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_-
가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상상을 한다.
마치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된 것처럼, 단조롭고 익숙한 도로 풍경을 이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면 분명 이 풍경을 낯설고 흥미롭게 여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그들의 시선으로 보려 애쓰다 보면, 신기하게도 지루함은 사라지고,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새삼스레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어쩌면 마음속 깊이 자리한 욕망마저 잠재우곤 한다.
일 년이 지난 제품을 구매하며, 그것이 마치 출시 당시의 영광을 누리던 신제품이라 생각하고 타협한다.
조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셈인데, 그렇게 살다 보면 마음도, 주머니 사정도 한결 편안해진다.
뭐, 애초에 욕심이 크지 않은 성격이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결핍에 익숙했던 성장 배경이 만들어낸 나만의 타협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결핍만이 줄 수 있는 행복감을 알기에, '결핍'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즘처럼 언제든 자장면이나 치킨을 쉽게 먹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겐 처음 자장면을 먹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냉면 면발이 내 입술을 스치던 그날의 느낌도 생생하다.
기차가 잠시 멈춘 휴식 시간에 역에서 먹었던 가락국수.. 그날 밤 냄새와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흔하지 않았기에, 내 뇌는 그 드문 순간마다 도파민을 폭죽처럼 터뜨려 강렬하게 기억 속에 새겨두었는지도 모른다.
명절 어느 날 밤, 시골 큰집에서 스타워즈가 TV에 나왔던 일이 떠오른다.
어린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그 영화를 보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비몽사몽 속에서 봤던 스타워즈의 놀라운 장면들은 아직도 파편처럼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그뿐이랴.
주말 밤마다 찾아오는 토요명화의 시간도 어린 나에겐 잠과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신문의 TV 편성표를 뒤적이며 재밌어 보이는 영화를 찾는 날이면, 형과 나는 엄마를 졸라가며 꼭 그 영화를 보겠다고 허락을 구했다.
어쩌다 허락을 받아 TV 앞에 앉아 영화가 시작될 때면, 세상이 멈춘 듯한 설렘이 가득했다.
그렇게 본 몇 몇 특별한 영화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지금처럼 언제든 원하는 것을 보고, 먹고, 경험할 수 있는 시대였다면 그런 감정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결핍은 단순히 부정적인 면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결핍이 있었기에 작은 행복도 크게 다가왔고, 그 소중한 순간들은 내게 오래도록 남아 특별함으로 자리 잡았다.
멍청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요즘 세대들은 그 결핍이라는 것이 너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배부른 걱정까지 해본다.
물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면,
그 '결핍'을 이겨낼 정신적인 힘이 있을까?
쓸대없는 생각이 맴돌던 아침에 쓴 쓸대없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