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라떼

복숭아와 우유의 관계

by 오후세시


재택 하는 남편을 둔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낮에 카페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 다 여유롭던 한 때, 노트북을 들고 집 앞에 오픈한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는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복숭아로 라떼를 만들어 팔고 있었고, 남편은 바로 복숭아라떼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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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향과 에이드를 주문했고, 새콤한 백향과와 톡 쏘는 탄산이 취향 저격이었다. 남편의 음료는 누가 봐도 복숭아가 사각사각 썰려 있었고, 한 모금 마시면 내 음료에 입맛을 더 돋아줄 것이라 합리화가 드는 찰나 내 손에 이미 음료가 들려 있었다. :)ㅎㅎ



# 복숭아와 우유의 관계

빨대로 쪼옥 빨아 든 음료가 입에 들어왔는데 먼저는 잔 밑에 가라앉아 있던 시럽이 그리고 그 뒤에는 우유가 들어왔다. 들어온 우유와 시럽은 전혀 동화되지 않아 내 입 안에서 요리조리 섞어야 하는 지경이었다. 섞지 않은 채 마셨더니 시럽 있는 부분을 많이 먹었다. 너무 달아서 우유 한입을 다시 마신다.

"갈아서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굳이 우유와 복숭아청을 따로 넣어 씹으며 음미되도록 시간차를 두었나.


"그래 조합이 되는 게 뭐 쉬운가" 대한민국 카페에는 어떤 라떼든 다 있을 듯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종류의 라떼가 있다. 녹차라떼, 고구마라떼, 팥라떼, 딸기, 청포도, 체리, 바나나 등등등. 사실 음식에도 궁합이 있거늘 조합이 잘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라면, 카페를 운영하는 이들의 고민은 없을 것이다. 복숭아와 우유가 궁합이 안 좋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둘의 관계에서 조합이라는 점이 우리 내 관계에서 보이는 조합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숭아 라테를 한 모금 마시고 섞이지 않은 우유와 복숭아 조각을 씹어가며 입 속에서 혼합을 해갈 때, 스치듯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좋지 못한 기억이었다. 누군가와 조합이 아주 잘 되어 어울린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나 혼자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소외되었던 적이 있었다. 소외란 그런 것이었다. 그들의 별 신경 쓰지 않았던 행동 하나에 생채기가 나는 것. 김이나 작사가는 본인의 책에서 배려란 피 냄새를 맡는 동족의 느낌이라고 한 적이 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상처를 알아보듯, 상처를 발견하고 미리 배려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상처의 냄새; 피 냄새를 맡는 일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 대목을 읽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 복숭아 안녕

복숭아와 우유가 제대로 섞인 맛을 보려면, 뒤섞어야 하겠다. 믹서기와 같은 기계 안에 들어가 서로가 누군지 모르게 원래 핑크빛 우유 있던 것 마냥 혼합되어야 된다. 관계도 마찬가지. 누군가와의 연대를 쌓기 위해서는 나를 개방하고 그를 받아들이며 섞이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쌓아갈 때에 그러한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면 선택해야 한다. 섞일 것인가- 이대로 둘 것인가-


전에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싫었다. 상대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내가 나의 선택에 집중하는 일보다 더 중요했다. 상대가 날 싫어하지 않으려면 잘 연대를 맺어야 하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항상 "못 먹어도 고!"였다.


그리고 지금 복숭아 라떼 한 모금에 많은 좋지 못했던 기억들이 스쳐간다. 지나고 보면, 그 기억들이 그리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냥 단지 이제는 덜 섞이려 할 때 멀어져 가는 관계를 지켜보는 일이 많아졌다. 때로는 괜찮고 좋은 사람들을 놓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마치 놓치듯이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이 좋은 사람인 것도 맞지만, 나 또한 중요한 사람이기에 그 멀어져 가는 관계를 지켜보는 일이 '내 실수'는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그게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복숭아가 우유와 꼭 섞여야 할 이유는 없다.

복숭아 is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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