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얼마 후 그는 내게 여러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선배 인생에 분명 축복이 가득하실 것입니다. 이 책들이 이미 커다란 축복이요, 큰 변화의 시원이자 무한 에너지의 근원지니까요.”
그가 나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추천한 책 중 한 권은 제목의 의미조차 알 수 없는『호오포노포노의 비밀』. 단어조차 생소한 호오포노포노가 무슨 의미인지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호오포노포노는 ‘바로잡다’ 혹은 ‘오류를 정정하다’라는 뜻입니다. 호오는 하와이 말로 ‘원인’이란 뜻이고 포노포노는 ‘완벽함’을 뜻하죠. 고대 하와이인들에 따르면 생각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오염될 때 오류가 발생합니다. 호오포노포노는 불균형과 질병을 유발하는 이런 고통스러운 생각들, 즉 오류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한 방법입니다.”
호오포노포노의 관점에 따르면 “문제는 내 무의식 속에서 재생되는 기억”이고 “그 누구와도 어떤 장소나 상황과도 무관”하다. 내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기억의 재생에 있으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그러니까 오류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방법은 용서하세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가지 사랑의 언어로 기억을 정화하는 것. 이러한 정화로 “내 마음을 최초의 제로 상태, 즉 공(空)의 상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재충전”하고 “내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나는 신성이 나를 창조할 당시의 바로 그 상태, 신성한 자아”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에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내 의지를 강화하는 암시를 하다가 내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끼고 신성을 향해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께 다 내맡기겠습니다’라고 수정을 한 참이었다. 내 안의 나에게로 다가가고자 하는 나에게 그 책은 내가 신성과 긴밀하게 연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와 신성 사이를 연결하는 무의식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득한 생으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고, 그 무의식 속에서 재생되는 기억이 삶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끊임없이 정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호오포노포노의 네 가지 주문이 바로 염불이요 기도가 아닐까. 부처의 설법과 기도의 모든 말을 요약하면 그렇게 네 마디만 남지 않을까. 새로운 치유의 원리를 담은 신비로운 책의 가르침을 나는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정화하기 시작했다. 내게 책을 소개해준 학우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당시 내 얼굴은 무엇 때문인지 가렵고 이마는 긁어서 진물이 났다. 어떤 기억이 재생이 되어서 몸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내 의식으로는 알아낼 수 없으니 나는 책에서 알려주는 대로 해보았다. 그리고 일어난 변화를 내가 날마다 의식처럼 행하는 새벽 편지 쓰기로 멘토에게 알려주었다.
“용서하세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얼굴한테 말했을 뿐인데 발걸음이 춤추는 듯합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입니다. 제가 어떤 노력을 해서가 아니라 이유 없이 자신이 기대됩니다. 기대된다는 말을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들으니 더할 나위 없이 신이 납니다. 신성이 표출되는 통로는 의지가 아니라 사랑인 줄 알겠습니다.”
멘토는 이렇게 말했다.
“정확하게 인지하셨어요! 깨달음이 날로 커지시네요! 그것이 바로 성공학의 출발이기도 해요. 파이팅! 자신의 얼굴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세요~^^”
멘토는 내게 공주병에 걸린 것처럼 해야 된다고 말하곤 했는데 내가 속으로 내게 하는 사랑 고백은 내 안에서 메아리치면서 마음의 색깔을 바꾸는 듯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무심결에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나는 불화한 나와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어린 날 마당에 그릴 수 있는 한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한구석의 한 뼘 되는 땅 위에서 돌을 튕겨 세 번 만에 출발한 그 지점으로 돌아오면 돌이 움직인 경로를 선으로 그어 자기 영역을 넓혀가는 놀이를 한 적 있다. 이른바 땅따먹기 놀이. 땅따먹기를 하듯이 나는 새벽 편지 쓰기와 호오포노포노를 통해 내 안에 긍정의 영토를 점점 확장했다. 긍정의 영토가 확장될수록 내 밖에는 새 세상이 재건되었다. 듣던 대로 현실은 의식의 반영이었다.
