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제주의 길들
1.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올레 길
우리나라에 제주가 없었으면 어쩔 뻔!
제주에 다녀올 때마다 절실히 느끼는 마음이다.
제주가 고향인 친구에게,
" 은퇴하면 제주 가서 살아, 나도 제주에 사는 친구 만나러 가고 싶다아~" 이렇게 철없이 구워삶으면,
바람 많고 살기 만만치 않은 척박한 땅이란다. 진한 아픔이 있는 땅이란다. 섬사람들의 끈끈한 연대감이 때로 부담이 되기도 하단다. 그리곤
“ 뭍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 속 깊은 고향이야.”
고향에 대한 애정의 깊이가 얼마인지 감이 온다. 제주는 역시 제주다!
차를 타고 관광을 할 때는 몰랐다. 아니 '좋다'는 것은 알았지.
걸으면서 알게 됐다. 제주의 속살이 얼마나 아름답고 독특한지.
이후 내게 제주는 '걷는 곳'이다.
올레길, 오름, 산, 숲, 섬……, 모든 곳이 걷는 길이다.
제주의 올레는 마을길, 숲길, 바닷길, 오름길……. 길의 본모습을 보여주려 정성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고맙다. 보통 20km 내외되는 한 코스의 길들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일단 걸으면 충분히 그 보상을 해주고 은총을 쏟아주는 것을 알기에 아침 길을 나설 때부터 설렌다.
길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네 두 다리를 믿고 걸어만 줄래? 흙을 밟고 땅을 밟고 길을 밟고 걸어만 주면 돼…….”
“ 그게 무어 어렵겠어요. 그러지요.”
이렇게 길과 나는 마음을 합하여 나아간다.
걷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몸과 땅과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공기와 향기와 푸름과……, 이 모든 것이 하나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
몸으로 때우는 것! 머리 쓰지 않는 것! 가장 솔직하고 단순한 것!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평등한 것!
이것이 걷기다.
오늘은 올레 19길이다.
약 16km 정도 걷는다.
11월의 날은 쾌적하다. 햇살이 알맞게 부서지고 바람은 살랑이고, 어제 잘 잔 덕에 몸 상태까지 맞춤이다. 제주 어느 바다가 안 그러랴만 함덕 해수욕장 정말 깨끗하다. 파아란 하늘, 그 하늘을 담은 옥색의 바다가 유난히 흰모래 위를 찰랑거린다. 간지러워라. 여름에는 여기 물놀이 천국이겠구나. 온 인류가 놀기에 딱, 지금도 가족 단위로 많이 보인다. 평화로운 가을 바다.
바닷가를 끼고 걸으면 끝 쪽으로 서우봉이 낮게 놓여 있다. 조금 올라가면 나타나는 정자에서 바라본 전망이라니……. 넓게 펼쳐진 함덕 앞바다와 한라산 배경이 감탄스럽다.
숲길을 지나면 바로 서우봉 정상이다. 여기서는 김녕의 검푸른 바다와 봉긋봉긋 오름들을 보여준다. 그냥 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듯 긴 의자가 놓여있다. 얼마나 여유롭고 평화로운지…….
길은 바닷길을 거쳐 너븐숭이 기념관으로 이어진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비와 비석들이 있는 곳이다. 제주 4.3 때 희생된 사람들이 발견됐을 당시, 그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든 검은 비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누워 있다. 비석에는 ‘순이 삼촌’에 나온 구절들이 새겨져 있다. 넋들의 고통들,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이런 비석의 묘들을 봤을 때와 같은 비애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의 잔혹함이 있고, 희생당한 이를 기억하려는 인간의 아름다운 연대가 있다. 극진한 눈물을 자극하는 이 인간의 양극성을, 같은 종인 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제주올레 홈피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당시에 북촌리 전체 323 가구 가운데 207 가구의 479명이 희생되었단다.
젊은 날, 마을의 거의 모든 집에서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는 이 비극을 친구에게 처음 들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북촌 마을은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 없이 조용하다. 비문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는다. 이것이 내게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이다.
숲길이 나타나면서 마음이 내려지다.
빽빽한 나무, 곶자왈의 숲들이 '네 마음을, 무거움을 내려놓으라'라고 하는 것 같다. 당신들은 모든 걸 다 보고 듣고 알고 있지만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고, 역사는 강물처럼 말없이 흐르는 것이고, 악귀 같던 몹쓸 인간들도 구천을 헤매고 있을 터이니, 너무 애통한 맘 갖고 살지 말라고.
