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제일 재밌게 읽었던 책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무튼 식물"을 꼽을 것이다. 식물에 관한 에세이집인데, 가드너라면 모름지기 이 책은 읽어주어야 한다. 책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 중에 하나는 식물과 가드너 사이에서도 궁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드너의 성격과 식물의 성격에도 궁합이 있다는 신박한 이야기인데, 성격이 급해서 많은 식물을 죽여본 나에게는 무릎을 탁 칠만한 이야기였다.
가드너 사이에서는 먼저 하는 질문이 있는데, 그는 바로 "집에 화분 몇 개나 있어요?"다. 이 질문을 하면 식물을 얼마나 죽였는지 추측할 수 있다나... 화원에서 누군가에게 이 질문으로 스캔당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식물 중에는 몇 달을 지나 아주 가끔씩 물을 주어야 하는 식물이 있는 반면, 자주 들여다보고 챙겨주어야 하는 식물이 있다. 그래서 처음 식물을 키우는사람들에게는 똥 손도 잘 키울 수 있다고 스투키, 선인장 등을 추천하더라. 하지만 나는 죽기 힘들다는 그 스투키를 죽여본 사람이다.
#스투키
스투키를 의도치 않게 죽이게 된 것은 내가 인턴으로 개인 심리상담센터에서 일할 때이다. 대학원을 다니며 2급 수련을 하던 시절, 오피스텔에서 운영되는 상담센터는 원장 상담사 선생님 한분만 계셨다. 그러니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도 나 하나였다. 당시에는 상담에 관련된 일이기보다 센터 공간을 관리하는 일이 주였는데, 쓸고 닦고 쓰레기 버리는 등의 일이었다. 그 중 하나가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었고, 나는 의도치 않게 과습으로 스투키를 죽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센터에서 잘렸다.
엄마는 그 이후로 모든 스투키만 보아도 '그놈의 스투키'라고 그 당시의 날 옹호해주었지만, 내 조급한 성격이 일자리를 그르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속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나는 식물의 성장보다 항상 앞서 나갔다. 물이 필요하기 전에 물을 주고, 흙을 어루만지며 당장 필요치 않지만 분갈이를 해준다. 그렇게 죽여봤던 전적이 안 그래도 조급한 나를 더욱 에둘러 서두르게 만들었다.
#궁합
그래서 나는 수더분한 식물과 궁합이 잘 맞는다. 습한 계절이면 2주에 한 번씩, 건조한 계절이면 1주에 한 번씩 주면 딱 맞는 내 화분들. 지금은 비수기이지만 그 전까지 왕성하게 자라,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흙을 만져보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덕도 있지만, 그들이 나의 조급한 성격에 맞춰 수더분하게 잘 자라준 덕도 있다. 이들이 사고를 할 수 있는 생명체라면, "아이고 또 주네 또 줘" "그래 그래라"하려나. 내가 어떻게 관리를 하든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수더분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화분들의 목숨값(?)과 바꾼 기회를 얻어 그들에게 속도를 맞추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식물뿐 아니라 사람과도 그러하다. 내가 자주 손이 가는 연락처에는 그렇게 수더분한 사람이 주를 이룬다. 그러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 나는 온전한 내가 돼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허락해준다. 내가 우울모드든 기쁨모드든 내 있는 감정을 평가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그러면 나 또한 그들 앞에 좋은 사람이고 싶어진다. 그래서 바쁜 일상 끝자락에 아주 가끔씩 연락해도, 갑자기 통화를 나누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급하고 조급한 나를 그 어떤 평가없이 나누어준 셈이었다. 글을 적으면서 몇몇 얼굴이 떠오르는데, 내 주위에 수더분한 사람들은 인상이 비슷하게도 생겼다. 특별히 재미있지 않지만 그토록 매력적인 무언가를 하지도 않지만 담담하고 단단하여 이내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