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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가 아프리카에 온 이유, 나미비아

듄, 나미비아의 사막들

by 순쌤

여행을 해야 할 때


아픈 사람이 늘어간다.

설사와 몸살로 고생한 사람, 뭐가 물었는지 하루는 이쪽 눈, 다음 날엔 저쪽 눈가까지 부어서 병원과 약국을 다녀온 사람이 있을 때는 '그러려니' 이렇게 넘어갔는데,

한 부부는 일주일 만에 귀국해 버리고, 한 부부는 말라리아 검사를 받은 후 '나미비아'를 건너뛰고 남아공으로 먼저 날아가서 쉬기로 했단다.

오늘은 한 분이 계속 열이 나서 차에서 내리지를 못하고 결국 병원으로 가셨고, 한 분은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걷지를 못하신다. 아프신 분들도 그렇지만, 가이드가 '안내'보다는 '에브리데이 병원행'인 것이 안쓰러울 정도다.


긴 여행 감당할 만한 건강한 사람들로 보이는데, 대부분 남미까지 마치고 아프리카를 찾은 여행 베테랑들이던데 무슨 일인가. 여정이 힘들 수도 있다. 비행기를 열한 번을 타는 이동 경로에 버스나 지프차로 비포장도로를 많이 달린다. 병원 시설이 원만하지 않으니 먼 거리의 아프리카에서 심리적으로 겁이 나고 몸도 위축되는 것 아닐까 싶다. 일행들이 말은 못 하고 당황해하고 덩달아 긴장하고 있는 빛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여행하는 게 쉽지 않음을 알겠다.

'노세 노세 젊어 노세'란 노래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니라'는 말이 오랜 세월 지내온 경륜에서 나온 명언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갈수록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누가 이 먼 아프리카를 쉽게 올 수 있겠는가.

젊은이가 맘먹고 배낭여행을 오지 않는 한, 젊은 날 긴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고 오기가 쉽지 않다. 우리 일행의 평균 연령이 60대 중후반이라 하고 주로 이 연령대가 온다 하는데, 지금 이렇게 헤매는 것을 보며 나의 마음도 복잡하다.


나에게 여행이 무엇일까.

젊을 때는 '빚내서라도', 집이 생겼을 때는 '집을 팔아서라도', 아이들 어릴 때는 '학원 말고 여행', 이런 마음으로 부지런히 다녔다.

우리의 산하 이곳저곳, 이웃 나라 아시아, 유럽의 동서남북, 오세아니아, 북미, 남미, 그리고 지금 여기 아프리카까지 왔다.

지구를 이렇게 뭉텅이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만 한 대륙씩 여행기를 다듬으면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겠다고 오랜 시간 홀려 다녔던 것일까를 생각한다.


'우주의 푸른 점' 지구가 얼마나 큰지 혹은 얼마나 작은지, 내가 밟은 길들이 얼마나 긴지 혹은 간발인지 감을 잡으며,

인간이 위대하기도 아주 위해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내가 사는 현재의 삶이 아주 막중할 수도 순간에 흩어질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이 그리 가볍지도 그렇다고 심히 무겁지도 않다는 것, 어쩌면 인생이 그냥 여행 자체이며, 여행이 그냥 인생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동전의 양면처럼 뭐라 단정할 수도 없고 단정할 필요도 없고, 어쩌면 분별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까지도?


아픈 이들이 회복되기를, 이 먼 나라 여행을 함께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나이 듦으로 위축된 마음들 잘 다스리길 기도.


아, 나미비아 사막의 선을 보라.

'데드블레이'


아프리카여행 모집 광고의 메인 사진이 이곳이다.

그것은 처음 보는 아주 오묘한 장면이어서 나를 아프리카로 부르는 매혹적인 신호가 되었다.


나미브사막 국립공원의 입구를 통과해 어느 지점에서 투어셔틀인 지프차로 갈아타고 그럴 수 없이 덜컹거리며 데드블레이 시작점에 내려놓는다. 거기부터 약 2km, 30분 정도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을 걸으면 사진에서 봤던 그곳이 나온단다.


모래가 산처럼 언덕을 이룬 것을 '듄'이라 한다. 눈앞에 여기저기 듄이다. 그런 모래 언덕들이 겹겹이 이어져 있다.

가장 높은 언덕 '빅데드'에 해가 걸렸는데, 그 빛나는 능선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능선 위로 올라선 사람들이 빛을 등지고 서있는 모습이 환상이다.

당근 저기를 오르고 싶은데 아니 된단다. 시간이 안 된다고. 나중에 듄 45를 오르잖다.

해는 작렬하고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맨발로 걷다. 오르막이다. 따끈한 모래에 푹푹 빠지든가 모래가 스러지든가. 그러다 누군가 전갈이 있다고, 맨발이 위험하냐니까 그렇다고. 이런. 얼른 신발을 신고 오른다.


디어 사진으로 봤던 그 장면이 눈앞에 나타나다.


적절한 표현을 못 찾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보이는 것은 몇 단어로 설명 가능한 아주 단조로운 장면이다.

"새 파아란 하늘 아래 붉은 사막, 그 앞에 화석처럼 굳어진 나무들."


