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글을 먼저 쓰고 제목을 짓는 편인데 이번 글은 제목을 참 짓기 어렵다.
최근에 올린 ‘맥도날드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글을 올린 다음날부터 조회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기본 어플 외에 카톡과 브런치만 알림을 허용하는데, 카톡은 연락하기 위해서 이고 브런치는 알림이 적게 뜨는 데다가 다른 이들의 글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조회수만큼 알림을 주는 기능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됐다.
처음에 100도 아니고 1000을 돌파했을 때는 “엥 이게 뭔 일이야” 에러겠거니 넘겼지만, 일주일 동안의 글 조회 수는 9000이 넘어갔다.
그리고 통계에 들어가 보니, 브런치에서 유입된 조횟수보다 ‘기타’로 유입된 조회 수가 확연히 많았고 이는 다음 포털 사이트에 내 글이 올라가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나서 이미 많은 브런치인들이 이런 경험을 한걸 알 수 있었고, 주로 카카오페이지나 다음/ 네이버 포털 사이트에 글이 올라간다고 하더라.
글의 내용과 좋은 평가보다 뽑기처럼 걸려들었을 내 글이 포털사이트에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온갖 마음이 몰려왔다. 창피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어느새 몰려온 사람들의 눈팅에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대해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이성적으로 내 머리는 ‘이것은 좋은 기회다, 무심코 클릭하여 들어온 손가락이 더 많이 클릭하도록 글을 더 쓰자’ ‘조금 더 눈길을 끌만한 제목으로 써야 할 텐데’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몸은 그 반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저번 글에 소개했듯, 나는 캘리그래피 작업을 했었는데 sns에 내가 쓴 글을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던 중에 이번과 같이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게 됐고, 나는 그 이후로 sns 활동을 뜸하게 했다. 매일에 몇 개씩 올리던 게시물을 이틀, 삼일에 한 번씩 올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는 밀당처럼 느껴졌으리라 싶지만, 어느 순간 의도와 다르게 주목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발견의 의미보다 수줍음을 한계 끝까지 오르게 했다. 누군가는 한번 들추고 지나가고 말 것에 의미를 두고 마음을 두고 싶지 않아 내가 먼저 선수를 쳤던 것이다.
이번에도 맥도널드 할아버지 글이 조회 수가 높아지면서, 나에게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글을 쓰는 것에 더욱 뜸하려고 했다. 주목,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나아가 애정 어린 마음을 받는다는 것은 고통이 따른다. 그 마음을 얻는 동시에 잃을 것을 상상하기 때문에, 그 상실감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때로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곁을 두지 않으려, 관계에 열려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쩌면 나의 글은 이러한 관계의 불안정과 그의 부산물을 표현하고 있는지 모른다.
곧 상실을 다루는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내가 떠나보낸 내 할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인데, 큰 맘을 먹고 친정에서 모두 가져왔다. 이를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 다기보다는 안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용기가 생겼다. 나에게 이를 다룰 자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고 재밌는 사건이 나에게 여러 깨달음을 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