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함

; 몸이나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

by 오후세시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친구 한 명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이 친구와는 중학교에서 친해졌다.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달리 갔고, 서로 일하는 직장이 고향을 떠났음에도 오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고향에 내려왔다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요즘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 돈을 모으고 있는 방법, 꼴 사나운 상사들의 연대기를 읊으며 시간이 가는지 몰랐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는 길 마음이 유독 편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나 그만큼 신경 쓰기 때문에 이런 '편함'이 문득 얼마만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편안하다 싶었다가, 편안함과 편함이 무슨 차이일까 싶었다. 사전적 정의로는 편안은 '편하고 걱정 없이 좋음' 이란다. 그리고 편하다는 뜻의 정의는 '쉽고 편리하다', '몸이나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란다.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는 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광고의 한 장면이 있다.


%EA%B2%8C%EB%B9%84%EC%8A%A4%EC%BD%98_%ED%8E%B8%EC%95%88.jpg?type=w750 광고의 효과가 짤로 쓰일 만큼이라니


친구를 만나고 오는 이 감정은 편하다는 말이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런 편함을 또 언제 느낄까.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와서 옥죄는 듯한 옷을 벗어던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때 나는 저 아저씨와 같은 표정이 된다. 그리고 사람이 많아 시끌벅적한 곳을 벗어나, 좌석이 꽤나 비어있는 전철에 앉았을 때도 편하다고 느낀다.




마음이 편하다라고 느낄 때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기에 여러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이 모양이 저마다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움직이기도 하며, 간혹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어렸을 적 단순하다 싶었던 감정들은 어른이 되어 이렇게나 복작스럽고 어렵다.

그러다가 내가 나다움을 찾는 곳이나 사람을 만나면 소란스러웠던 마음들은 가라 앉는다. 마치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쇼파에 앉으면 몸이 편한 것처럼, 마음도 이리 저리 움직이다가 흔들리지 않을 때 '마음이 편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편함은 내 안에 안락한 방을 갖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상담실은 환경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도 보아 왔듯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상담자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센터마다 향을 피우기도 하고, 음악을 틀기도 한다. 또한 각 상담실과의 거리를 떨어뜨려 방음에 신경을 쓴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몸이 먼저 편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 상담자 또한 그러한 환경이다.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덜 느끼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내가 조언을 받는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예전에 이러한 비유를 하셨다. 상한 음식을 먹고 구토 하듯 상담 또한 자신의 불편한 이야기를 하며 속을 비우는 것과 같다고. 난 이 비유가 한동안 참 잊혀지지 않았다. 나 또한 속이 시끄러워 불편했던 경험이 많았기에 내담자 입장을 더욱 이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SE-4e52aa7d-5d7f-4012-85ec-366aabd92219.jpg 잠깐이나마 내 과거의 내담자들은 속을 편하게 비우고 간 게 맞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잘 살고있나요





나는 그 친구와는 서로의 생일을 챙기지도 않으며, 사사로운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친구는 비혼주의자고, 나는 유부녀이며, 친구는 덕질을 즐기지 않는 주의지만, 나는 덕질 주의자이다.(문득 중학생일 때, 나를 따라 god 콘서트를 가준 일이 생각난다-고맙다 친구야) 이렇게 서로가 다르지만, 다른 것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지내온 합이 오래되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상황은 매번 변화가 있었어도, 만날 때마다 흔들리거나 부딪힘이 없이 편했다. 이런 편함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서로가 그런 환경이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무해하듯, 그 친구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도 무해하다는 걸 우리는 차곡 차곡 잘 쌓아왔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나 또한 이런 친구가 되고 싶고, 그들도 나에게 믿음을 주었음 좋겠다는 소망이 생기는 밤이다.




편하다는 감정은 어쩌면 나를 나대로 보여주는 행동에서 출발하는 걸까. 내가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용기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게 드러남에 더 이상 용기가 필요 없을 때가 되면 우리는 안락한 방 한 칸을 받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편함, '몸이나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라는 설명은 누가 했는지 참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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