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라이팅
우리집은 나와 밑에 다섯터울 남동생이 있다. 어려서부터 “집에 딸은 있어야되”라는 말을 듣고 살았고, 그것이 ‘동생 잘보고, 부모 잘챙기는 역할’ 하나 더 주어진줄 모르고 칭찬으로 들었다.
너 둘은 더 낳아야겠다.
엄마는 딸이 있어야되
만삭일 당시, 친척 모임에서 숙모가 내가 아들을 가진 걸 알고 나서 한 말이다. 숙모도 우리집처럼 딸하나 아들 하나있었는데,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아들은 뒤로 한채 옆에 앉은 딸의 취업도 않은채 대학원 진학한다는 볼멘소리를 털어놓으셨다.
우리 엄마를 제외하곤 이모 둘은 아들하나씩 밖에 없는데 순간 나만 들어서 다행이다 싶다가,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들어도 되는 말인가 내내 곱씹게 되었다.
전에 친구가 놀러왔을 때 일이다. 같이 알고있는 한 친구네 집이 둘째가 생긴다고 소식을 대신 전해주며, “그 집 둘째는 아들이면 어떡하냐”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물론 첫째가 천방지축 활발한 남자아이인 것도 맞고, 그에 반해 이 말을 옮긴 친구의 딸은 순한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 후 둘째가 결국 딸이었다는 소식 마저 전해왔다. “그 집 둘째 딸이래. 엄청 다행이지” 그리고 덧붙였다. “집에 딸은 있어야하는것 같애”
친구가 집에 돌아가고, 그 시간을 함께한 남편이 딸라이팅했다고 우스게 소리로 말했다.
집에 딸이 있으면 애교도 많고, 커서는 집안 문화가 생기며 부모를 잘 챙긴다고 한다. 대게 일리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2시간 걸리는 팝업스토어에 건물 끝까지 서있는 줄을 기다리며 남자아이를 데려온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온 아이가 아들인 것은 우리가 정한 것도 아니었으며, 정할수도 없는 신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귀하게 찾아와 사르르 녹을 것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아들이란 이유로 둘째를 가져야된다는 둥 딸이 있어야된다는 둥 하는 말은 엄마로써 어지간히 불편했다.
그건 딸로써도 마찬가지다. 동생들 돌봐야하고, 부모를 챙겨야하는 역할1, 역할2가 없더라면 난 더 내 존재로 자랐을텐데 싶다. 앞서 두사람이 모두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뭣모를 땐 칭찬으로 들었을 것이고 좀 더 머리가 커서는 해야하는 책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느끼지만, 자식에게 바라지 않고 둘이 잘사는 것이 어떠한 지원보다 빛나는 자원이다.
해맑은 눈웃음으로 오늘도 내 마음을 녹이는 내 아이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직 미래에 닥쳐오지도 않을 부양- 집안 문화- 로 이미 생긴 아들앞에 딸찬양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
부디 멈추라.
진짜 좋으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딸을 위해서도 딸라이팅은 멈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