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 종

삼류작자 단편선 I .

by 삼류작자


사십 대 중반의 노총각이 소파에 반쯤 기대어 텅 빈 눈으로 티브이 화면을 바라본다. 한 손에는 이미 몇 조각 남지 않은 치킨 박스가 흔들리고, 다른 손에는 반쯤 마시다 만 맥주캔이 힘없이 들려 있다. 집안 어디에도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고, 그저 치킨 기름 묻은 휴지와 리모컨이 외롭게 그의 곁을 지킬 뿐이다.

티브이 속에서는 예능 방송이 한창이다. 출연자들은 즐겁게 퀴즈를 맞히며 웃고 떠들고, 방청석은 연신 웃음소리에 휩싸인다. 남자는 마치 그 웃음에 도전하듯 치킨을 한 입 베어 물고 무심히 화면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가 "켁켁!" 거리기 시작한다. 뭐지? 잘못 삼켰나? 하며 손가락으로 목을 만지작거리지만, 점점 더 숨이 막혀오고 고통은 심해진다.


심장이 쿵쾅대고 숨이 턱턱 막히자, 그는 급히 옆에 있던 맥주캔을 입에 가져가 그대로 들이부어 보지만, 맥주는 목구멍으로 내려가기는커녕 입안에서 새어 나와 턱과 셔츠에 줄줄 흘러내린다. 미끄덩거리는 손으로 맥주캔을 내려놓다가 맥주가 소파 위로 엎어지고, 남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잊은 채 생각한다.


'그냥 피자나시키고 싶더라. 아 소파.. 청소... 짜증 나'


한가한 생각도 잠시 상황은 순식간에 급박해진다. 숨이 막혀와 얼굴은 벌겋게 변하고, 그는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찾아 손을 뻗는다. 손가락을 화면에 올려 지문 인식을 시도하지만, 손에 묻은 치킨 기름 때문에 지문 인식이 번번이 실패한다. 심장이 더 크게 울리고, 머리는 어질어질하다. 가까스로 패턴을 입력해 보지만, 미끄러운 기름 덕분에 연속해서 잘못 입력한다. 그는 죽음이 임박해 옴을 깨닫자 순간 자신에게 실소를 날린다.


'아 ㅅㅂ... 컴퓨터에 동영상. 삭제해야 하는데.'


그 순간, 티브이 속 예능의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진다.

“자, 오늘의 생존왕은 누구일까요?!”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그는 패턴 잠금을 겨우 열고 119를 누르다가 그대로 소파 위로 푹 쓰러진다. 두 눈을 부릅뜬 채, 티브이 화면을 향해 숨을 거둔다.




그의 시야는 곧 어둠에 잠기고,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기이하게 빨려 들어간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감각.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마치 그의 유전자 자체가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의 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실타래처럼 그의 DNA 구조가 장엄하게 펼쳐지고, 그 유전자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풀리며 과거로 흘러가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연이어 장면은 급격히 전환된다.
그를 있게 한 남자의 조상들이 연이어 스쳐 지나간다. 수천 년 전, 얼음 한가운데를 걷는 구석기 시대의 인류.
거센 추위 속에서 짐승들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남고, 험난한 사냥에 성공하고, 위협을 피해 달아나는 모습들.


시간은 더욱 거슬러 올라간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인류, 그리고 그 보다도 이전 원시 포유류의 모습.
그들은 생존을 위해, 종족을 잇기 위해 끊임없이 번식한다.
교미하고, 또 교미하고—파리도, 초파리도, 이구아나도, 모든 생명체가 본능에 따라 번식을 반복한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더욱 원초적이다.
새로운 생명이 힘겹게 태어나고, 단세포 생물이 둘로 나뉘고, 넷으로 나뉘고, 끝없이 분열한다.
그렇게 생명의 기원은 거대한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로 확장된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빛줄기가 수없이 많은 가지로 갈라지고, 또 그 가지들이 수백 수천 갈래로 퍼져나간다.
중간중간 도태되어 사라지는 가지도 있지만, 중심을 이루는 한 줄기 빛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억겁의 시간으로 이어진 그 빛줄기는 가지가 끊어지며 결국 지금의 남자에게로—그의 시선 속으로 빨려들며 흘러간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생명의 연속성 속에서, 그는 단 하나의 가지이자 동시에 수십억 년의 시간의 결실인 것이다.


그리고 시야는 단숨에 사망한 남자의 눈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 모든 유구한 생존의 역사와 모든 역경을 넘어온 생명의 흔적들이 그의 부릅뜬 눈 속에 담겨 있다. 모든 조상이 그를 바라보며 말하는 듯하다.


'이 병신 같은...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번식도 못하고..'


그리고, 티브이에선 한결같이 즐거운 웃음소리가 여전히 흘러나온다.


너라는 개체의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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