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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쌤 Jul 07. 2023

행복의 길, 평화의 길

 안산 예찬

 언제든 우릴 배신하지 않아


 부엌에서 내다본 창밖의 풍경이 저러할진대 지금 안산은 얼마나 황홀할까 마음이 혹하여, 늘 잠이 더 고픈 딸아이를 유혹한다. 내려와서 맛있는 거! 달달한 커피를 타고, 감 두 개 깎아서 나서는데 막 신난다. 

의외로 산에는 가을이 성큼 오지 않았다. 천천히 길게 가을일 모양이다. 길은 평일의 한적함으로, 간간이 친구들과 나선 사람들로 심심치 않고 자유롭다. 휠체어도 갈 수 있는 나무로 된 편한 길, 단아한 오솔길, 우아한 숲길, 정상을 향한 북한산 닮은 매력적인 등산길 등 여러 길이 있다.


 안산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약 290m 되는 나지막한 산이다. 생긴 모습이 말의 안장을 닮았대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산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비해 이름이 아주 평범해서 좀 아쉽다. 서울 복판에 있기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이 산을 찾는다.

혼자 걷기에도 안전한 길이며, 지인들과 수다 떨며  걷기에도 딱이기에 자주 찾는 산이다.


 ‘안산 자락길’, 누구나 힘들지 않게 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닦아 놓은 순환로의 이름이다. 7km여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으면 약 2시간 걸린다.  

 철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꽃들의 향연은 가히 꽃 궁궐이다. 하늘로 솟은 무성한 나무들이 빽빽한데, 거대한 귀룽나무의 자태나 메타세쿼이아 군락들을 보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깊은 산속을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러다 곧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아 여기 서울이지.' 깨닫는다.

 도심에서 깊은 자연을 만끽하는, 아니 자연에서 도심의 정면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귀한 산이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이 서울 사람에게는 보통 복이 아니다. 조선 초에 사면에 펼쳐진 산세와 한강을 보고 수도로 정했다는데 그 관찰지인 북한산에서의 조망뿐 아니라, 여기 안산에서 바라보며 궁궐을 지을까도 생각했다니, 정상인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을 보면 그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마도 더 많은 산이 펼쳐져 있고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이었을 것이다. 밀려드는 인구와 마구잡이 개발로 들어선 아파트와 거대한 빌딩숲을 볼 때마다 아깝고 안타깝지만, 아쉬운 대로 난 지금의 서울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 산의 모든 길이 평화로 안내한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 와도 평화롭다고, 나이 80이 넘어서도 걸을 수 있고 안산은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맞아줄 거라고, 안산은 언제든 우릴 배신하지 않는다고, 난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전한다. 

안산교! 열혈 신도처럼 포교를 한다. 한번 와본 이라면 인정 안 하는 이 없고 그들은 이 산에 푹 빠진다. 그들이 전도하고 또 전도하고……. 그래서인지 부쩍 사람이 많아졌다. 이제 그만 포섭할까나?


 오랜만에 찾아온 길이 딸아이도 좋은 모양이다. 잠은 떨어지고 눈빛이 푸르게 살아난다. 우리는 이런저런 쫑알쫑알 후후 푸핫, 길을 보랴 나무 보랴 꽃 보랴 풀 보랴 이야기하랴 들으랴 웃으랴, 갇혔던 온 감각이 터져 나오는 듯하다.


 엄마는 이렇게 두 발로 걸을 때 너무 행복해,

나는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 행복해,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려서 도서관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행복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

엄마는 아무도 없는 아침에 청소를 깨끗이 해놓고 커피를 내려서 혼자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볼 때 행복해,

나는 저녁에 이불 속에 들어가서 인형들이랑 잠을 자는 시간이 행복해,

엄마는 노래하고 싶을 때 기타 치며 혼자 노래 부르는 시간이 행복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그들의 회견장에 가있는 시간이 행복해,

엄마는……. 나는……. 우리는 이러고 내 사랑 안산 길을 걸었다.

안산이기에 쏟아지는 고백들, 평화의 길에서 내려놓는 마음들. 두 다리와 온몸으로 깨닫는 깨알 같은 은총들…….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일상이 기적’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는데, 이런 끝없는 기적이 있을까. 감사 인사.

가뿐가뿐 내려오며 딸아이가 좋아하는 맛난 거 먹으러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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