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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움 름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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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자 Nov 16. 2024

공정한 판관

2-2장 겨울밤


우석이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어느덧 8년이 흘렀다.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그가 받은 2년의 형기는 그를 완전히 무너뜨려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우석은 아침부터 꼬여버린 하루를 보냈다. 인력 사무소를 향해 급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자리가 다 나간 뒤였다. 헛걸음이 되어버린 발길을 돌리며, 지갑을 열어봤다. 얇아진 지갑 속엔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두 장뿐이었다. 초조함과 짜증이 뒤섞인 채 거리 여기저기를 헤매다 무료급식소에 들려 점심을 해결했다. 배를 채운 뒤, 급식소 앞에서 기지개를 크게 펼치던 순간,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눈이 멈췄다.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감옥에 가면서 그녀의 부모님의 만류로 헤어져야 했던 옛 여자친구였다. 그녀는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지나가며 우석을 바라보았다.


우석은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머물렀다. 하지만 금세 자각한 그는 스스로 초라해지는 느낌과 창피함이 몰려오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정쩡하게 그녀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쯤 옮겼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그 옛 연인이 다가와한 손에 오만 원권 지폐를 내밀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빛엔 동정인지 연민인지 모를 감정이 묻어 있었다.


우석은 잠시 그녀의 얼굴과 그 돈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없이 손을 뻗어 거의 빼앗듯 지폐를 움켜쥐고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뒤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그러다 결국, 도망치듯 있는 힘을 다해 뛰며 자책했다.


"씨팔...씨팔 씨팔.."


그의 가슴 한편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엉망 같은 하루도 저물어갔다. 우석은 편의점에 들러 소주 두 병을 사서 한 병은 그 자리에서 들이키고 나머진 생수병에 옮겨 담았다. 그리곤 익숙한 듯 오뎅을 파는 노점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오뎅 국물을 한 모금씩 마시며 생수병에 든 소주를 홀짝거리자 마음 한편이 잠시나마 풀리는 듯했다. 노점 아주머니는 무심한 듯 그의 생수병을 힐끗 보더니, 아는 듯 모르는 듯한 불편한 시선을 잠깐 보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올라오는 술기운과 더불어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이 귀를 간질었다. 흘러가는 음악 사이, DJ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며칠 전 한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몇 달 전 가을, 우리 곁을 떠난 가수 에이지의 노래를 신청곡을 보내셨네요.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녀의 노랫말처럼 아름다운 세상으로 갔기를 기원하며… 다음 곡, 에이지의 가을바람을 띄웁니다.”


우석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 "가을바람..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오뎅을 한 입 베어 물며, 그가 가졌던 삶의 환멸과 회한이 떠올랐다.

우석의 투덜거림을 들은 노점 아주머니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이고, 너무 그러지 마. 잘 나가던 가수가 길 가다 맞아 죽었잖아."

우석은 무심히 대꾸했다.

"난 그냥 자다 때려죽였는데 이렇게 됐는데?…"

아주머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했지만, 우석은 씁쓸히 오뎅을 질겅질겅 씹었다.

한 손에 든 오뎅을 마저 베어 물었다. 저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감옥에 다녀온 뒤로 그의 생각처럼 그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졌다. 직장을 잃었으며 결혼을 약속했던 그녀도 떠났다.

그렇게 그는 자포자기 한 채로 일용직을 전전하며 술과 담배에 의지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얼마 전 가슴통증에 병원을 찾았더니 간암이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씨발"


오뎅을 씹다 말고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르니 절로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그의 마음엔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뒤틀려버린 마음과 세상에 대한 증오만이 남았다.


바로 그때, 바로 옆 식당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떠들썩한 환호 속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회식 후 인사를 받는 노령의 남자가 보였다. 우석은 오뎅 국물을 마시며 내심 부러운 듯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봤다. 어쩌면 자신도 저렇게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스쳤다. 또 한편으로 자신의 처지와 달리 무리를 이룬 직장인들의 모습인 듯싶어 배알이 꼴려왔다. 그러다 배웅받는 사내의 얼굴에서 특이하게 생긴 점이 보였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가 확실했다. 과거 자신을 재판한 판사 김창현이었다.

'징역 2년'이라고 건조하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다시 한번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 맞아! 저 씹새끼였지.. 저 씹새끼는 뭐가 좋아서 좆같이 쳐 웃고 있네.'


우석은 무엇에 홀린 듯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 배웅받고 떠나가는 창현이 탄 택시를 뒤쫓았다.