해 질 때까지 논문과 자료를 읽기만 하고 한 줄도 쓰지 못한 날들. 그 마음을 일기에 털어놓곤 한 많은 날들을 지나왔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멈칫거리기만 하던 내 손가락들 사이로 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글을 쓰는 나날에 내가 입에 올린 단어는 바로 행복.
그때 내가 쓴 글이라는 게 논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온종일 글쓰기에 몰입한 날들에 나는 그때까지 경험한 적 없는 지고의 감정을 느꼈으니. 그날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는 글쓰기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 아니었나. 꿈인가? 현실을 자각할 때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한마디로 예상 밖의 전복. 에드몽 자베스의 시집 제목처럼.
전복의 순간을 지켜본 사람. 바로 나의 독자. 독자라니? 논문이 나오기도 전에? 있었다. 그는 다른 소속에서 우리 과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수. 멘토와의 만남이 그렇듯이 그와의 만남도 너무나 뜻밖이었다. 하루는 논문을 쓴다고 앉아 있는데 향후 프로젝트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연구비 지원 사업에 응모할 계획서를 작성하려고 참여자들이 교수 연구실에 모여 각자 맡은 부분을 끝내고 함께 저녁을 먹으로 갈 때였다. 교수와 나란히 걸으며 더디고 더딘 논문 진행 상황을 이야기하던 와중이었을까. 교수가 말했다.
“넌 글을 잘 쓴다. 자신감을 가지고 써. 혼자 하면 나태해지기 쉬우니까, 한 장이라도 쓰면 메일로 보내. 내가 읽어 볼게.”
벌레 먹어 죽어가는 고목. 수령이 백 년도 넘은 고목도 꽃을 피운다. 뜻을 꺾지만 않는다면. 선암사에서 고목이 달고 있는 매화를 고개 들고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다가 울퉁불퉁한 나무의 큰 줄기를 쓰다듬어보다가 차마 떠나지 못하고 고목을 빙빙 돌고 돌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내가 한 다짐도. 포기하지 않고 애쓰니 알 수 없는 어떤 힘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절실한 다정한 존재들을 그렇게 연결해주고 있었다.
논문 최종고가 나올 때까지 매일 쓴 글을 교수에게 전송하면서 나는 나를 새롭게 발견했다. 글쓰기에 몰입한 나를. 단 한 사람의 독자가 볼 글을 몇 달 동안 쓴 결과는 몇 년 동안 혼자 한 것과 맞먹을 정도였는데, 그것을 헤아려보면서 나는 허탈했다. 이렇게 쓸 수 있는데 그토록 오래 뒷걸음질만 쳤다는 사실에. 그리고 경악했다. 한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잠재력이 분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내가 전송하는 메일에 그는 일일이 코멘트하지 않았지만 한 번씩 찾아갈 때마다 나에게 말했다. “잘 썼다.” 얼마든지 허점을 찾아낼 수 있는 글이지만 내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그는 내 필요를 채워주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선의 오직 그것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한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애정 어린 눈과 다정한 말이었다.
그 눈과 말은 빛이고 온기다. 콸콸 물을 쏟아내는 수도꼭지도 꽝꽝 얼어붙으면 물이 나오지 않듯이, 쏟아져 나올 글이 마음 안에 있지만 글이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빛과 온기가 결핍되었기 때문. 그래서 마음이 얼어붙어 버렸기 때문. 언 마음을 녹여낼 만한 빛과 온기를 지닌 마음이 일정한 시간 지속된다면 누구든 전복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아니 회복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천재가 우리 안에서 숨쉬고 있으니. 다만암울한 기억이 재생되어 혼란스러움 속에 묻혀 있을 뿐.
경이로운 그 여름날의 기억을 돌아본 것은 최근이었다.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나는 “Vienna, in 1792” 프로그램북을 가지고 객석에 앉아 있었다. 피아니스트 안종도가 1792년 베토벤이 빈에 정착할 당시의 음악을 연주하고 해설하는 시간. 집에서 듣는 음악은 내게 그저 배경일 뿐이어서 사랑하는 이의 말에 귀 기울이듯 선율에 실린 감정에 온전히 기울어지고 싶은 날.