붉은 모래 언덕이 산처럼 펼쳐지고(산인 줄 알았다.) 그 앞에 흰 점토 땅(모래일 것 같았다.) 위로 검은 고사목들이(멀리 있는 작은 것들은 동물 모형 같기도, 사람 모형 같기도 한, 사실 아무 정보가 없이 봤을 때는 무엇인지 감을 잡지도 못했다.) 무슨 조형물처럼 서있는 풍경이다.


구백 년 전, 강이었던 곳이 말라 주변의 나무들이 말라죽은 상태 그대로 존재하게 됐단다.

바다에서 넘어온 바람에 철분이 섞여 오랜 세월 붉은 모래 언덕이 되었단다.

몇 억 년 동안 만들어진 모양일 것이다. 바람이 불고 깎이고 쌓이고, 불고 깎이고 쌓이고 수없이 반복되고 만들어낸 저 언덕의 선들일 것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태곳적 신비', '사진사가 가장 찍고 싶어 하는' 등 많은 수사구가 있는 그 풍경.

모든 것이 거기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누구든지 이 장면을 보면 ‘흡’ 하고 호흡을 멈췄을 법하다만... 지금 사람들이 많다.


각기 다양한 발성으로 탄성을 내며 사진을 찍고 있다. 나 또한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감격해하며 포즈를 취하고 요란을 떨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한 걸음 물러 앉아 풍경을 바라본다. 빅데디에서 모래바람을 가르며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 '태곳적'의 고요함을 유쾌하게 들쑤셔 놓는다.

사막이 이렇게 풍부한 풍경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사막이 그냥 '모래땅'이 아니라는 것, 현실적이지 않다.


가장 단순한 것이 공간을 완전하게 만들고 있다.

"자연이 만든 완벽한 예술이다." 이 정도로 정리하기로.


듄 45

모래 언덕(듄)에 번호를 매겨놨다. 듄 1, 듄 2....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곳은 듄 45.

내가 아프리카에 온 이유, 이 "듄 45"를 오르기 위해서다.


국립공원 안에서 잠을 자고 해뜨기 전에 듄에 올라 거기 정상에서 일출을 볼 때가 가장 아름다운 듄을 만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국립공원 밖 롯지에서 잠을 잤다. 국립공원은 해가 뜬 후에 게이트를 개방하기에 우리는 듄 위에서 일출을 볼 수가 없다.

아침 6시 개방 시간에 맞춰 게이트 앞에 대기하다 문을 개방하면 차량들이 입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사람이 오르고 있는 듄 45를 지나쳐 데드블레이를 먼저 보고 온 상태다.


해는 최절정으로 떠올라 드넓은 사막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보아하니 듄에 올라갈 팀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저 땡볕을 받으며 올라가야 한다. 그러게 아침에 먼저 듄에 오르자니까...


모래로 만들어진 저 언덕으로 올라가는 능선을 보는데 황홀하다. 어떻게 저런 정확하고도 부드러운 선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 수억 년 바람이 만들어낸 그 신비한 선율에 감탄 연발이다.

높이 170m, 등반 시간 30분 정도라니 '올라가기도 어렵지 않겠네' 하고 단박에 뛰어든다.

모래에 발을 딛는 순간 우리 모두가 그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음속에 깊은 탄성과 설렘과 환희와 경이로움에 눈물 났을 것이라고...


그러나... 푹푹 빠지는 모래더미에 몇 발작 오르기도 전에 거친 모래바람이 인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모래바람이 아주 강렬하게 우리 몸을 때린다. 몸이 휘어진다. 언덕의 능선을 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어대는 바람이 그 강한 황색바람이 허공을 뿌옇게 채우고 있다. 아주 순간 그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멋지다고 생각한 순간, 칼날처럼 날 선 모래언덕의 선들이 흩어진다. 이 바람이 그 선들을 다 무너뜨릴 것 같다. 칼날 위에 사람들이 일렬로 선 것 같다. 몰아치는 바람이 눈에 보인다. 정신을 못 차린다. 눈을 감고 잠시 멈춘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오르는데 숨이 차다. 양쪽으로 비탈이고 아무것도 없다. 말없는 거대한 사막일 뿐이다. 조금 오르다 멈춘다. 조금 오르다 다시 멈춘다. 호흡이 무척 가쁘고 미칠 것 같다.

유튜브에서 본 낭만적인 등반은 전혀 아니다. 고산증도 아니고 이게 뭘까.

'내가 저기 오를 수 있을까,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리 힘든 산, 어느 산에 올라가서도 생기지 않았던 마음이다. 밑에 올라오던 사람 대부분은 내려가서 우리를 보고 있고, 그와 몇 사람이 아래쪽 선 위에 남아있는데 그들 역시 못 올라오겠다는 듯 주저앉아 있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꺾는다. 나보다 앞선 한 사람이 멈춘다.

"우리 여기를 정상으로!" 거기서 사진 찍고 깔끔하게 하산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아쉽다. 다행이다.

아침 일찍 왔어야 했나. 데브블레이에서 힘쓰고 땡볕에 여기를 오르는 것이 무리였다.

산이었으면 중간에 내려가는 일 없다. 그러나 여긴 그냥 뭔가 절대적으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도 섞인 뭔가 단념의 절망적인 개념.

내려오는데 가뿐하다. 나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나의 걸음은 거기까지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로.

모든 주머니마다에 바람이 넣어준 모래가 가득 들어있다. 역시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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