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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Sep 02. 2023

뭐가 돼도 될 놈이다.

주어진 것에서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할 일 없이 침대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게으름에 빠져 있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문득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아 스마트폰을 열어 일정표를 뒤져봤다. 얼마 전에 잊지 않으려고 메모해 둔 일정이 있었다. 얼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책갈피에 꽂아둔 콘서트 공연 초청 티켓을 찾아 서둘러서 아내와 함께 공연장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이 출연하여 주민들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콘서트였다. 우리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부담 없이 다큐멘터리 영상과 노래로 이어가는 참신한 느낌의 공연이었다. 공연의 한 꼭지로 청소년기의 거친 삶을 살았던 경험을 노래하는 한 청년의 모습에서 가치 있는 삶을 찾아서 성장해 가는 청소년들의 숨겨진 일상을 볼 수 있었다. 


가정환경이 어려웠거나 친구들과 그릇된 우정으로 공부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방황과 일탈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가는 고독한 이야기가 노래와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풀어졌다. 청소년기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혼란과 방황을 헤치고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활은 점점 궁핍해졌다. 가난한 삶의 굴레에서 병약한 어머니와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이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며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전부였다. 

다행히도 우리 집을 동네 사랑방 삼아 어머니와 말동무해 주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주시는 동네 할머니들 덕분에 집안에는 온기가 식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 집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너무나 잘 아시는 어르신들은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는 나에게....

"공장에 취직해서 돈 벌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의 어려운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어르신들의 말씀이었지만 원망과 오기가 생겼다. 

대학 갈 생각 말고 공장에 다니라는 말은 그 시절 나보다 더 큰 가난을 겪었던 어르신들의 현실적인 권유였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학 진학과 공장 취업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여러 날 고민 끝에 어르신들에게 

대학에 떨어지면 바로 공장에 취직하겠으니 대학교 입학시험 때까지 지켜봐 주시라고 사정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때 나의 어린 맘에도 순간의 선택이 내 평생을 좌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창 공부해야 할 고등학생에게 대학교 가지 말고 공장에 가서 돈이나 벌라고 말하는 어른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내 형편이 워낙 딱해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굳은 마음을 갖고 공부할 환경을 애써 만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서 대학 시험을 치르는 날이 다가왔다. 

대학 시험 전날 긴장감이 컸던지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고사장으로 향했다. 

고사장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에 쫓기어서 답안지 마킹에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지나온 많은 날들이 하루의 실수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난 후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들고 그동안 마음고생하며 노력한 만큼의 시험 결과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대학입시 결과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그때부터 등록금 마련이라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궁리 끝에 동네 마을금고를 찾아갔다. 마을금고에 들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쭈빗쭈빗하며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창구 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니 상무님이라는 분을 만나게 해 주었다. 

상무님에게 동네 사는 학생인데 꼭 갚겠다고 대학 등록금을 빌려 달라고 간청했다.


나의 간절한 요청에 그 상무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상무님은 이내 말을 꺼냈는데 아무런 담보도 없이 그것도 학생에게는 대출해 줄 수는 없다는 대답이었다. 

다시 한번 꼭 갚을 테니 한 번만 도와달라고 통사정했다. 나의 호소에 한숨을 쉬던 그 상무님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다며 윗분들과 상의를 해 보겠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주셨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상무님은 대출 조건으로 당시 동사무소 동장님의 추천서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그 길로 기쁜 마음에 동장님을 어렵게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다음 날 아침에 마을금고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마을금고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동장님이 이내 오셔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시고 이사장실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나누셨다. 염려한 것보다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동장님과 마을금고 이사장님과 의견 충돌이 생겼다. 


“날 보고 보증을 서라는 말인가” 

몹시 화난 표정으로 동장님이 이사장실 문을 박차며 나오셨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시는 동장님을 쫓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내 모습을 보던 동장님이 내키시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으셨는지 이내 다시 이사장실로 들어가셨다. 크게 들리던 언성이 잦아들더니 두 분이 서로 악수를 하며 나오셨다. 상무님은 나에게 잘 될 것 같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다음 날 우리 집 사정을 잘 알고 계셨던 통장님은 마을금고에서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며 서둘러서 가보라고 하셨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어머니 이름으로 오십만 원의 대출을 받고 등록금 고민을 풀 수 있었다. 


그 당시에 대학 등록금이 입학금까지 모두 사십여만 원이었다. 나머지 십만 원은 책값과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필요했던 것에 소소하게 썼다. 등록금을 마련하기까지 다소 어려웠지만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정성을 다해 하고자 하는 일에 노력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이 생겨났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대학교 생활은 고등학생에서 벗어나 대학생이면 느낄 수 있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대학 생활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대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고 마을금고의 대출금도 갚아야 했기에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면서도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측은지심 걱정이 많으셨다. 


우리 집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나를 대신하여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신 동네 어르신들에게  약속과 부탁을 드렸다. 공장에 취업하는 대신에 대학 입학으로 당장 돈벌이는 못해도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살림을 잘 꾸려나가겠으니 어머니의 말동무로 곁에서 계속 보살펴 주실 것을 간청했다. 내 말을 들으신 어르신들은...   

   

“그래 너는 뭐가 돼도 될 놈이다.”라며 내 등을 토닥여 주셨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의지대로 모든 일이 잘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더욱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해야 할 어려움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어져야 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감당하지 못할 환경에서 청소년기의 일탈은 오는 것 같다. 그것이 경제적인 가난이든지 균형을 잃은 가정환경이라면 감내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하지만 그러한 여건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 나이에 맞게 진심을 다해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 주는 따뜻한 손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왜 그래요” 


나란히 않아 공연을 보던 아내가 눈물을 닦으려고 주섬주섬 손수건을 찾는 내 모습을 보고 아내는 내 손을 잡으며 다그쳐 물었다. 

다큐멘터리 콘서트 무대에서 청소년 시절의 방황을 노래로 이야기하는 청년의 모습을 통해 이제는 자기 삶의 방향을 잡고 한 마리의 새처럼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의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삶의 지나온 여정을 반추하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이정표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쥔 아내의 따뜻한 손이 내 마음을 더욱 푸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날아가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지나온 날을 잊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지난날의 경험과 추억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현재의 모습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진정으로 내가 소망하는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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