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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사실은...

by 순쌤

처음 말레이시아 2015. 10


방학이 아닌 날, 4일간의 연휴를 이용하여 밖으로 나가는 일은 처음이다. 옆자리에 앉은 여행 좋아하는 선생님과 둘이서 학교 끝나자마자 뛰쳐나가기로 설레는 작당을 했다.

우리의 이 좋은 계절을 놔두고 더운 곳으로 가는데 '더워봤자 옆 나라인데~', 날아간다.


사실은 이렇게 먼 나라인 줄 몰랐다. 말레이시아가 바로 옆인 줄, 6시간의 비행이 길다.

현지 시간 오후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으니 택시를 타고 숙소에 가야 한다. 커다란 프리미엄 택시는 약 100링깃, 우리는 짐이 작으니 76링깃 정도의 작은(버짓) 택시면 된다.

불빛 찬란한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에 있는 꽤 근사한 호텔로 들어서는데 선생님의 지인의 지인이 근무한다는, 이런 관계로 저렴하게 예약하였단다. 15층의 룸은 후덥지근한 나라라는 느낌이 전혀 없게 상쾌한 공기를 뿜뿜 뿜어내고 있다.

수업을 마치고 바로 달려왔으니 참으로 곤하다만, 잠들지 못하고 머리가 열린 듯 깨어 있다.

반딧불이

3시에 반딧불이 투어를 신청해 놓고 일단 쇼핑천국이라는 시내로 나간다. 거리는 여기저기 공사 중이며 후덥지근하며 뿌연 안개 같은 공기가 흐르는데 빌딩을 지날 때마다 열린 문 사이로 찬 바람이 새어 나온다. 건물 안은 어디나 에어컨이 빵빵하여 밖과 심히 다른 공기다. 기름이 나는 나라라고 이리 기름을 물 쓰듯이 쓰다니, 기름값보다 물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한데 정녕 사실인가?

둘 다 쇼핑에는 큰 관심이 없는 족이어서 높은 건물들 구경하고 대충 후루룩 훑다가, "어! 뚜레쥬르가 있네?" 신기해하며 들어가 ‘테타릭’이라는 국민음료 한잔 시원, 달콤하게 마시며 본격 수다를 떤다.


우리가 신청한 투어는 시내 가볼 만한 곳 몇 곳을 둘러보고 밤에 반딧불이 서식지를 돌아보는 거다.

국립모스크에서는 히잡을 쓰고 긴 옷을 입고 모스크를 돌아보는 체험을 하는데 잠시는 사진 찍고 새로웠으나, '아니 왜 이런 복장을?' 의문이 생긴다.

그들의 전통문화이며 그들의 오래된 관습이며 종교적 의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더운 날 이 더운 나라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차도르를 쓰고 눈만 내놓은 복장은 덥기도 하거니와 시야도 좁고 답답하여 인간에게 매우 불편한 복장임이 확실한데,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이해불가이다.

함부로 남의 문화를 재단하지 않는다지만, 사실은 속에서 뭔가가 욱 올라왔다.

이들의 깊은 뜻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


반딧불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눈에 보이기는 한지, '개똥벌레', 들어는 봤으나 정작 정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체험을 한다니 기대가 된다.

사위는 깜깜하다. 너른 호수에 맹그루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거기에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단다. 작은 배를 타고 조용히 조용히 반딧불이를 찾아 나서는 거다. 노를 저어 나무들 가까이로 가는데 여기저기 나무들이 반짝인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흰 불이 점등된 듯이 아주 작은 곤충 반딧불이가 반짝이고 있는 그림이다. 하늘에는 별들이, 물 위에는 반딧불이들이 서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거구나. 연로한 뱃사공은 우리가 우와! 경탄할 때마다 아주 뿌듯해하며 나무 가까이로 가 더 빙빙 돌아주신다. 그리고 반딧불이를 잡아 그의 손에서 우리 손에 옮겨 놓는다. 우리 옷에도 붙여 놓는다. 형체를 알 수 없는 한 점 작은 흰 빛이 내 몸에서 반짝인다.

30킬로에 걸쳐 있는 이곳 반딧불이 서식지는 세계 3대 서식지라나 어쨌다나... 꿈결 같고 동화 같다.

동화를 품고 돌아와 부킷빈탕의 야시장에 들른다. 1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그냥 들어갈 수 없다.

'사테'와 맥주 하나 시키다.