박노해 시인의 시집 ‘걷는 여행’에서 읽은 아름다운 시구가 파란 표지판에 적혀 나무에 걸려 있다.
“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
“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은 없다. 좋은 삶이 곧 길이다.”
오랜 나무들이 그들끼리 공명하는 소리인지, 인간이 인간에게 전하는 위로의 마음인지 모르겠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풍력바람개비조차 시처럼 보이는 이 숲……. 아, 이런 걸 치유라 하는 건가.
멀리 김녕항이 보이고, 우리는 가벼워진 몸으로 포구로 간다.
배가 고픈데 작은 포구에는 횟집이 하나 있다. 회만 팔 것 같은 분위기라 그냥 가려다 혹시나 들어간다. 회덮밥과 기본 반찬들이 어찌나 깔끔하고 맛있는지. 잘 먹었지. 잘 걸었다. 오늘 만난 모든 것에 감사를.
2. 천상으로 오르듯 오름길
고향이 제주인 부인을 따라 내려와 몇 십 년째 눌러 산다는 택시기사님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제주에는 오름이 400여 개 있는데, 그중 오를 수 있는 오름이 200여 개 정도 된단다.
오름의 매력에 빠져 오름만 다니는 산악회가 많이 있으며, 당신도 그런 산악회 회원이라고.
듣는 귀 얇은 나도 오름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다. 젊은 날 오르던 한라산 말고, 걷기 딱 좋은 오름 말이다.
10월에 오르는 오름은 억새와 함께 하는 길이다.
완전한 파란빛 하늘, 거기에 살짝 걸터앉은 몽실몽실한 구름, 그리고 쏟아지는 햇살, 그 아래 지구에서는 억새가 춤을 추고 있다. 미친 듯 흔들리는 그들을 보면 내가 덩달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오름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나 돌계단, 오솔길, 숲길, 흙길로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보이는 깊숙한 분화구, 그 주변을 둘러싼 완만한 길하며, 들꽃들과 흐드러진 억새, 한눈에 좌악 펴진 제주의 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처음 이런 풍경을 보았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는데 난 그동안 어딜 다닌 거야?
따라비 오름
정상에서는 올망졸망 놓여있는 주변의 오름들과 멀리 일출봉이 성냥갑처럼 보인다. 어디서 보든 만나면 반가운 그 자태다. 그리고 더 가까이에 한라산, 구름이 다 걷히고 성스럽게 온몸을 드러내고 있다. 운이 좋은 날이다!
다랑쉬 오름과 제주 오름의 여왕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굳이 여왕이 되어야 해? 그냥 따라비 오름! 그 이름, 존재 자체로 존귀함을 허함!
친구와 둘이 1박으로 온 가을 여행이 정점을 맞는다. 따라비 오름 입구에서부터 입이 벌어지기 시작, 억새들 사이에서 눈물 찔끔, 정상의 풍경을 마주하면서 환호, 분화구를 돌며 걸어 내려오는 길에서 힐힐힐힐링링링링…….
이러고 내려왔을 게다.
김영갑이 사랑한 용눈이 오름이다.
수학여행 온 학생을 실은 관광차도 몇 대 있고 단체 여행객도 있고 주차장이 좀 번잡하다.
‘걷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나이 드신 분들도 오를 수 있는 편안한 오름인가 보다’ 하고 오른다. 오르면서, 오르면서 역시 감탄이 나오는, 이 부드러운 능선과 평화로운 기운은 무엇인가.
세상의 번뇌나 복잡함은 다 잊어도 될 것 같은, 그냥 넋 놓고 살아도 용서가 될 것 같은 여유 만만한 능선이라니…….
건너편 오목한 다랑쉬 오름과 함께 한 폭 그림이다. 몽땅 아름다워라.
육십을 넘나드는 우리 친구들과는 “팔십이 넘어서 여기 다시 오자~” 다짐도 하며 감탄 연발인데, 팔팔한 아이들은 오를 때 그 능선도 버거워 낑낑대더니, 정상쯤부터 저 아래로 날아간다. 신났다. 분화구의 모습이나 주변의 경관이나 능선의 여유만만이나 그런 것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참새들처럼 찍찍 소리를 지르며 주차장으로 내닫는다. 저 때는 뭣이 중할까?
곧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 올 남편에게 톡을 보낸다.
