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것에서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귓가에 맴도는 낯익은 가위질 소리에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이내 달콤한 꿀잠의 유혹에 떨어지는 순간 아내의 목소리에 움찔 놀랐다.
“여보 또 졸았지요. 자꾸 졸면 머리 파인단 말이에요.”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아내의 가위질 소리가 마치 자장가 소리인 양 연신 고개를 끄덕였던 모양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아내는 욕실 한 켠에 의자를 놓고 내 머리를 잘라준다.
20년 넘게 아내에게 머리를 맡기고 바리깡이라 부르는 이발기와 가위질 소리를 들어왔다.
바리깡 소리는 요란해서 정신이 멀쩡하다가도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에는 영락없이 스르륵 잠이 온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다가 어쩔 수 없는 아내의 가위질에 머리가 파이기도 한다.
파인 자리를 감추느라 머리가 짧아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만족할 만한 헤어스타일이 연출된다.
아내의 잔소리는 달콤한 졸음 속에 느껴지는 편안함이었던 것 같다.
욕실에서 아내가 내 머리를 잘라줄 때마다 종종 빡빡머리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머리 깎는 비용을 아끼려고 이발소를 안 가고 머리를 깎는 도구인 바리깡을 사서 집에서 혼자 머리를 깎았다. 아내가 쓰는 전기 바리깡이 아니라 오로지 손의 힘으로 작동하는 수동식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았다.
그것도 혼자서 이리저리 거울을 보면서 깎다 보면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뜯기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리깡 사용에 익숙하지 못 한 채 거울을 잘못 비추다 보면 뒤통수에 수박 줄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수박 장사라는 놀림도 당했다.
하지만 몇 번 자르고 나면 혼자서도 어느새 능숙해져서 뒷머리에 수박 줄 없이 잘 깎게 된다.
이렇듯이 아내가 머리를 잘라 줄 때면 버릇처럼 예전 추억에 잠겨서 그 편안함에 까박까박 졸기가 일 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아내에게 머리를 맡기고 꾸벅거리며 졸 정도로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을 어쩌면 아내에게 느꼈던 것 같다.
개구쟁이 짓에 즐거워 뛰어놀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컴퓨터 게임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거의 없었다.
그날도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밭이랑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동네 친구들과 조금 더 재미있는 놀이를 찾다가 나지막한 언덕에서 멀리뛰기 놀이를 하기로 하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몇 번의 가위바위보를 거쳐 내가 첫 번째로 뛰어내리게 됐다.
온몸에 힘을 모아 있는 힘껏 껑충 뛰었다.
내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마치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들면서 땅속으로 종아리까지 쑥 빠져들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거름 똥구덩이에 두 발이 파묻혔다.
밭에 거름을 주려고 똥을 모아 놓은 구덩이가 딱딱하게 굳어져서 마치 평평한 땅처럼 보였던 것이다.
함께 놀고 있던 아이들도 나만큼 놀라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자기들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코를 부여잡고 거름 구덩이에서 나를 끌어냈다.
밭에 거름으로 쓰려고 오랫동안 썩혀가며 모아둔 인분의 딱딱한 표면을 뚫고 들어갔던 내 두발이 나오자 지독한 똥 냄새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걱정스러워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지독한 똥 냄새를 안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마주쳤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시며 얼른 수돗가로 데려가 똥 독이 올랐을까 걱정하며 내 발과 다리를 연신 비누 칠을 하고 헹구기를 반복하셨다.
어느 정도 똥 냄새가 사라지고 있을 때 내 엉덩이를 때리셨다.
“이 녀석아 큰일 날 뻔했잖아” 자식에 대한 걱정과 안도가 교차하는 어머니의 한숨과 꾸지람이었다.
그날 어머니의 모습에서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한 걱정과 아가페적인 사랑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보 머리 바로 세워요”
꿈속에서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있었는데 아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욕실 거울에서 헤어가운을 걸쳐 입은 나를 발견한다.
졸음에 빠진 나에게 아내의 잔소리는 어머니에게 느꼈던 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 어머니의 걱정에 찬 꾸지람은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표현이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아내의 손길에서 느껴졌다.
가족들이 서로 감싸고 아끼고자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봉사의 마음은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는 것을 보람이라고 한다면 봉사의 대가는 보람을 얻는 것이고 그 표현은 기쁨이 아닐까.
여기에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애쓰는 마음을 배려라고 한다면 지독한 냄새를 참아가며 똥 묻은 자식의 발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손길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어머니처럼 무조건적인 배려의 마음은 아니더라도 타인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도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봉사와 배려에 대한 정의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늘 상 있었던 아주 가까운 데서 우리는 그것들을 배우면서
체득하여 왔다.
그 좋은 본성을 깨우쳐 살아가는 것이 즐거운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