버스킹을 하고 있다. 노래하는 젊은이들이 우리 자리 앞으로 옮겨 온다. 기타와 드럼대용 스피커통 그리고 흔드는 악기를 들고 셋이서 노래를 부른다. “When you say nothing at all”

이런, 이 시간에 여기서 이 노래를 듣다니... 감상이 과잉으로 차오른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키나발루산'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만, 사실 '사테'는 참 맛없이 질겼다만,

오늘 반딧불이 본 것으로 그리고 여기서 내 좋아하는 이 노래를 들은 것으로, 나는 이 여행을 아름답게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수영장에서 놀기

숙소의 6층에 야외수영장이 있다.

젊은 날 대학 수영장에서 첫 입수 때 바로 물 먹고 가라앉은 이후로, 내가 그 트라우마를 뚫고 천신만고 끝에 수영을 배운 이유는 여행 중 숙소에서 만나는 수영장들이 아까워서이다.

특히나 저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야외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아까움!


과연 수영 같은 수영을 할 수 있을까. 결론은 매우 흡족. 할아버지 한 분만이 자유롭게 노니는 곳에서, 락스냄새나지 않는 깨끗하고 따듯한 물에서, 저 깊이 있는 곳까지는 말고 1.5m 깊이의 자리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물론 폼은 우아하지 않았겠지만, 황홀하다. 선생님이 용기를 칭찬하며 동영상을 찍어주니 나는 뭐 우쭐하며 집으로 영상을 보낸다. 케이크와 커피도 한 잔 하고 긴 의자에 누워 하늘도 보고 또 입수하고... 그래 이거였어! 장하다!!!

말라카

쿠알라룸푸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말라카는 예전 수도였던 곳으로 우리나라 경주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성 위에서의 바라보이는 전망은 '예쁘다'. 예술가의 거리를 돌고 조커의 거리와 하층민들의 거리였던 상점들을 돌고 옷도 하나 사고, 꽃마차도 타고 유람선을 타고 그 운하를 돌고... 하다가....

' 아, 말라카는 이렇게 투어로 다니면 안 되겠다.

여유와 감동이 떨어지는 관광이 되지 않으려면, 여기서 하루 자고 여유 있게 돌아봐야 해!'

이것을 기록해 두기로. 언제 다시 올 수도 있으니.

이틀의 투어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와 뻗다.

짬을 내서 온 나라이니 만큼 덤으로 얻은 나라이기도하고, 짧은 시간에 욕심 내서 많은 것을 소화해 낸 느낌도 있다.

사실은, 말레이시아를 왔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 마음도 있다.


두 번째 말레이시아 2020. 1

쿠알라룸푸르로 다시 오다. 그 사이 남편의 친구가 이 도시로 이주해 왔다.

공항에 친구가 나와 있다. 그의 집으로 달리다. 2층 넓은 단독 주택에 인간 대접받는 강아지 한 마리가 부부와 살고 있다.


친구들 세 부부가 같이 다닌다. 현지인 같은 친구가 있어 이제 말레이시아가 낯설지 않다. 아니 그냥 옆 나라처럼 익숙해졌다.

비가 쏟아지는 날 찾은 바쿠동굴은 운치가 있다.

비가 멈춘 사이, 뚫린 동굴 사이로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계단에 겁 없이 전진배치한 원숭이가 무서웠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도 내려오는 길에 역시 원숭이가 사람의 먹이를 낚아채는 것을 보다. 그악하고 사납다. 바나나 까먹는 것은 완전 사람이다. 여기가 우리나라가 아닌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하다.


다시 반딧불이를 보러 간다. 지난번보다 훨씬 많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맞다. 이번엔 직접 손으로 잡아 본다. 별이 손안에 들어온 듯하다. 역시 예쁘다. 반딧불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다...


말라카

투어가 아니고 우리끼리 간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하루 온전히 보내기로 한다.

포탄 맞은 성당을 찬찬히 둘러보다. 숲길도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친구가 점심으로 ‘사테’를 고른다. '맛없었는데...'

그러나 이번 '사테'는 예전과 다르다. 겉으로는 허름한 집인데, 여기가 장인 집인가 보다.

꼬치에 꽂힌 고기를 몇 가지 소스에 발라 먹는데 맛이 부드럽고 맛있다. 고기 질이 예전 것과 완전 다르다. 국민요리라 할 만하다. 인정!


우리는 여행 다니면서 '맛집'에는 크게 관심 갖지 않았는데, 이 친구는 먹는 것에 진심인 것 같다. 우리를 데려간 곳은 비싸고 화려한 음식점이 아닌 대부분 현지 맛집이다. 말레이시아 음식들이 참 맛있다는 것을 알다. 이왕이면 여행 다니면서 맛있는 것 먹으면 더 좋은가? 당근!