"아이들이 감탄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마셔."
내친김에 김영갑 갤러리로 가다. 그가 사랑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친 용눈이 오름의 흔적을 남겨둔 곳으로.
사계절 용눈이 오름을 담은 사진은 환상적이다. 여자의 몸과 같기도, 지구의 몸과 같기도 하다. 부드러운 허리선, 엉덩이선, 땅과 우주가 만나는 선……. 세상에 그런 부드러움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역시 온 마음을 다 빼앗길 만하다. 그의 삶을 다룬 영상이 영겁과 같이 흐르고 있다.
거문 오름
3월의 끝에 비가 며칠 내리더니, 춘분인 오늘 아침 창문 밖은 눈 세상이다.
실눈이 계속 내리고 있고 한라산 전망의 숙소에서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 위로 휘어지게 쌓인 눈 하며, 10센티 이상 내렸다는 눈 세상은 제주만의 별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예약해야 오를 수 있는 거문 오름이다.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유일의 오름이란다. 이 오름의 화산폭발로 인해 만장굴이 생기고, 그 굴에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새롭고 아름다운 석주가 잘 보존되어 있단다.
두 시간 정도 능선과 분화구 밑까지 해설사와 함께 걷는다.
낯선 이들과 가이드 설명을 들으면서 함께 다니는 것이 나에겐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런 방식이 유익할 때가 있다. 모르고 걷는 것과 알고 걷는 것 차이? 물론 듣는 것을 다 기억하거나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나, 가끔 유익, 가끔 색다른 경험으로 인정.
설명 중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 둘.
하나, 일본에서 온 삼나무와 편백나무에 대하여.
거문 오름에는 이 두 나무가 매우 많다. 거기서 나오는 엄청난 피톤치드. 우리가 사랑하는 피톤치드가 사실은 주변의 식물을 다 죽인단다.
두 나무 주변엔 작은 식물들이나 어떤 나무도 살 수 없이 깨끗하게 죽는단다. 정말 주변이 깨끗하다. 그 피톤치드는 아토피도 없애주고 진드기도 없애주고……. 사람 피부에는 좋다만, 그래서 주변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피톤치드.
이것과 대조적인 것이 곶자왈, 주변의 모든 식물이 엉클어지고 어우러져 함께 사는 곶자왈. 잘 나가는 누구 하나가 주변을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그런 생물들이 모두 모두를 살리는 곶자왈이란다.
사람이 식물들을 살릴 수 있을까. 답은 물론! 삼나무 몇을 베어냈더니 주변에 다양한 식물이 살아나 푸른 숲을 만들고 있단다. 권정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 같이 살아야지, 혼자 잘 살면 뭔 재민겨!”
멋지군, 곶자왈! 내 취향이야!
둘, 용암과 오름들의 모양에 관하여.
땅속에 수백 도의 마그마가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폭발해 터져 나올 때 나오는 용암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따라 오름의 모양이 결정된단다, 용암의 종류는 물과 같은 것, 밀가루 반죽과 같은 것, 꿀과 같은 것…….
거문 오름의 용암은 물과 같은 것, 흐를 때 위층은 굳고 아래층은 계속 흘러간다. 또 주변을 다 녹이고 태우고 땅 깊이 흐르고 또 한 층은 굳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만장굴은 3층 정도라고.
산굼부리는 가장 낮은 오름인데 분화구가 깊다. 화산이 터져 용암이 흘러나가야 하는데 밑에서 올라오는 용암이 다른 곳으로 빠져 분화구가 밑으로 깊이 내려앉은 상태.
내 사랑 산방산은 밀가루반죽 같은 용암의 결과! 올라오다 멈추고 굳고, 밑에서 또 올라오다 멈추고 굳고... 그렇게 만들어진 오름이란다. 오호, 신령한 할머니가 한라산의 백록담 한 덩어리를 던져 만든 산방산이라 했는데, 그 신령한 모습의 비밀이라니…….
이후로 찾은 오름들 모양을 보면서 이날 배운 지식을 대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
100% 정확한지는 장담 못하나, 역시 스펀지 같은 얇은 귀다.
