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라미 Aug 17. 2023

이 죽일 놈의 옷장을 살리고 싶어

실패, 또 실패 후 결국 선택한 방법


옷을 찾다가 땀범벅이 된 그날 이후 드레스룸을 포함한 옷장은 "이 죽일 놈"이 되었다.


그깟 하루 고생 좀 했다고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나 싶기도 하겠으나, 이미 우리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는 전조 증상은 있었다.


야심 차게 구매했지만 막상 입고 나가보면 어딘가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아(시도가 많으면 그만큼 실패가 많은 법) 애물단지로 전락한 옷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굳이 "있으나 마나 한 옷"을 구매했다는 찝찝함을 남겼고, "더 만족할 만한 옷을 추가로 사야 하는가?"라는 불필요한 고민까지 던져주었다.


뿐만 아니었다. 호기심에 일단 샀다가 반품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다시 포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치기도 했다. 반품 신청을 해놓고 막상 현관 앞에 내놓지 않은 탓에 택배 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때면 "이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만, 당장 이렇다 할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았기에 굳이 들추지 않은 채, 관성처럼 쇼핑의 늪에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죽일 놈의 옷장"은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근잘근 곱씹어보니, 나 혼자 사랑에 빠져 집 한켠을 내줘놓고는 이제 와서 "이 죽일 놈" 급을 하는 건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인생은 때때로 앞뒤가 맞지 않는 판단과 행동으로 점철되기도 한다지만 이건 선을 넘는 적반하장이었다.


옷들 입장에서도 황당했을 거다. 택배가 올 때마다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조리 둘러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감당 안된다며 꼴도 보기 싫다 하다니,


나야말로 배신자인 것일까?


옷은 죄가 없었다. 발 없는 옷들은 옷걸이에 겹겹이 쌓인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어떤 옷들은 흐트러진 모양으로 서랍장 속에서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으며, 일부는 몇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꾸역꾸역 먼지만 먹어갔다.


한치의 여백도 허용하지 않아 공기마저 무거워진 이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당장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직감했다.


숨 막히는 드레스룸을  만든 건 나였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분별하게 소비했던 지난날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후회만 하는 것은 또 다른 "외면"을 의미했다. 해결을 해야 했다. 숨통이 트이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 역시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유튜브에 "옷장 정리"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옷을 깔끔하게 개는 법에서 시작해 색깔별 또는 카테고리별로 수납하는 법, 계절마다 옷장 정리를 하는 방법 등 언제든 적용할 수 있는 각종 노하우들이 즐비했다.


1. 서랍장부터 환골탈태시켜 보기로 했다.


착착 가지런하게 개켜 넣으면 공간이 남을 테니 헹거 랙에서 그만큼을 덜어낼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아니, 예상대로)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나가떨어졌다. 일단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 반으로 접건, 3분의 1을 접건, 뭐 하나 반듯하게 접히지가 않았다. 게다가 부드러운 소재의 옷은 아무리 꾹꾹 접어도 흐물흐물거렸다.


게다가 매번 제자리에 똑바로 개켜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다시 서랍 속에 던지듯 구겨 넣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2. 다음 선택지는 보기 좋게 걸어놓는 방법이었다.


양은 그대로라도 시각적으로 편안하면 스트레스가 덜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화이트-아이보리-베이지-브라운-그레이-블랙의 순으로 나열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린이나 핑크 컬러는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할지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걸어도 눈에 거슬릴 뿐이었다.


그라데이션 기법은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를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옷을 빼고 넣고를 계속 반복한 탓인지 어깨도 아파왔다. 효용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작업에 불혹의 어깨를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3. 계절마다 정리를 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별도의 수납 박스나 압축팩을 사야 가능한 일이었다. 정리를 한답시고 물건을 더 늘리는 건 꺼려졌기에 진입 장벽이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 또한 접어서 보관하는 방식이었다. 삐뚤빼뚤하게 접힌 채 반년씩 잠을 자면 어떤 일이 생길지 불 보듯 뻔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모조리 실패.


이제는 그토록 두려워했던 솔루션 하나만이 남았다.

이전 03화 옷들의 공격이 시작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