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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by 순쌤

만델라의 나라 그리고 케이프타운


마지막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으로 간다. 역시 좋을 것이다. 도시화가 된 곳이라 사람들이 마음 편히 기다리는 듯하다. 나도 그렇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간다. 가고 싶다. 김치찌개 먹고잡다. 운동도 하고 싶다. 아이들도 보고 싶다. 정리된 우리 집도 보고 싶고, 더 간결하게 정리하고 싶다...


바다를 넘어 케이프타운에 들어서는 순간 조밀한 육지의 저쪽에 흰구름에 걸려 있는 테이블마운틴이 그 거대한 자태를 드러낸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풍경, 관용적 표현이 되어버린 '넓은 테이블에 흰 테이블보를 펼친 것 같다'는 그 풍경이다.



케이프타운으로 들어오는데 마음이 안정이 되는 걸 보니 나는 도시 사람 맞다.

게다가 공항에 걸려 있는 만델라의 사진을 보고, 남아공과 만델라를 거의 동급으로 알고 있는 난 감동적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 국민과 나라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당신은 평화롭게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되는 그의 말을 되새기면서.


오랜 시간 혹독한 감옥에서 지낸 그가 인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고, 평화운동을 벌이고 노벨 평화상을 타고, 기적처럼 대통령이 되고... 무척 위대하고 아름다운 인물로 알고 있는 나는, 그 이후 그의 여생을 더 이상 관심 있게 추적하지 못한 것을 문득 깨달았다. 대통령을 어떻게 했는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 나라 중에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나라였으나 지금은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그러고 보니 높은 빌딩 숲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간혹 백인들도 보이지만, 대부분 검은 사람들이다. 남아공의 치안이 안 좋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남미 여행 때 들었던 말이다. 그동안 다닌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았었는데.

만델라의 나라가 왜 이리되었을까. 보복 정치를 하지 않고 '용서와 화합의 정치'를 했다고 들었는데, 조국의 평화를 위한 헌신이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일까? 이상과 현실이 너무 차이가 났던 것일까? 그의 시대 이후에 망가진 것일까? 가진 자들의 반발이 너무 컸을까?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로 가기에 큰 걸림돌일 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구걸을 하는 이들이 많고 심각한 가난 속에 허덕이는 국민들이 대부분인데, 부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집 담장에 고압선이 흐르는 철망을 치고 있단다. 그렇게 살면, 그렇게 혼자 부자로 살면 재미있을까?


테이블마운틴


얼마나 멋지기에, 얼마나 관광객이 많기에 그렇게 긴 줄을 서야 하는 것일까.

테이블마운틴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끝없는 줄을 서다. 두 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는데 산 위로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등산로가 있는 모양이다. 이 땡볕에 저 수직의 절벽을 등산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텐데, 어디나 대단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있다. 올 때 보니 나미비아의 스와쿱문트처럼 여기도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그림 같은 집들하며 햇살 곱게 퍼지는 살기 좋은 휴양도시인 듯한데, 여기 살면서 테이블마운틴도 등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 어디나 걷는 산이 맘에 들면 '여기 살아볼까' 하는 맘버릇이기는 하다만.


두 시간여 긴 기다림 끝에 오른다.

사면으로 도는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빼어나다. 바다로 둘러싸인 케이프타운의 번화한 도시가 펼쳐져 있고, 한쪽엔 라이언헤드 봉우리와 12 사도 봉우리라는 암석들이 둘러싸고 있다.


하늘이 잔치를 벌이기 위해 식탁을 펼쳐놓은 게 아닐까.

1000m 높이 바위 산 위에 약 2km 길이의 평평하고 넓은 공간이 마치 테이블이 펼쳐진 듯 펼쳐져 있다고 테이블 마운틴.

수억 년 전의 융기니, 분화니 하는 지질학적인 여러 설명들이 있겠지만, 바다 위로 수직의 절벽과 넓은 평원이 떡허니 존재한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신기할 뿐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카페에서 파는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하며 저 경치를 감상하면 '다 이루었도다!' 할 것 같은데, 1시간 반 정도면 테이블의 저 끝까지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한 시간만 머문단다. 아, 정말 패키지여행의 단순 간결함이라니...



만델라가 18년 간 갇혀 감옥살이를 했다는 '로벤섬'도 외로이 떠있다. 내가 왜 감회가 새로운가.

이곳엔 갖은 풀들과 낮은 나무들과 간간이 보이는 빨간 꽃 등 수천 종의 희귀 생물이 서식한다는데 이 모두는 긴 시간 기다림 끝에 오른 수많은 방문객들을 대접하는 천상의 식탁인 듯하고, 테이블 끝쪽으로 굵직한 바위들에 올라 바라보는 저 바깥 해안의 풍경들은 그야말로 배경으로 퍼지는 음악과 같아, 내 바쁜 감탄을 뿜어내고 있다.

하늘과 가까이 맞닿아 있기도 하고, 순도 높은 강렬한 햇살이 문득, 이 세계에 머묾이 '진한 은총' 아닐까 하는 맘까지.


쇼핑하라고 항구 워터프런트에서 내려준다. 유명한 쇼핑몰인 것 같은데 우리는 딱히 살 것도 없어 테이블마운틴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하다. 이 여유를 케이블마운틴 위에서 누렸음 좋으련...


마켓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술 파는 곳은 보이지 않기에 숙소 옆에 있는 슈퍼에서 사려는데, 처음 알았다, 슈퍼에서는 술은 팔지 않는다는 것, 알코올 파는 곳은 따로 있다는 것.

슈퍼 주인이 거기 있던 경찰을 부른다, 깜놀. 경찰은 자신이 술 파는 곳을 안내하겠다며 나선다. 뭐 경찰이 그리 한가로워도 되나 싶었는데, 자기의 일이라는 몸짓으로 그 나름 진지한 얼굴로 5분 거리를 묵묵히 앞선다. 건너편에 보이는' Pick & Pay 알코올' 가게를 일러주고 돌아간다. 진짜 친절하네. 땡큐! 난 상냥하게 인사해 주고.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알코올들이 잔뜩 쌓여 있는 가게 안에는 술을 사려는 사람들로 복잡하고 줄도 길다. 두 명의 경찰이 상주하고 있는 듯 가게를 둘러보든가, 계산대 앞에서 분주하게 행해지는 판매 행위들을 주시하고 있다. 가게 앞에는 취한 사람들이 무너져 술을 마시고 있거나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거나 주정을 하거나. 나를 부르며 자꾸 말을 걸려하는데 좀 무섭기도 하여 못 들은 척하고 있다. 맥주를 사가지고 나오는 그를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총총.


오늘은 영국 버밍엄에서 열리고 있는 '전영오픈배드민턴' 안세영 경기가 있는 날이다. 숙적 천위페이와의 8강 경기.

여기와 시차가 한 시간밖에 나지 않고, 게다가 유튜브에서 생중계를 해주는 통에, 아프리카에서 생방으로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숙소에서 맥주와 함께 이 얼마나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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