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3-1장 끓어오르는 밤

by 삼류작자

'딱깍 딱깍 탁탁탁'


낡은 주택. 얼룩이 말라붙은 장판으로 오래된 커튼 사이 새어 나오는 오후의 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방 한쪽으로, 승호는 컴퓨터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게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고, 양손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신 눌러대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낮은 탄식과 키보드소리가 방안의 정적을 이따금씩 흔든다.

게임에서 질 때마다 팀원들이 '플레기'라며 빈정거리며 모든 탓을 자신으로 향함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간다.


'딱깍 딱깍 탁탁탁'


컴퓨터 화면에 "패배"문구가 크게 나오자 '아.. 아 아 씨발새끼들.. '승호 자신도 모르게 속삭이듯 낮은 탄식과 욕설이 튀어나온다.

자신의 계정프로필을 확인하니 또 승급 실패다.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며 사계절이 지났다. 자연스레 모든 정신은 게임 속 의미 없는 계급이 목표가 되었고 그것을 실패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그를 짓눌렀다.

오늘만 해도 수차례 승급도전을 했었다. 그리고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모든 게 같은 팀원들 탓이었고 만나는 팀원들마다 매번 모든 탓을 승호에게 돌리며 조롱했다.


컴퓨터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승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지만, 그것은 어디로도 향하지 못한 채 그의 속을 갉아먹고 있었다.

침울한 방 안의 공기는 무겁고 정체되어 있었다.


'통.. 통'


방문이 작은 진동을 하며 울린다. “승호야.”

문 밖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걱정과 슬픔이 섞인듯한 목소리가 그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겼다.


“너 여태 밥도 안 먹고 있었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승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네 나이에 다른 애들은 직장을 잡고, 결혼 준비도 한다. 너는 뭐 하냐? 나와서 밥이라도 먹어”


이어져 거실에서의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의 새끼 밥도 주지 마. 게임만 그렇게 할 거면 집에서 당장 나가!”


그는 모든 것을 외면하기 위해 헤드셋을 다시 끼고 볼륨을 높이고 게임에 입장한다. 엉망진창의 현실이 그의 게임 속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연전연패 그리고 고의적으로 다른 이들의 게임방해를 하며 악순환처럼 다수의 팀원들에게 온갖 욕설을 들으며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간다.

현실을 도피해 게임 속으로 도망갔으나 오늘은 그곳에서도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 2시.


어둠 속에서 컴퓨터 화면이 의미 없이 켜져 있다.

승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방은 지저분한 모습 그대로였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가슴속 어딘가에서 울리는 두근거림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게임 속 상황들과 자신의 현실에 대해 시뮬레이션하듯 마음속으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고 또 자신의 입장에 대해 끊임없이 변호했다.

그 결과는 분노였다. 생각을 거듭하고 모든 것을 복기할수록 마음속에서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승호의 마음속에서는 터져나갈 듯한 분노가 자라고 있었다.

그는 베개를 머리 위로 덮고 머리를 감싸봤지만, 생각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숨을 깊게 쉬어보려 했지만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닥치라고…”

승호의 입에서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머릿속 부모님의 목소리와 자신의 변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


방문 밖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온다. 승호는 숨을 죽였다. 그는 그냥 지나가는 발소리 이기를 바라고 바랬다.


"너 방에서 당장 나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서 텅 빈 눈으로 모든 것을 증오하고 원망하며 분노만을 키우던 그에게 아버지의 목소리는 심장을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승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으며 스스로를 숨기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점점 더 숨이 막혀왔다.


“게임 끄고 나와!” 아버지는 그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 쾅! 쾅! 철컥철컥.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잠겨있는 문고리가 부서지게 흔들린다. 이불을 뒤집어쓴 승호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어진 것 같았다.


- 쾅! 쾅!

문이 흔들리고 쿵쿵거릴 때마다 승호의 심장은 저 깊숙한 곳으로 철렁 철렁 내려앉았다.

"너 문 당장 안 열어!!"


-쾅 쾅 철컥 철컥 철컥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승호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어두운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그의 시선은 책상 구석에 놓인 금속 트로피에 멈췄다.

‘닥치라고.’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듯 낮게 내뱉었다. 그러나 문고리가 다시 한번 흔들리자 그 말은 금세 커졌다.

“닥치라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트로피를 쥐고 문 쪽으로 단호하게 걸어갔다.

흔들리는 문을 열자마자, 아버지의 커다란 실루엣이 드러났다. 짙은 그림자가 방 안으로 쏟아졌다. 승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모든 분노를 담아 트로피를 힘껏 휘둘렀다. 금속과 머리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으!”

아버지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쓰러지는 그의 손에서 방문 앞 작은 테이블 위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걸음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승호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승호의 호흡은 편안해졌으며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그리고, 그의 손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아버지의 머리 쪽으로 다가가 온 힘을 다해 다시 한번 트로피를 내려쳤다. 둔탁한 소리만 들릴뿐 더 이상 비명도, 움직임도 없었다.


“미쳤구나, 승호야!”

어머니는 도망치려 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주방에 부엌칼이 눈에 들어왔다. 승호는 그 칼을 집어 들고 어머니를 쫓았다.


“그만둬!”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손을 뻗었지만, 승호는 멈추지 않았다. 칼이 어머니의 가슴을 향해 내려오는 순간, 그녀의 비명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몇 분 뒤, 집 안은 조용해졌다. 승호는 거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고, 그의 발밑에는 쓰러진 부모님의 시신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과 핏자국이 조금 전 일어난 일들의 광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닥치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귀에는 여전히 부모님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승호는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그는 또다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게임에 접속했다.

이전 09화공정한 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