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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3시 II

자율성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부캐의 전성시대

by 오후세시


전에 친했던 동생은 회계사를 준비하던 중, 자신이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발레리나로 전향했다. 그 과정을 곁에서 목격한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현실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졸업 후 취미생활로 조언하던 이도 있었고, 호되게 쓴소리를 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 후 그녀는 한 무용단에 발레리나가 되어 외국에도 종종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이러한 일화가 있다. 교사 생활 중 캘리그래피를 배우면서, 먹과 한지만 있으면 몇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보냈던 시간이. 그때 느꼈던 행복감을 잃을 수 없다는 일념 하나에 일을 그만두고 캘리그래피 강사도 해보고, 메뉴판을 비롯한 간판 작업을 했었다. 얼마 못가 또 심리상담을 배우고 지금 여기까지 왔지만, 캘리그래피를 할 당시에 나도 발레리나인 그녀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취미로만 하지’ ‘좋아하는 일은 직업이 되지 않는다’ 등등 들어왔던 이야기는 아직도 뼈에 적혀있는 듯하다.



내가 그동안 했던 작업 시안들(블로그 참고 blog.naver.com/glory5076)



나는 캘리그래피를 할 때, 참 많은 일을 했었다. 프리마켓에도 나가고, 내가 만든 엽서나 달력, 포스터를 만들어 판매도 하고 협업하여 작은 전시도 해봤다. 종일 프리마켓에서 일했던 금액은 b와 저녁을 먹고 나면 사라지곤 없었다. 경제적으로 협소한 생활을 살았지만, 그때를 떠올리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b와 그 때를 추억하는 일은 웃음이 나고 즐겁다. 고생도 많이 했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치 않아 일하는 모양새가 어정쩡했었다. 화나는 일도 많았고, 보람찬 일도 많았다.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모아놓은 돈을 쓰다가 결국 다시 교사생활로 돌아갔지만, 먼 훗날 내가 생을 마감한다면 아직까지는 이 일이 <<큰 용기를 내어 기특함에 주는 상>>을 주어 가장 칭찬해주고 싶다.


언젠가 오은영박사가 불안감에 이기는 힘은 ‘자기확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덧붙여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것은 불안을 이기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심리상담에서는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를 구분하여 동기를 설명한다. 외적 동기는 의미와 가치가 외부, 즉 겉에서 오는 것이고, 내재 동기는 내면에서 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율성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부캐와 본캐를 나누어 자신을 설명하는 세상이 된 지금, 우리의 진로 정체성은 고지식하기보 다 유연하기에 가깝다.

차선을 따라 우회전을 한들, 좌회전을 한들 한 바퀴 돌아와 결국 차선이 합쳐지듯. 카메라가 전경과 배경을 바꾸듯.

누가 감히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인생에 한 가지를 고집할 수 있을까.

한 때 내가 아닌 세상의 평가와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를 얻으려 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비로소 자유롭다. 비록 돈을 덜 벌고, 세상에내놓을 이름 하나 유명하지 않지만 이런 내 생활이 기특하다.


자율성은 나로부터.

부캐들이여 부디 당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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