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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Feb 15. 2022

두려운데 재미있는 느낌적 느낌

우주 최강 겁쟁이의 머리 서기 도전

"머리 서기 좀 할 수 있게 옆에서 잡아 줄래?"

나른한 주말 오후, 이불속에 폭 파묻혀 있는 딸아이에게 부탁을 했다.


"머리 서기? 물구나무 같은 건가?"

"응. 비슷해. 팔이랑 머리로 삼각대를 만들어서 지지하고 거꾸로 서는 거야."



2개월 전, 걸어서 1분 거리에 내가 원하던 분위기와 규모의 요가원이 생겨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1년간 유튜브 요가로 혼자 수련을 하다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던 터였다.


랜선 수련은 야매에 가까웠지만,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해 온 덕에 요가원 선생님이 요구하는대로 어설프게나마 몸 사용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다만, 머리 서기(시르시 아사나)는 몇 주째 발 한 짝 떼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리를 공중에 들어 올리다 목이 삐끗하면 어쩌지? 균형을 잃고 내려오다 허리가 나가버리면? 안 그래도 일자목인데 더 뻣뻣해지는 건 아닐까? 사무직 20년 차 아작 난 어깨로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나를 못 믿고 있었다.


그나저나, 머리 서기는 한 1년쯤 수련해야 가능한 동작 아니야? 왜 벌써부터 해야 하는 건데?


매번 도망가고 싶다가도 할 수 있는 동작들을 해냈을 때의 희열,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우는 순간의 희락,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하는 순간의 평안, 그리고 요가원 편백나무 향기에도 푹 빠져버렸는지 요가를 향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 서기 차례가 다가오면, 절로 긴장을 하는 탓에 손과 발에 땀이 흥건해졌다. 미끄러운 손과 발을 도망가기에 충분한 핑계로 삼기도 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쉬운 대체 동작들로만 시간을 때웠다. 물론 선생님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며 천천히 접근하자고 했다.


요가 수업이 끝나고 맞는 밤공기는 언제나 신선했지만, 머리 서기에서 달아나고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미소가 맴돌았다.



머리 서기가 요가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매번 이렇게 도망치다가는 시간이 갈수록 만족감보다 씁쓸함이 더 커질 것 같았다. 옆 자리에서 수련하는 숙련자들처럼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머리로 뿌리를 내린 채 다리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고 골반을 열고 닫으면서 깊은 수련을 하고 있는 그들과 비교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내가 이겨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필요한 건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뿐이었다.


그래. 공중에 다리를 들어 올려 보는 것, 그거 하나만 도전해보자.


며칠 동안, 유튜브 강사들의 초보 머리 서기 연습 영상을 찾아봤다. 벽에 대고 시작해보라는 조언이 있었다.

"벽이 있으면 절대 위험하지 않아요."


웜업을 한 후, 매트 위에 팔&머리 삼각대를 만들었다. 돌핀 포즈로 까치발을 들고 한발 한발 머리 쪽으로 걸어왔다.  아랫쪽이 벽쪽에 닿은 순간 다리를 순서대로 차올렸다. 머리 부상 방지를 위해 등이 굽지 않도록 팔을 바닥으로 밀어내는 힘을 유지했다. 척추가 펴지자 숨이 들어왔다. 유사시에 대비해 옆에 서 있던 딸아이의 응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생각보다 잘하네."


깊은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30초가 지났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조심조심 내려왔다. 물론 마지막에는 쿵 소리가 나긴 했지만.


어깨도 팔도 머리도 하나도 안 아팠다.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진 기분이었다. 오! 이 맛인가? 피톤치드로 샤워한 듯한 이 느낌은 뭐지? 왜 또 해보고 싶은건데? 용기내서 해보길 잘했어.


드디어, 제자리에서 맴돌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갔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살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때로는 무서워도 만나야 하고, 싫어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공포스럽지만 피하지 않고 부딪쳐보는 배짱이 필요한 것이다.


나처럼 우주 최강 겁쟁이는, "문제는 해결하려고 있는 거지!", "장애물이 있으면 더 오기가 생겨요", "핀치 상황에서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합니다"와 같은 강철 멘털형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불안하다면 지금 맞닥들인 순간 해결해야 할 단 하나에만 집중하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완벽한 머리 서기"가 아닌 "다리 들어 올리기"가 목표였던 것처럼, 잘게 쪼개서 도전해보는 거다.


혹여 실패해도 작은 실패니까 괜찮다고 다독일 수도 있다. 성공한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내 마인드셋 저장소에 한 단 더 쌓게 될 거다. 두려움은 긍정생각으로는 다룰 수 없다. 가장 필요한 건 적극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어제 요가 수업 시간, 벽에 기대어 할 수는 없어 스스로 다리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으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쭉 뻗어 올렸다. 코어 힘이 부족한 탓에 선생님이 손을 놓은 순간 흔들흔들 무너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심지어 재미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두려움을 덜어 내고, 자리에 용기를 채워 보는 것.그리고 행동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작고 소중한 실전적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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