내게는 이름도 생소한 작곡가 칼크브렌너의 녹턴 3번을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였다. 내면의 존재와 하나로 움직이는 무대 위의 연주자에게서 신의 현현을 보기에 무대를 주시하지만 그 곡의 피아노 선율을 듣는 동안 나는 마음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분홍빛으로 몽글몽글해지면서 눈이 절로 감겼다.
곡의 어디쯤에서였을까. 불현듯 학위 논문을 쓰던 여름날이 떠올랐다. 글쓰기에 잠겨들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달이 뜨고 해가 뜨곤 한 날들. 온종일 글을 쓰며 때때로 바흐 칸타타 82번 <나는 만족하나이다(Ich habe genug)>를 들은 나날들. 눈물이 흘러내렸다. 따뜻한 눈물이. 기쁘고 행복해서 마음이 따뜻해지면 체온도 상승하는가. 눈물은 그래서 따뜻한가.
왜 그 순간에 그 기억이 떠올랐는지 나는 모르지만. 나는 또 알고 있으니 기억의 저장고에서 그 음악에 걸맞은 기억을 골라 내게 보여준 건지도 모른다. 논문을 마무리하던 여름날 그 기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했는데. 녹턴은 일기장에 적어 두고 싶은 감정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말을 듣고 나만 아는 기쁨이 작곡가 자신만 아는 기쁨에 공명했구나 싶었다. 그 곡이 끝났을 때 많이 아쉬웠다. 논문 제출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그 여름날 글을 쓰는 날이 영원하길 빌었듯이.
내 삶의 날들을 그 감정 속에 머물고 싶어 하면서 어찌하여 글 쓰는 삶 속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살얼음을 밟듯 전전긍긍 방랑하다 간신히 여기 이르러 이쯤에서 겨우 돌아보는가. 독서대에 올려 두고 요즘 거듭 읽고 있는『믿음으로 걸어라』표지를 문득 본다. 산 정상에 오른 한 남자가 지팡이에 의지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뒷모습을. 알고 보니 표지의 그림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홀로 고독하게 정상에 오른 남자는 안개 너머 자신이 출발한 지상을 더듬어 보는 것일까. 안개를 헤치며 어렵사리 정상에 오르는 동안 그는 무엇을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렸을까. 저기 인생의 산을 힘겹게 오르는 이에게 그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궁금해 하다가 태백선을 타고 홀로 정선으로 간 지난겨울을 생각한다. 눈이 길을 지워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민둥산에 오른 흐린 날을.
아이젠도 스틱도 없이 발이 푹푹 빠지는 그늘진 산속에서 눈에 걸려 순백의 눈 위에 엎어져 있을 때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마침내 만난 발자국 주인. 그 남자가 내게 주고 간 말을 생각한다. “거의 다 왔어요.” 그 말을 짚고 일어나 아무도 없는 민둥산 정상에 올라 바라본 풍경을 생각한다. 신이 몸을 누인 듯한 설산을 건너다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몰려온 까마귀 떼. 내 머리 위에 내려앉을 듯이 낮게 날던 까마귀 한 마리의 까만 눈동자도.
상념에 빠져 있다 눈길은 책의 표지 그림 아래의 문장으로 옮겨 가고.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미래를 창조한다.” 몇 번이고 되뇌며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감탄하고 있다. 네빌 고다드의 눈으로 보자면 나는 “운명의 피해자가 아닌 단지 자신에 대한 믿음의 피해자.”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 문집에 들어갈 글을 쓴 뒤에 나를 강타한 태풍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잊었으나 그 일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쓰기가 그토록 두려운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무슨 영화인지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서가를 둘러보다가 책 뒤표지에서 저 문장을 발견하고 읽게 된 소설『너무나 많은 여름이』. 소설가 김연수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막다른 코너에 몰려 있을 때 나에게 이유 없이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어느 사이 용기 내어 나는 지금 태풍의 눈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