상가들, 카페들이 즐비한 골목을 도는데 이 또한 재밌다. 말레이시아풍의 원피스에 눈이 꽂힌다. 원색의 하늘거리는 옷을 내가 언제 입어나 봤는지, 언제 입을지도 모르겠는데, 곧 들를 '코타키나발루 해변'이 생각났을 것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코타키나발루라는 멋진 바닷가에 갈 때 입어야지~ '

생전 처음 그런 옷을 샀다. 두 벌이나. 일단 가격이 무척 착하다.

쿠알라룸푸르

점심을 맛있게 먹고 쌍둥이빌딩 쪽으로 가서 차도 한 잔 느긋하게 마시는 중, 집에 다리미를 켜놓고 온 것 같다는 집주인의 말에 모두는 서둘러 집으로 오다. 집은 물론 노프로브람.


날은 더운데 여기 사람들은 별 더워하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이 느긋하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느긋한 이유를 날씨와 관련하여 진단한다.

일 년이 늘 이런 여름, 늘 같은 날씨, 겨울이나 다른 계절을 준비할 일도 없고, 그날이 그날인 날씨인데 급할 이유도 없고, 뛸 이유도 없다.

한국의 사계절을 살려면 겨울 준비, 여름 준비... 또... 준비해야 하고, 늘 변하고 그렇다. 빠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 살 수 있을까? 답은 노.

"덥다. 재미없다. 변화 없다. 잠시 추위를 피하여 휴양을 오는 것은 좋겠다."

이렇게 정리가 된다.

집주인 내외에게 무지 감사하다. 어른 넷을 나흘간이나 재워주고 먹여주고 보여주고...

저녁마다 함께 수다 떨며 마신 맥주와 안주... 좋다. 타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이런 편한 시간들이 참 좋다.


코타키나발루

KR에서 코타키나발루는 두 시간여 날아간다. 위에서 본 코타는 내가 알던 작은 휴양도시가 아님을 알다. 매우 큰 도시이다.

여기서 이틀은 아파트를 빌리고 하루는 호텔에서 마무리한다. 이제는 동행인 친구 부부와 넷이 움직인다.

투어를 신청하다.

배를 타고 스노클링을 하고 바다낚시를 하고 일몰을 보고 저녁을 먹고 오는 투어란다.


나는 스노클링을 하지 않았고,

물에 들어간 그는 고기가 많지 않았다 하고,

낚시는 세 번이나 포인트를 바꿨음에도 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았으며,

저쪽에서 구름이 잔뜩 끼어 일몰은 제대로 보지 못했으며,

잠시 물 위의 원주민들 가옥을 보러 갔다 오는 사이 가이드들이 준비해 준 해산물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

코타키나발루의 시간은 아주 평이한 시간이 되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고급리조트에 머물면서 노을을 보고 한가하게 수영하고 쉬는 휴양지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우리는 그런 휴양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아파트와 호텔에 머물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통에, 두 개나 산 원색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꺼내보지도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그곳은 어디일까? 여러 해안가 중에 우리는 어디에 머문 것일까?

2024년에 쓰는 후기, 사실은,

카페에 앉아 그와 함께 그동안 다녔던 나라를 '좋았던 나라' 순서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40여 개의 나라는 각기 독특해서 순서 정하기 쉽지 않으나 그래도 써 내려간다. 재미 삼아.


1. 스페인 산티아고

2. 뉴질랜드

3. 스위스 알프스 체르마트

4. 티베트

여기까지는 둘이 만장일치!


5. 북유럽(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

6. 남미(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7. 지중해 (터키 그리스 이집트)

8. 유럽 (프 영 (스코틀랜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

9. 동유럽 (크로아티아 체코 오스트리아)

10. 호주

11. 미국 캐나다

12. 라오스

13. 일본

14. 캄보디아 태국 네팔

15. 중국

16. 바이칼

17. 홍콩

18. 말레이시아


사실은, 말레이시아!

지금 생각해 보면 '코타키나발루'의 영향일까?

키나발루산을 다녀오지 않아서? 거기에 갔다 오는 순간 이 순서는 바뀌지 않을까?괜히 미안함.

역시 줄 세우는 것은 좋지 않아...


어쨌든 나는 늘 좋았고 감사했고,

지금 이 좋은 나라들을 대륙별로 기록하고 있는 중이고,

이 작업이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는 시간들이고,

이 시간 여행을 다 마칠 '원대한' 계획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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