즘의 느낌도 나고, 우리의 무속 느낌도 난다. 돌아보는 장소 곳곳의 바위, 나무에는 오색의 천들이 달려있거나 돌탑들이 있다. 성황당을 보는 듯 친근하다. 


 오래전 바이칼 호수나 섬 주변에 살았던 종족들은 이 거대한 자연물이 펼쳐내는 압도적인 풍광을 보면서 이곳을 얼마나 신비하고 신령한 마음으로 대했을지 감이 온다.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으리라.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신심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짙은 구름 사이로 노을이 퍼진다. 사위가 고요해진 것 같다. 우리가 숙연해진 것인지 모른다. 

브라트만 바위 가까이 호수까지 내려가 잠시 걷는다. 호수에 발을 담근다.

  기념품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다. 오늘 오후 다시 노을을 보자고, 동네방네 노을 보라고 떠들고는 식사 후 노을을 보러 간다. 그러나 노을은 보이지 않는다. 어제의 노을은 어디 갔나. 일행이 다 나왔는데, 그들은 보지 못했다. 늘 볼 수 있는 노을이 아니었다니.... 우리는 천운이었나 보오.

       


 이르쿠츠크 시내 관광

  문명으로 돌아오다.

시내로 들어와 ‘김치’라는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다. 최고다. 

눈부신 하늘 아래 한갓지게 시내의 구청사, 수도원, 정교회 교회 등의 이르쿠츠크의 유적지를 돌아보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인상적인 카잔대성당은 파아란 하늘과 어울려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다.

우리의 한강 같은 곳, 앙가라강에서 이르쿠츠크 시민들의 여유를 보며, 카페에서 맥주 한잔 부딪친다. 

우리의 우정과 바이칼의 안녕을 위하여!!!

마트에서 바이칼 호수가 새겨져 있는 '바이칼 보드카' 한 병 가방에 소중히 챙기고, 공항으로! 

 


이전 11화 라오스,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안 하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