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샤워 챌린지.

by 삼류작자


왼쪽 엉덩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혹한기.

군대에서 한겨울에 하는 혹한기 훈련이라고 있었다.

혈기왕성했던 그 무렵의 나는 최전방에서 근무했으며 부대 막사옆 거의 야외나 다름없는 냉탕에 첨벙거리며 들어가 목욕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남자이자 사나이였으며 수컷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며 걸어 다니는 테스토스테론 그 자체였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린가 싶겠지만 지난 일이니 뭐 그만큼 강인한 남성이었노라 우겨본다.


지금의 난 뭔가?

10도 안팎의 온도에 찬물샤워가 두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몸의 온도를 조금이라도 높여 욕실로 향하고자 스쾃을 실시한다.

그 조차도 무릎이 삐그덕거려 쉽지 않다.

그래도 섣불리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에 심장이라도 멈춘다면 그 얼마나 꼴불견인가?

40대 남성 빨게 벗고 욕실에서 변사체로 발견.

그런 치욕적인 결말은 원하지 않는다.

잡생각과 함께 삐그덕거리는 스쾃으로 어느 정도 체온이 올랐다.

체온이 떨어지기 전에 빤스를 벗어던지고 서둘러 욕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샤워기를 틀고는 언제나처럼 망설이고 있다.


'오늘은 얼마나 또 차가울까?'


언젠가 본 듣보유튜버가 떠들어재낀 냉수샤워는 남성호르몬 증가한다는 말은 허구다.

그게 진실이라면 하루하루 계속되는 냉수샤워 속에서 왕성한 호르몬분비를 한 나는 무모해졌어야 하고 또 용감해졌어야 한다.

하지만 두렵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차가운 물줄기에 몸을 내던졌다.


'으아으우아'


스쾃 후 유달리 차가운 물이 급작스럽게 몸에 닿자 왼쪽 둔근이 저 혼자 움찔움찔 움직였다.

가만히 느껴보니 이것은 반란이었다.

왼쪽 엉덩이는 이 냉수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뛸 때 근육움직임 반복 하며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뇌에서 전달된 지시보다 스스로 생존을 위한 판단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멍청한 둔근이 저 혼자 뛸 때의 움직임을 반복한다 한들 차가운 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계속되는 가학적인 물고문에 움찔움찔거리는 경련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거품칠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왼쪽 엉덩이가 "제발 이제 그만 찬물샤워는 그만해~~" 라며 절규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난 2025년은 10월 27일부로 찬물 샤워 하기를 멈춘다.

이것은 나의 의지가 꺾인 게 아니다.

단지 나의 왼쪽 엉덩이의 의견을 존중했을 뿐이다.





-브런치가 생각난 김에 다른데 썼던 글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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