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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Mar 12. 2022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아

나의 하루는 개똥에서 시작해서 개똥으로 끝난다

우리 집에는 흰둥이와 누렁이가 산다(진짜 이름은 아니다).


흰둥이는 여자아이, 누렁이는 남자아이이고, 흰둥이가 2살 연상이다. 흰둥이는 날 닮았는지 예민하고 입이 짧다. 누렁이는 남편을 닮았는지 태평하고 먹을 것을 밝힌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우는 녀석들인데 각각 엄마 아빠를 닮아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내 배로 낳은 아이 또한 두 명이고, 딸이 맏이, 아들이 막내다. 딸은 내 성격이 강하고 말랐으며, 아들은 아빠 성격이 진하고 건장하다. 얘네들도 두 살 터울이다.


남편은 종종 우리 집은 여여여 남남남이라며, 우리 남자들은 이 아담하고 연약한 여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한다. 아휴 만사 유유자적한 그대들이 무얼 알겠소. 그나마 섬세하고 똑 부러지는 여자들이 있으니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사는 거 아니겠냐고요. 아이들도 그렇고 강아지들도 그렇고 성향이 정 반대인 탓에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을 보이니 재미있는 광경이 자주 연출된다.




먹보스 누렁이는 사료를 꺼내는 소리만 나도 꼬랑지를 사정없이 돌리며 난리 브루스를 춘다. 밥그릇에 부어주다 성화에 못 이겨 옆으로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부터 누렁이는 이성이 증발하기 시작한다(애초에 강아지에게 이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에 흘린 걸 주워 먹다가 다시 밥그릇에 머리를 처박는다. 이쪽저쪽 다 먹고 싶어서 안달 나나 보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때, 짜장면이 먼저 당겨서 호로록하다가도 다 같이 공유하는 탕수육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심리인가. 하긴 먹고수인 우리 아들은 탕수육부터 집는다. 1인 1그릇인 짜장면은 빼앗길 염려가 없는 반면, 탕수육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정작 제 누나는 늘 적당량만 먹기에 음식 사수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지.


흰둥이 역시 누렁이 밥그릇 옆에 쏟아진 사료에는 1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기 꺼 외에는 먹지 않는 깔끔한 성격일뿐더러, 자기 것마저 당최 먹지를 않으니 별별 방법을 써가며 급여를 하는 마당인데, 누렁이는 여태 그걸 모르나 보다(알면 네가 사람이겠지;;). 괜히 혼자 불안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 아차차 너는 강아지였지?


누렁이는 왕성한 식욕만큼 에너지도 넘쳐난다. 정신없이 발발 거리면서 사고 칠 거리를 찾는다. 몸은 또 얼마나 빠른지 사람이 방문을 열면 빛과 같은 속도로 그 틈으로 슬라이딩을 한다. 흰둥이가 뒤에서 들어가도 되는 건가 마는 건가 간을 보면서 행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누렁이는 일단 하고보자는 극 행동주의인 듯하다. 사람이었다면 행동력 갑이라는 평판을 받았을 거다. 그러다 보니 누렁이가 같이 방에 들어갔는지 눈치 채지 못한 채 볼일을 보고 방문을 닫고 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몇 초 후 그 방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그제야 얘가 같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누렁이가 자칫 다치지 않도록 방문 닫을 때 주의를 당부해두었다.


그렇다면 흰둥이 키우기는 편하겠다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고 싶다. 제 얼굴에 손을 대거나 발 씻기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덕부에 위생관리나 목욕은 의식에 가깝다. 하고 나면 간식을 주는 걸로 훈련은 시켜놨지만, 참을성이라고는 1도 없는 예민 보스다.



이렇게 성격도 성향도 서로 다른 강아지들이지만, 서로 잘 통하는 부분도 있으니, 그건 바로 개똥이다. 비록 똥에 대한 철학은 서로 다른 듯 하지만 결과는 같다.


흰둥이는 절대로 패드에 응가를 싸지 않는다. 절반만 성공한 배변 훈련은 흰둥이를 둘러싼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식을 하지 않는 덕분에 변의 상태가 항상 양호하고, 변이 털에 조금만 묻어도 진저리 나게 싫어하기 때문에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렁이는 거의 매번 패드에 응가를 한다. 하지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탓에 패드를 제 발로 차기도 하고, 흰둥이가 싼 똥을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문제는 그 발로 여기저기 또 돌아다닌다는 거다. 이쯤 되면 둔감력 만렙이다. 그 발로 소파 위에 놓인 블랭킷 위로 올라갈 때 최악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너 때문에 빨래해야 된다고!!).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발을 물로 닦아도 몸무림 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아지들 덕분에 내 하루는 개똥으로 시작해서 개똥으로 끝난다. 일어나자마자 밤사이에 벌어진 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배설물이 더럽거나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다만, 그 배설물이 오롯이 처음 그 자리에만 있다면 그걸로 감사하다.


변 상태가 깔끔하면 내 아침도 상쾌하게 시작된다. 똥만 잘 싸도 이쁘다고 칭찬을 받는 걸 보면 확실히 개팔자가 상팔자다. 건강한 개똥을 보면 잘 자라고 있다는 안심이 든다. 좋지 않을 땐 아이가 아픈 곳은 없는지, 급여 양이나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가끔 강아지들이 놀라거나 아플 때 얘들이 진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한다. 힘없이 늘어져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두려움의 눈빛으로 보호해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기분 좋을 때 역시 사람이랑 똑같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좋아서 방방 뛰어다니고, 느긋하게 배를 만져줄 때면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하기에는 너무 개똥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개똥 덕분에 생명을 책임진다는 의미와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삶을 배우고 있다. 얘들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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