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라미 Mar 27. 2022

지금 도망치면, 내 미래도 달아난다

은퇴 전 자기결정권을 쥐는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

새로운 업무를 맡은지 1년쯤 지나자,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어려운 일은 대체로 까다롭고 심화된 생각을 요하는 것들이다. 숫자가 틀리면 어떻게 하지? 분석 결과가 얼토당토않을 경우 다시 가설을 세워야 하려나? 협조를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변화관리도 어려울 것 같은데? 등등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누구라도 어려운 일이 나만은 피해 갔으면 하는 바람일 거다. 난이도 높은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저녁과 주말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추가로 주어진 것이라면, 부담은 배가 된다. 바로바로 스위칭이 안되어서 집중이 힘들거나, 시간 관리가 어려워서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는 늘 고통과 갈등이 있었기에 굳이 나서서 하고 싶지는 않다.




반면, 쉬운 일은 쉬우니까 매번 편안하고 즐거울까? 쉽지만 하기 싫을 경우에는 어떨까? 그래도 어려운 일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까?

지금 업무 비중 가운데 반 이상, 아니 때때로는 8할 이상은 쉬운 일이다. 신입 사원도 OJT만 잘 받는다면 바로 수행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도 많다. 시간이나 노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꿀 빨고 있다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난이도가 낮은 일은 더 빈번하게 동기부여 붕괴와 자기혐오를 안겨주곤 하기 때문이다.

쉬운 일만 반복하면 오히려 싫증이 나고 매너리즘에 빠진다. 세상 쉬운 일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잘해봤자 본전이고 못하면 욕받이가 된다. 즉시 자료를 만들고 메일을 보내도 대개는 휘발되는 업무로 족적이 남지 않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고 뭘 했는지 모르겠는 날도 있다. 허무함을 안고 터덜터덜 퇴근을 한다.

물론 손이 빠르고 바로바로 해치워버리는 일을 선호한다면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 나 나는 손도 느리고 신경 쓸 요소가 많은 짧은 호흡의 업무에는 지레 지치는 경향이 있다.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즉각적인 단발성 업무가 연이어 발생하면 일과 내에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쌓여 도통 집중을 못한다. 청개구리처럼 도망가고 싶어 진다. 자료 하나 만들고 나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메일 하나 겨우 보내고 물을 마시러 간다. 의미 없이 군것질이 하고 싶고, 귀찮은 전화들이 연달아 오면 나도 모르게 감정 쓰레기통을 찾는다. (이 부분은 정말 꼭 고치겠습니다!)

그래서 더 실수가 많다. 잘못된 곳이 있어서 수정해야 할 때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이렇게 쉬운 일도 못 해내는 거냐고 호통을 치곤 한다.




왜 하루다 멀다 하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걸까? 쉬워도 싫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싫은 건가? 이 업무를 열심히 해봤자 월급 받는 거 이외엔 경력에도 도움이 안 되고 미래에도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걸까?


직장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걸  체감한 이후, 난 늘 직장에 머무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안 될 일들에 하루에 8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허무했다. 쉽고 어렵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때때로 무기력에 빠지는 내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태로 당장 나가면 환경만 바뀔 뿐, 여전히 타인이 만들어 놓은 세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 터. 시간의 자유는 다시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변화가 필요한 건 환경이 아니라 나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자기결정권을 기반으로 상황과 조건을 통제하는 훈련, 실천을 통해 자존감과 신뢰를 향상할 수 있는 연습을 더 많이 더 자주 해보기로 했다.


미니멀 라이프, 정리정돈, 경제관념 잡기(소비 단속), 책 읽고 글쓰기, 취미 부자 되기, 2막에 하고 싶은 직업 찾기 등 모두가 이런 맥락에서 시도하고 있는 일들이다.

애매하게 한쪽 발을 걸친 채 버티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자극들이 결국은 변화의 복리를 굴려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결정적 이유는 자기 결정권을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내심을 발휘하는 사람만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자기 삶을 주도한다. 외부 환경과 조건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자유를 누린다.
(중략)
도망치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발휘함으로써 만나게 될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하게 도망친다 해도 결국 도달하는 곳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세계일 뿐이다.

- 멘탈의 연금술 (보도 섀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