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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움 름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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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자 Nov 19. 2024

공정한 판관

2-4장 공정한 판결

순간 창현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깜빡이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 위쪽을 매만지며 현실감을 찾고자 시간을 확인한다. 다른 손에 쥐고 있는 판결문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법정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방금 겪은 참담한 공포와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그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옆에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존재들이 느껴졌다. 자신의 죽음을 겪게 한 그들은 묻고 있었다.


그를 죽이든 혹은,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손에 죽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창현은 떨리는 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피고석에 앉아 있는 최우석을 다시 쳐다보니, 그가 보이는 모습은 아까 그 환영 속에서 마주했던 분노에 찬 우석의 얼굴과는 달랐다. 젊고 애처롭게 구원을 바라는 표정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겪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창현이 우석을 바라보는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창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판결문을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피고석에 앉아 있는 우석이 실질적인 가해자였고, 피해자는 자신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이 재판을 주관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과연 공정할 수 있는가?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공정한 법관’으로서의 신념과 도덕적 기준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이 판결은 자신을 위한 복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점점 이성마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한참 동안 침묵하자 법정 안의 방청객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모든 시선이 창현에게 쏠렸고, 그 순간 그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고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피고가 정당방위를.. 정당방위를.. 무죄를 선고..”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끝이 흐려졌다.


그 순간, 죽음의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생생한 고통과 참담한 공포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전으로 돌아가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이제는 분명히 깨달았다. 미래를 바꿀 다른 길은 없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 ‘죽음’이거나 ‘용서’였다.

용서를 한다면 그들에게 생각을 거두어 가달라고 하면 될 뿐이었다.

창현의 눈은 여전히 불안하게 흔들렸고, 그의 이마에는 땀이 번지기 시작했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마치 목에 걸린 무언가가 그를 옥죄는 듯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특히 피고석에 앉아 있는 우석의 눈빛이 그를 사로잡았다. 자신을 향한 절박한 시선에 그는 처음으로 말문을 열기 어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침내 창현은 입을 떼며 나지막이 선언했다.


"본 법정은… 10분간 휴정하겠습니다."


법정 안이 술렁였다. 판사의 갑작스러운 휴정 선언에 방청객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일었고, 창현은 방청객과 동료 법관들의 의아한 눈초리를 뒤로한 채 서둘러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복도 끝이었다. 뒤따르는 동료들의 물음과 청경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멀리하고 급히 복도를 걸어 나갔다.

복도 끝에 다다른 창현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잠시 벽에 기대어 섰다. 그때였다. 그의 시야에 거대한 두 존재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움과 름이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창현은 이상하게도 그들에게서 두려움이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듯한 무언의 메시지..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만이 그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어떤 강렬한 충동이 그를 몰아붙이듯, 창현은 갑자기 발걸음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 트렁크를 열고 낚시 가방을 꺼내자, 그 안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낚시용 나이프가 손에 잡혔다. 매끈한 날을 옷소매 속에 감춘 그는 다시 법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법정으로 돌아오자 모든 시선이 그의 동요를 감지한 듯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무대처럼 서 있는 법정 중앙을 지나 피고석으로 다가가자, 청경이 다가와 그의 상태를 걱정스레 묻는 듯 손을 뻗었다. 창현은 다시 한번 손사래를 쳤다. 한 걸음 한 걸음, 창현은 피고석 앞으로 도달했다. 우석이 깜짝 놀라며 창현을 올려다보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우석에게 속삭였다.

"잠깐만..."

우석은 그의 손짓을 따라 머리를 가까이 기울였다. 바로 그 순간, 창현은 소매 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칼날을 우석의 목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우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창현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차가운 나이프를 힘껏 쥔 채, 온 힘을 다해 우석의 목에서 칼날을 그었다. 피가 솟구치며 창현의 손과 법복 위로 넘실거렸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 법정 안의 혼란은 몇 템포나 늦게 찾아왔다.

방청석에서 비명이 터지고, 법정 내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창현은 이해할 수 없는 듯 피에 젖은 손을 바라보았다.



창현의 시야 속에, 피고석 테이블 위에 놓인 우석의 머리가 보였다. 그 머리는 턱 끝부터 식도까지 삼분의 일이 잘려 나가며,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잔혹하고 충격적이었다. 창현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완전히 비어 있었고, 온몸이 얼어붙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은 피에 덮여 있었다. 손끝에 묻은 피가 떨리는 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고, 그 떨림은 점점 심해졌다. 창현은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가 묻은 법복의 소매, 손톱에 고인 피는 그에게 강렬한 현실감을 안겨주었지만, 머릿속은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창현은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고, 그의 의식은 그저 흐려져갔다.

그에게 법정 안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고요해졌다. 창현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응시하며,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감정이 억제된 채, 그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법정 밖으로 향했다. 그 어떤 선택도,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는 단지, 이 상황을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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