막상 달리는 택시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왜 쫓아가는지,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조차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지금이라도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았고, 설령 말을 한다 해도 그를 놓아주지 않을 듯한 원망이 마음을 옥죄고 있었다.

앞서 달리는 택시를 초조하게 바라보며, 우석은 재판 당시의 그날을 떠올렸다. 도둑을 제압하려던 순간이 오히려 자신을 짓누르는 굴레가 되었고, 보호하려 했던 것들이 법정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증거로 돌변해 버린 그날. 판사의 냉정한 눈빛과 무심하게 들리던 판결문이 지금도 귓가를 맴돌았다.

한참을 따라간 택시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멈췄고, 창현은 서둘러 내리더니 급한 걸음으로 후미진 곳으로 들어섰다. 우석은 멀찍이서 그의 뒤를 쫓았다.


창현은 최근 전립선 때문에 소변이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너무 급한 나머지 택시에서 조금 일찍 내려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어둠 속에 기대어 일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인기척을 느낀 창현이 급히 몸을 돌려 정리를 하려는 찰나, 우석은 길가에 놓인 벽돌을 뒤춤에 움켜쥐고 그에게 다가섰다.


창현은 불편한 얼굴로 뒤돌아 보았다. 우석의 그림자가 골목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걸 보곤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 최대한 침착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며 지퍼를 추켜올렸다.

"당신 뭐야?" 창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석은 말없이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창현은 옆으로 비켜 우석 곁을 지나쳐 골목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순간, 우석이 뒤춤에 움켜쥐고 있던 벽돌을 더욱 단단히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제가 지금 판사님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판사님이 저를 막으려다 절 죽이신다면, 그건 유죕니까?”


창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우석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에 묻힌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려 했으나 목소리에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최대한 당당한 태도로, 그러나 두려움을 감추기 어려워하며 타이르듯 말했다.

"이봐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판사가 아닙니다. 이제 변호사일 뿐이에요. 무슨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잊어요.”

창현은 대답을 마치고 조심스레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우석의 눈빛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결의를 감지하곤, 미묘하게 뒷걸음질 쳤다.

우석은 분노에 섞인 어투로 창현의 말을 따라 하듯 중얼거렸다.

"그만 잊어요. 그만 잊어요?"

 따라 할 때마다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고, 그의 말은 점점 격앙된 목소리로 변했다.

"그만 잊어요!!!"

그대로 손에 든 벽돌로 뒷걸음질 치는 창현을 향해 벽돌을 높이 쳐들어 그대로 내리쳤다. 충격에 몸이 휘청이며 쓰러진 창현은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놀란 눈으로 우석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들어 막으려 애썼다.

"이봐.. 제발.. 나는 나의 일을 했을 뿐이야. 뭔가 잘못됐다면 내가 미안하네."

우석의 피는 이미 끓어올라버렸다. 앵무새처럼 그의 말을 반복하며 그를 짓밟고 걷어찼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미안하네!!"

창현은 의식을 붙들고 있었으나 저항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우석은 분노에 휩싸여 기운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짓밟았다.




걷어차고 짓밟다 지쳐버린 창현의 앞에 쪼그려 앉아 거친 숨을 삼키며 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넋두리하듯 말했다.

"이봐요! 내 인생은 이미 꼬일 때로 다 꼬여버렸고!!!!! 다 꼬여버렸다고!!!"

넋두리는 이내 분노로 변했다. 바닥에 던져뒀던 벽돌을 집어 들고 창현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얼마나 때렸을까.. 벽돌을 놓치고 빈손이 된 우석은 힘없이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더듬었다. 시늉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죽쳐져 늘어져버린 창현은 움직임이 없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끝났다고!? 이 씨발 새끼야. 좆같은 새끼야”

우석의 목소리엔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원망과 악에 찬 비명이 실려 있었다. 모든 게 그의 탓같았다. 그렇게 그는 끝없이 분노를 쏟아내며 창현에게 모든 걸 퍼부었다.


잠시 후, 우석은 축 처져 죽은 듯 보이는 창현을 내려다보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선 한참을 서 있었다.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는 우석의 얼굴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모든 분노와 원망을 쏟아냈지만, 그의 표정은 오히려 공허했고, 회한이 서린 듯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집에 들어온 도둑을 죽이기 전부터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기도 했다.

자신을 질책하며 얼마의 시간이 흘러 담배가 다 타들어갈 무렵, 잔뜩 가라앉은 감정 속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우석의 눈가에 맺혔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거 ..시팔..미안해요.”


그 짧은 말을 남기고, 우석은 무겁게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이내 어두운 골목에선 차가운 공기의 일렁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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