선흘곶 동백동산
내일 새벽에 제주를 떠난다. 그래도 오늘 걷는다! 마무리로 어디를 걸을까 하다 찾았다. 숙소 가까운 곳에 있는 동백동산, 이름이 참 동산같이 작고 평범해서, 오래 제주를 다녔어도 눈여겨보지 않던 곳이다. 정보를 찾아보니 습지자연보존지구라 하고, 많은 이가 좋은 숲길이라고 극찬을 한다. 단, 혼자 가지는 말란다. 자기는 겁 없는 사람인데 흐린 날 혼자 갔다 뛰쳐나왔다는 둥 이런 유형의 겁주는 글이 몇 개 있다. 오늘 월요일이라 사람도 없을 텐데, 어째 좀 으스스한 느낌 살짝 든다만.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니라 남자인 그가 있고, 날도 화창한 편이고, 안 가본 곳으로 가자!
걷는 길이 약 5km 거리, 1시간 반 정도 걸린다니 가뿐하게 제주 여행 마무리하기에 맞춤이다!
입구로 들어가면서 나는 이미 감탄할 준비를 한다. 바로 숲길로 들어서고 곶자왈 그 엉클어진 숲이 나타난다. 오늘은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숲길이 이어지는데 하늘을 빼곡히 가리는 크고 긴 나무들은 모두 동백나무들이 아닌가……. 여수의 오동도섬, 사려니숲길, 비자림……. 모두 아름다운 숲길이지만 여기는 사람 다니는 길 외엔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길은 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로 시작된다. 돌담을 쌓듯 한 줄로 이어진 화산석들이 또 태곳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러다 둘이 손잡고 걸어도 좋을 좀 여유 있는 길, 그리고 다섯이 걸어도 좋을 넉넉하고 평탄한 길로 이어진다.
동백나무들이 푸른 잎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햇볕을 못 받아서인지 하늘까지 쭉쭉 뻗기만 한 늘씬한 나무들이 곶자왈을 이루고 있다. 바닥엔 고사리 천지…….
이 겨울에 온통 초록초록이다. 간혹 우리 같은 여행객도 보이고 동네 산책 코스인지 가벼운 산책을 하시는 어르신들도 보인다. 숲길, 낙엽 길, 돌길이 이어진 푸르고 평화로운 길이다.
제주는 얼마나 다녀봐야 제주 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입구로 걸어 나올 때까지 난 그저 감탄 연발일 수밖에……. 친구들이랑 또 와야겠다 생각한다. 좋은 길을 보면 같이 걷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이 길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같이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길을 걷는 것은 이렇다.
신평 곶자왈! 여기서부터 무릉 숲까지 약 4km 이어지는 길이다. 제주에서 가장 긴 곶자왈 지대란다.
4월 봄에 걷는 숲길이, 나무의 연초록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살아서 반짝인다. 새들의 목청도 다양하구나. 나무들이 엉켜 숲 터널을 만든다. 동굴로 들어가는 듯, 빨려들 듯한 길이 이어진다.
이 숲길은 봄에 제주에서 한 달 머물 때 네 번을 걸었다.
그와 함께 올레 11코스를 걷다 처음 만난 길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말이다.
가까운 사이는 아름다움이 공유되는 사이이다. 여행을 가서 좋은 곳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 내가 아끼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갔던 곳을 또 가게 된다. 가이드 겸이다. 역시나 감탄하는 이들을 보는 것도 좋고, 나도 좋은 곳 또 와서 좋고.
하여 우리 집 아이들과 한번, 형제들과 한번, 친구들과 한번 이렇게 이 숲길을 걷는다.
친구들과 걸을 때는 염려가 됐다. 발을 다친 친구가 걸을 수 있을랑가, 같이 못 걸으면 많이 슬플 텐데.
우린 같이 걸었다. 아름답게 무사하게.
우리 아이들과도 걸었다.
표현 세지 않은 아이들도
“음 좋네. 딱 엄마 좋아하는 길이네요.”
넷이서 셀카 팍팍 찍고, 사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하늘 보고 감탄하고, 사소한 기억들 소환하며 웃고…….
한 하늘 아래 평화로운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동백동산의 그 길처럼, 박노해 시가 적혀있는 그 숲길처럼 멋지고 예쁘고 감동이다.
처음 올레를 걷다 만난 이 숲길을 보고 그랬다.
"여기 11코스는 이 숲길 없으면 꽝이얏!"
외치고 나니 11코스의 나머지 길들에게 잠시 미안해졌다. 잠시 반성.
무릉 숲길을 빠져나올 때 표지를 보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 부문 우수상!”
내 무슨 경연대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흠 남들도 다 이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