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움 름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류작자 Nov 16. 2024

공정한 판관

2-1장 죄인


2014년 어느 가을날, 법정 안으로 쏟아지던 햇살이 우석에겐 차갑게만 보였다.


우석은 피고석에 앉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앞으로의 몇 시간이 그의 남은 인생을 결정할 것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엄숙하고 견고한 나무 벽, 중후하게 놓인 재판장석, 그리고 자신을 주시하는 날카로운 시선들이 그를 옥죄었다.

어찌 보면 고리타분할 정도로 반듯한 삶을 살아온 우석에게 '살인사건'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었다.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폭행, 그로 인한 사망. 누군가에게는 핑계이거나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고 그리고, 그 순간이 이 자리에 앉혔다고 믿었다.


우석이 자책과 후회에 사로잡혀 피고석에 앉아있는 동안, 김창현 판사가 법정에 들어왔다. 판사의 얼굴은 굳고 단호했다. 그가 걸어오는 동안 법정 안은 일순간 숨 죽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김창현 판사는 평소 무겁고도 냉철한 성격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공정하다고 했지만, 우석은 그 날카로운 눈빛 속에 자리 잡은 오만함으로 보였다. 판사의 그런 모습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억울함을 헤아릴 여유나 이해하려는 자세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재판이 시작되었고, 먼저 검사가 일어나 우석을 몰아붙였다.


“피고 최우석은 자신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이미 비무장 상태였던 침입자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검사는 여유롭고도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도 귀중합니다. 피고가 단순히 저지하는 선을 넘어섰기에, 이는 명백한 과잉폭력으로 인한 법률 위반에 해당됩니다.”


검사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우석의 가슴에 꽂혔다. '무차별적'이라는 단어가 그를 가해자로 만들며 점점 밀어붙이는 듯했다. 검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심리적 공황상태에 몰린 우석은 제대로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속에서 끊임없이 변명했다. 그저 자신과 여자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 내가 그저 과하게 폭행하려 했던 걸까? 어디쯤에서 멈추어야 했을까? 그가 도망가게 두어야 했나? 무기를 들고 다시 돌아온다면? 그가 어떤 의도인지 나는 알 수 없었어.'


그날의 혼란과 공포가 다시 그를 휘감았다. 이어서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우석의 입장을 설명하며 그날의 상황이 얼마나 극도로 위협적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도둑은 어두운 밤에 갑작스레 피고인의 집에 침입했습니다. 밤중의 집안의 낯선 자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었을 테고,  그자를 발견한 피고는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고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우석은 간절하게 변호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변호사의 말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리라 기대하며 한 마디 한 마디를 되새겼다. 그러나, 그의 말이 마치 공허한 메아리처럼 법정에 흩어져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창현 판사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우석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 김창현 판사의 냉담한 시선은 마치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눈빛처럼 보였다. 우석은 억울한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점차 자신이 그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절박해도, 판사의 눈에는 그저 법적 결론을 위한 존재로만 보일 뿐이었다.


마침내 판결이 선고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김판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법정을 내려다보았다. 우석은 그가 입을 열기 직전,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법은 감정이 아닌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 판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의 결정이 얼마나 단호한지 뚜렷이 느껴졌다.

“비록 피고가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지만, 비무장 상태의 침입자에 대해 가해진 과도한 폭력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우석의 온몸이 굳어졌다. 그는 판사의 말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숨을 죽였지만, 다음 순간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이어졌다.


“피고 최우석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합니다.”


우석의 몸은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판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징역 2년"이라는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둔탁하게 반복되며 메아리쳤다. 평생 딱지 한번 끊어 본 적 없고 경찰과 법원 이 모든 것은 그의 인생에 전혀 상관없는 목록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제발… 제발… 제발…'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그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내 이미 다 끝나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두려움과 공포가 파도처럼 몰려와 그를 집어삼켰다. 손끝부터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감각이 퍼져 나갔고, 그의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며 법정의 모든 소리가 멀어져 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모두 그에게는 이제 아득한 소음에 불과했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했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미래가 부서졌고 직장생활과 무난하게 흘러갈 자신의 인생이 부서져나간 듯 느껴졌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들 역시 사라지는 듯했다. 모든 것이 한 사람의 판단으로 이렇게 쉽게 무너질 거라 상상치 못했다. 크나큰 절망은 그를 그 짧은 순간에 망가뜨려가고 있었다. 아니 우직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애초에 너무나도 무너지기 쉬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당한 방어를 했을 뿐이야.. 그런데 내 인생은 모든 게 잿더미처럼 무너졌어..'


무너진 마음속에서 어떻게든 애원하듯 절박한 마음으로 판사석을 올려다본 순간, 그 눈빛은 마치 철벽처럼 차갑고 단호해 보였다. 우석은 그의 얼굴에서 조금의 동정도,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게 오히려 자신을 질식하게 했다. 판사는 그저 자신의 논리와 법적 신념으로 가득 찬 차가운 눈빛으로 우석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석에게 그 눈빛은 마치 그의 고통을 먼 풍경처럼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내 인생이 이렇게 무너져도, 그에겐 아무 상관이 없는 거겠지.’ 


그는 속으로 되뇌며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무자비한 돌덩이처럼 냉정한 김창현판사의 태도는, 그에게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잃어버린 관료의 얼굴로 보였다. 우석의 고통과 진심은 그의 법 앞에 아무런 무게도 없고, 어떤 의미도 없는 듯했다.


그 순간, 우석은 깨달았다. 이 법정에서, 그의 삶과 진심은 무의미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절실하게 외쳐도, 아무리 간절하게 눈물을 흘려도, 그의 진심은 그 앞에서 부서지고 사라운명이었다.


'그래 남들은 사람이 죽었으니  2년 정도는 살아야 한다며 쉽게 생각되겠지.. 난 분명 정당방위였다고'





이전 05화 움 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