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얻어지는 삶

by 오후세시




네이버 클라우드에 사진을 동기화해놓는 사람들을 알겠지만, 네이버에 로그인을 하면 종종 n년 전 이맘때쯤 사진을 보여준다. 한 5-6년 전 사진이라고 보여준 사진은 길 가다가 발견한 한 아이의 치명적인 뒷 태의 모습이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가을도 아닌 것이 겨울도 아닌 듯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한껏 웅크리고 길을 걸어가는데, 왠 작은 패딩이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외투를 입기보다 덮은 것에 가까운 저 아이는 자신이 할수 있을만큼 최대한 노력으로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잠바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치명적인 귀여움에 심장이 아팠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몰래 찍었던 기억이 난다. 저런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그날은 그 아이의 귀여운 모습으로 한 순간 기분이 좋아졌었다.



#부스러기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교회였다. 우리는 신앙이 좋고, 믿음이 좋은 이들과 가까이 있으면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는다고 표현했었다. 아마 요즘 이야기하는 '선한 영향력'과 같은 뜻이 아닐까. 그 사람의 선한 영향을 받아, 마치 내 것이 아니지만 부스러기라도 받을 수 있는 기회인 것. 이는 사실 교회라는 신앙을 벗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만나면 콧잔등에서 좋은 냄새가 나듯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만나면 누구를 험담하는 것 없이도 재밌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따뜻하고 좋아서 나까지 동기화되는 사람.


나에게도 무수히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대상들을 한대 모아놓고, 도서관처럼 분류하여 책장에 넣어보자면 아마도 '아이'라는 Chapter에 가장 많이 꽂힐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상담사를 하기 전에는 유치원 교사를 했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내가 첫 해에 처음 맡은 반의 아이였다. 쉽게 주눅 들어 표현이 적은 아이에게 나는,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었다(새삼 놀랍다 나에게 그런 열정이 있었다니). 그리고 돌아오는 표현이 항상 작아서 섭섭해질 무렵, "너는 선생님 얼마큼 사랑해?"라고 물어보았고, 그 아이는 작은 입술을 움직여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은하수만큼"

그 아이가 우주와 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기에, 당시 반에서 우주의 끝없는 광활함을 이야기했기에 '은하수만큼 사랑한다'라는 말이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나는 그래서 그 이후로도 오래도록 교사 일을 했을지 모른다. 아이들 옆에서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부스러기의 맛

나와 남편은 요즘 아이에게 관심이 많다. 자녀가 없는지 3년 차, 슬슬 아이를 가지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상상에서 시작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친구 부부는 어느새 만삭이 되어 출산을 100일 앞두고 있으며, 친한 오빠네 부부는 저번 달 아들을 보았다. 우리 부부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문장을 쓰기 힘들 만큼 우리는 많은 실패를 맛보았고 그 실패에 울고 웃었다. 아이를 갖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에게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갖게 되면 기록으로 남겨야지 싶어 모아둔 실패 임태기도 모두 쓰레기통행이 되었다.

어느 날 일터를 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 밖으로 귀여운 아이와 손잡고 걸어가는 엄마들을 보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울었다(ㅎㅎㅎ). 그리고 처음으로 상담사다운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에는 복잡한 영향과 원인이 아마 있을 텐데, 그게 어떤 건지 알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 사진을 보며 깨달았다.

난 내 삶이 찬란한 꽃 길보다 중상급에 가까운 등산코스임을 안다. 그 등산 중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언덕배기도 있었고, 너무 짜증 나서 걸터앉은 벤치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건너야 하는 진흙탕도 있었다. 심지어 가깝다고 믿었던 지름길이 멀리 돌아가는 길인적도 있었다. 그런 내 황폐한 삶에서 아이를 가지면 부스러기 행복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내 그런 나의 못난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려는 나에 대한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진 않았다. 이의 옳고 그름과 앞으로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어렸을 적 어느 기억 저 편, 소보루빵을 와구 와구 먹던 내 얼굴에서 묻은 부스러기를 떼어먹는 엄마에게 나는 물었다. "엄마 왜 그거 먹어?" 엄마는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나에게 다가와 뽀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제일 맛있는 거야" 엄마는 자주 그랬다. 김밥을 쌀 때면 꽁다리를 좋아했고, 동생과 내가 먹다가 흘린 무언가를 집어 먹었다. 현재 내 생각에 대한 정리는 되지는 않았지만, 부스러기가 제일 맛있다는 엄마의 말은 뭔지 알 것 같다.


나와 너의 연대에서 내가 너의 부스러기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지저분 한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 될 거야.

부스러기가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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